[Opinion] '진격의 거인' 속 인간의 본질에 관하여 [만화]

그럼에도 불편한 부분들
글 입력 2023.06.0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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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만화 '진격의 거인'은 매우 잘 만든 흥미로운 작품이다.

 

탄탄한 세계관과 캐릭터들, 전에 본적 없는 창의적이고 방대한 설정들, 그리고 그 안의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뛰어난 스토리텔링까지. 독자가 몰입하며 열광할 수 있는 비장하고 매력적인 서사들, 포인트들도 다 캐치하고 있다.


재밌는 원작의 매력을 뛰어나고 생동감 있는 작화로 살린 애니메이션 버전도 그 완성도가 대단하다. 화려하고 뛰어난 액션 작화들과 훌륭한 성우진들까지, 비장하고 잔혹한 원작의 매력을 한층 돋보이게 한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작품들이라면 소위 '등장인물 버프'를 받아 무수히 극복했을 시련들임에도, 진격의 거인 속 캐릭터들은 그 앞에서 얄짤없이 무참하게 죽어간다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다. 서사를 쌓으며 하나의 인물이자 인간으로 독자가 친밀감을 가졌던 캐릭터들이 거인과 재앙앞에 무참히 죽어가는 것은 꽤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데, 무려 주인공급 등장인물들도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다. '잔혹한 세계'라는 주제의식에 맞게 비정할정도로 적나라하게 현실적이다. 그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

 

 

 

<진격의 거인> 속 주제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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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진격의 거인'밈을 만들어내며 대히트를 친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안의 주제의식에 대해선 역시 생각해보아야한다.


우리나라에도 강하게 불었던 만화 진격의 거인 열풍이 몇 년전 사그라들었던 이유는 바로 '우익'논란 때문이다.


 


<진격의 거인> 속 배경, 제 2차 세계대전의 오마주


 

 

이 세계는 잔혹하다.

그리고... 무척 아름다워.


- <진격의 거인> 미카사

 


사실 작가의 성향이 어떤지를 떠나서 작품을 보다보면 무언가 기시감이 느껴진다.


'싸워라, 싸워라!'외쳐대는 조사병단의 구호, 벽을 뚫고 마을을 습격하던 거인들의 진정한 정체, 선동하는 지도자와 휩쓸리는 병사들, 잊혀지고 왜곡된 역사들, 그리고 자유를 부르짖는 벽안의 사람들.


전체주의가 횡행하던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혼란하던 전세계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이념갈등, 인종박해, 히틀러, 전쟁, 독일, 그리고 일본. 아마 작가 하지메가 그리고자 하는 진격의 거인 속 세계는 그 시절의 오마주이지 않을까, 적어도 그 시대에서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을까 싶다. 


 

 

'마레'는 독일, '에르디아인'은 유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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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와 유태인에 관한 영화 <피아니스트> 중 한 장면

 

 

진격의 거인 작품은 전체적으로 독일 나치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은데, 발전된 문명을 가진 나라 '마레'는 독일, 파라디섬의 '에르디아인'들은 독일에 의해 박해받던 유태인을 연상시킨다. 마레 내에 소수의 에르디아인들을 집단격리시킨 수용소는 독일이 유태인을 강제수용했던 유태인 마을 '게토'를 연상시키며, 마레 내의 에르디아인들이 팔에 찬 완장은 말할것도 없이 유태인들이 게토 외의 구역을 돌아다닐때 필수로 찼던 '다윗의 별' 완장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설정들이 더욱 전체주의와 우익 의혹에 불을 지핀 것 같다.

 

독일의 나치즘과 전체주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세계대전의 신호탄이었지만,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이자 과거다. 학살과 박해와 끔찍한 전쟁들은 무시하고 외면한다고 없어지지 않는,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이다. 이러한 사실 자체를 소재로 차용하고 작품에 활용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 시대와 역사를 후대의 여러 사람들에게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스토리텔링, 이야기적인 의의가 있다. 

 

소재 자체를 가져다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소재로 어떤 '주제의식'을 드러냈느냐 하는 것이다. 똑같은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누구는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 현실 비판에 초점을 맞추고, 누구는 피해 그 자체에만 자극적으로 초점을 맞춘다면, 후자는 불행 포르노라는 비판과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진격의 거인 속에서 우린 어떤 주제의식을 찾을 수 있을까.

 

 

 

진격의 거인은 우익일까?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슬쩍 불편하고 거슬리는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때 우익을 장려하거나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작품은 아닌것 같다. 오히려 날것 그대로의 현실 앞에 인간은 얼마나 처절해지고 잔혹해질 수 있는지,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그걸 풀어헤친 이야기에 가깝다. 


하지만 거슬리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기에, 그 부분은 뒤에서 언급하도록 하겠다.


 

 

거인은 사실 인간이다


 

압도적인 폭력과 전쟁 앞에서 파괴되는 개인의 삶, 각자의 정의, 그리고 국가간의 이익관계 이념갈등들.


주인공인 에렌은 벽을 부수고 마을을 공격한 거인들에 의해 부모님을 잃는다. 잔인한 전쟁의 피해자로 전락한 어린 소년은 사람들을 죽인 거인들을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모든 거인을 구축하겠다는 복수심 넘치는 병사로 자라난다.


진격의 거인 속 주제의식은 '거인이 사실은 인간이다'라는게 밝혀진 후부터 더욱 선명해진다. 

벽 안의 인류가 전부인줄 알고 살았으나, 사실 벽 밖 더 넓은 세계엔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벽 밖의 사람들은 더 발전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벽 안의 사람들을 '파라디섬'의 악마들이라고 지칭하고 있었다. 

 

발전된 문명을 가진 벽 밖의 나라 '마레'의 입장에서 거인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파라디섬의 '에르디아'인 국민들은 적이자 악마였던것이다. 벽 안의 세계로 도주하지 못하고 마레에 남아있는 소수의 에르디아인들에게 약물을 주입하여 거인으로 만든 뒤 파라디섬에 버리고 간 것도 마레인들이었다. 


거인 대 인간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구도가 바뀐 순간, 벽 안의 조사병단은 드디어 자신이 벽 밖에서 싸워야 할 진정한 적이 거인이 아니라 그 뒤의 더 커다란 '인간들' - 자신과 같은 인간인 마레인들 -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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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거인 작품에서는 진짜로 지능이 없는 거대한 괴물인 거인과 싸우지만, 실제 전쟁은 인간대 인간의 싸움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격돌했던 독일군과 연합군도 모두 인간이었다. 거대한 국가와 체제 안에서 서로를 적이라 규정하고 총을 겨눴던 군인들에게, 상대방에 대한 이미지는 거대한 괴물, 진격거 속의 괴물 그 자체이지 않았을까. 

 

멀리 떨어져서 그 대상을 집단화하는 것만큼 죄책감을 덜고 명분을 얻기 쉬운건 없다. 끔찍하고 악한 적이라고 상대를 집단화하면서 그 개인들도 한 가정이 있고, 삶이 있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인식을 끊어버리는거다. 상대방에 대한 인간적인 동정심, 공감을 잊은채 끔찍한 악마라고 생각해야지만 이 긴 전쟁 속에서 전진하고 공격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가까이 다가가보면 결국 우린 다 똑같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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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레에서 파라디섬의 벽 안으로 파견된 스파이이자 전사인 '라이너'와 '베르톨트'는 이러한 괴리감을 느끼는 캐릭터이다. 


분명 마레에서는 벽 안의 에르디아들이 악랄하고 끔찍한 악마라고 평생 교육받으며 살아왔는데, 실제로 벽 안 조사병단에 잠입해서 본 에르디아인들은 자신들과 별다를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거인에게 가족을 잃고 괴로워하는 피해자였으며, 복수심을 불태우고 자유를 갈망하는, 웃길땐 웃고 슬플땐 울며 전우를 소중히 여기고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자신들이 제거해야하는 적들과 동료라는 관계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안, 그 안에서 피어나는 동료애와 낯선 죄책감, 괴리감을 견디지 못한 라이너는 결국 '전사'로서의 자아와 조사병단 '병사'로서의 자아가 분리되어버리고 만다. 전쟁 속에서 개인이 겪는 혼란과 상실을 제대로 반영한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우리나라에서도 1900년대 이루어졌던 철저한 반공주의 정책이 떠오르곤 한다. 그 시절을 살아왔던 우리 부모님에 따르면 당시의 교육으로 어렸을 적엔 공산주의자들이란 손가락이 6개인 무시무시한 괴물같은 생김새를 지닌 존재들인줄 알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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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입장이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그렇다면 과연 진정한 절대악은 누구인가, 결국 이 모든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된다. 특히 1기의 포스터의 구도가 정확히 4기엔 반전되는 모습도 흥미롭다. 거인이라는 대재앙 앞에 무력한 피해자로 서있던 에렌은 몇년 뒤, 적들에게 거인의 모습으로 돌격한다.

 

 

 

그럼에도, 불편한 부분들


 

앞서 말했듯 진격의 거인은 스토리텔링과 현실감이 뛰어난 작품이다. 거대한 전쟁 속 개인이 겪는 혼란과 고뇌, 그리고 변화 앞에서 과연 진정한 적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한다. 특히나 탄탄하고 치밀한 캐릭터 설정과 뛰어난 묘사들은 커다란 재앙과 체제 앞의 개인을 인류학적, 심리학적으로 이해하고 바라보는걸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을 잠깐 고려해볼까.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은 군국주의 국가이자 독일과 함께 세계를 침략한 추축국이었다. 중국,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침략하고 식민지화하여 무자비한 학살을 일삼은 나라 중 하나다.

 

 

1. '벽 밖의 세계' 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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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적이고 호승심 강한 주인공 에렌이 어려서부터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해온 가치 '자유'. 에렌은 항상 벽 밖으로, 세계로 자유롭게 나가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거인들과 직접 싸우는 위험천만한 조사병단에 자원입대한 이유 중 하나도 그것이며 조사병단의 메인 로고도 '자유의 날개'. 벽 안의 인류들은 벽을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자유롭게 뻗어나가길 원했다.


근데 난 여기서 자꾸 섬나라인 일본이 생각났다.

섬을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자는 육일기의 이미지가 어쩐지 오버랩되곤 했다. 


에렌과 조사병단은 벽 밖의 세계를 갈망하며, 자신들을 벽 안에 가둬두려하고 억압하려는 세상에 반발한다. 온 세계가 에르디아인들을 벽안으로 가두고 압박하는 상황은 자유와 성장이라는 가치를 쫓는 조사병단의 입장에서 매우 잔혹한 악이다.


과거 조선시대부터 수없이 많은 왜란에 시달렸으며, 근대엔 식민지로 고통받기까지 했던 대한민국의 국민인 내 입장에서, 일본의 침략을 합리화하는것 같은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섬나라인 일본이 좁고 한정적인 본국을 벗어나 더 넓고 자원이 많은 세계로 뻗어나기 위해 노력하던 제2차세계대전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곤 한다. 역시 한국인이라 곱게 안보이는 걸까. 


 

2. 아커만 일족의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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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조금 주목하게 되었던건 '아커만' 일족의 특징이다.


만화를 통틀어서 가장 인기많은 캐릭터는 인류최강병사장 '리바이'가 아닐까 싶은데, 검은머리 검은 눈의 아커만 일족은 어떤 '각성'을 계기로 일반인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전투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캐릭터다. 그 각성의 조건이 자신이 인정한 주군에게 각인된다는 점에서 일본식 사무라이 할복충성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아마 외모적으로도 설정적으로도, 동양인이자 일본인의 특성을 많이 참고한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조금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커만이라는 캐릭터의 특징 중 하나인 '정신적 세뇌, 역사 왜곡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역사 교육의 빈약함과 무관심의 나라로 유명한 나라 일본에서 '유일하게 모든 역사를 기억하는 일족'이라는 캐릭터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범국이자 추축국이었던, 누군가에겐 명백한 가해자였던 일본의 입장을 어쩐지 떠올리게 된다.

 

 

3. 가미카제, 개인의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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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떠오르는 개인의 희생, 가미카제.

 

일본 태평양전쟁에 가미카제 자살특공대가 동원되었다는건 공공연히 유명한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단장 엘빈의 지휘 아래 병사들이 짐승거인에게 맨몸으로 돌격하다 전멸하는 충격적인 부분이다. 작전을 위해, 처참하게 죽을 걸 알면서도 짐승거인의 시선을 끌기 위해 희생되는 수많은 병사들. 겁에 질린 병사들을 향해 엘빈은 "우리들의 죽음의 의미는 다음 세대에게 맡긴다!"라는 일생일대의 연설을 한다. 


결국 엘빈에 의해 두려움과 호승심 범벅으로 고취된 병사들은 달려나가지만, 죽기 바로 직전 찰나의 순간에 병사가 압도적인 공포와 함께 떠올린 생각은, '아 결국 난 이렇게 죽는건가?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죽고싶지 않아..'와 같은 생각이었다. 


인간의 아주 밑바닥까지 꿰뚫는 작가의 연출에 매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아마 실제로 가미카제에 동원됐던 병사들도 초반엔 중대한 책임감과 의무감과 호승심에 휩싸였더라도, 죽기 직전엔 저런 허무함과 공포심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압도적인 끝 앞에 인간은 한없이 무력해지니까 말이다. 결국 이 모든게 무슨 의미일까 싶고.


미친 사람처럼 싸워라! 돌격하라! 외치는 엘빈 단장도, 구호를 따라 외치며 죽음에 대한 극한의 공포를 미친 광기로 돌변시키는 병사들도, 여러모로 처절할 정도로 현실적이라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운 장면이었다. 전쟁의 광기와 비참함을 여러모로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진격의 거인>의 인문학적 의의,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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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편이다. 역사를 배울수록, 그리고 세상을 살아갈수록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게 내 생각이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약자에 대해 차별과 박해를 일삼으며, 자신과 다른 집단에 배타적인 성향을 띠는 경우가 잦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는 근본적으로 다진 마늘처럼 빻은 부분이 있는 불완전하고 선입견이 가득한 인간이며, 그게 드러난 사람과 드러나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 역사는 반복된다. 진정 공평하고 선한 존재는 신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격의 거인은 인문학적으로도 생각해볼 가치가 꽤 있는 작품이다. 

나치의 선동과 전체주의의 위험성에 이미 그렇게 호되게 당했음에도, 우린 왜 여전히 선동을 당할까. 진격거 속 '심장을 바쳐라!'라는 문구와 '싸워라!'라는 구호들은 왜 우리를 가슴뛰게 할까. 나란히 단복을 맞춰입고 죽기살기로 단결해 싸우는 모습은 왜 이리 멋있고 우리의 피를 끓게 할까. 

 

우린 우리 안에 내재되어있는 본성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 자신을 알아야 선동을 경계하고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앞서 말했듯 난 인간의 본성에 매우 회의적인 사람이다. 과거 독일인으로 태어났다면 난 괴벨스의 연설에 감동해 기립박수를 치는 한 명의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진격의 거인을 보며 가끔 했다.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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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사회, 정치, 이기주의, 역사, 그리고 고난에 닥칠때 믿는 종교까지. 현실적이고 지극히 인간적인 우리 사회의 모습을 놀랍도록 잘 반영한 작품이다.


그리고 점점 작품을 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 해탈한 초월적 존재의 입장에서 보면 전략을 위한 소수의 희생,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희생 이런게 당연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실제로 전쟁시 전술 지휘관들도 최소의 희생을 내기 위해 전략을 짜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은 우린 모두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너도 나도 똑같은 고통을 겪을 수 있는 인간이기에, 그 누구의 희생도 당연한 것일 수는 없다. 역지사지로 본인도 똑같은 고통을 똑같이 당할게 아니라면. 인간성을, 최소한의 양심을, 수치심을 잊어선 안된다. 그것이 전범국가가 역사를 잊지 않고 피해자들에게 끝까지 사과해야하는 이유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일 명분은 전혀 없기 때문에.


수많은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밖에 없는 지휘관의 입장이 된다 하더라도 목숨 하나하나의 무게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결국 우리는 다 같이 동등하게 불완전한 한낱 인간이기 때문이다. 거만하게 타인의 목숨과 희생을 감히 왈가왈부할 주제가 못되며, 그것에 무덤덤해진다는 것은 인간성을 잃어간다는 신호이다.


비록 세계 최후의 분단국가, 휴전국에 살고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평화로운 편이다. 직접적인 전쟁과 이념갈등이 없는 어찌보면 평화로운 세계에서, 무뎌지려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일깨우는 작품. 결국 삶이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정의의 시간임을 새삼 느끼게 하는 작품인것 같다.

 

 

[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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