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간이 흘러도 우린 서로의 등 뒤를 받쳐 줄 거야 [만화]

글 입력 2023.11.2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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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모토 타츠키의 단편 만화,

<룩 백>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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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연출과 스토리로 독자들을 당황하게 했던 <파이어 펀치>, 그리고 대중성과 탄탄한 연출을 겸비한 <체인소 맨>을 만들어 낸 만화가 후지모토 타츠키. 현재 만화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인물 중 하나인 그가 어느 날 예고 없이 단편 하나를 내놓았다.


바로, 후지모토 타츠키만의 치밀한 감정선과 짜임새 있는 연출을 극도로 살려낸 두 소녀의 성장 이야기, <룩 백>이다. <룩 백>이 2022년의 '이 만화가 대단하다!'를 수상하게 되며, 후지모토는 많은 사람들에게 단편 만화로도 인정받게 되었다.

 

<룩 백>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모두 함께한 두 소녀의 우정과 성장을 그려낸 이야기로서, 도입부부터 결말까지, 완벽한 유기성과 밀도 높은 서정성을 보이는 만화로 손꼽힌다. 이후 기고한 <안녕, 에리> 또한 독자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어째서 이토록 많은 사람이 그의 단편 만화를 좋아하는 것일까.

 

 

 

우리 함께 보내는 청춘은 분명 아름다울 거야



어린 시절, 교실을 둘러보면 그림을 그리는 애가 한 명쯤은 보였던 것 같다. 그 애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보면, 너도, 나도 모여들어서 자화상을 그려달라 하거나, 때때로는 좋아하는 캐릭터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곤, 완성작을 감상하며 모두들 잘 그렸다며 칭찬을 한마디씩 던졌다. 열성적인 반응과 겪어본 적 없던 고양감 속에서, 타인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믿어 '혹시 난 천재가 아닐까?' 라고 자만하게 되는 시기. <룩 백>의 주인공이자, 초등학교 고학년인 후지노가 그랬다.


후지노는 그림도 잘 그리고, 운동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여학생으로, 유명한 만화가가 될 거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산다. 모두가 후지노의 실력을 인정했기 때문에, 그녀 자신도 자신이 가진 천재성과 재능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담임 선생님이 쿄모토의 그림을 후지노의 네 컷 만화 옆에 게시하기 전까지는.


쿄모토는 대인기피증으로 인해 등교를 거부하는 여학생으로, 후지노와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하는 학생이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후지노의 그림과 달리, 어른스럽고 완성도가 높은 쿄모토의 그림을 보며 후지노는 절망감에 빠진다. 그 후, 언젠가 쿄모토를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그림 실력을 올리는 데 매진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있다면,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건 고독하며 무의미한 행위에 지나지 않을 뿐. 후지노는 끝내 그림을 포기한 채로 졸업식을 맞이하게 된다.

 

졸업식 날, 담임 선생님은 후지노에게 쿄모토의 초등학교 졸업장을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남긴다. 후지노는 싫다고 말하면서도, 못 이기는 척 쿄모토의 집에 방문한다. 후지노가 처음으로 발을 들인 쿄모토의 세계. 수백 권의 노트 속, 수만 개의 습작이 놓인 복도에서 후지노는 충동적으로 네 컷 만화를 그리게 되고, 그 만화가 우연히 쿄모토의 방 문틈으로 들어가 버리게 된다.

 

당황한 후지노는 졸업장을 두고 도망치려 하지만, 그 전에 방문을 열고 뛰어나온 쿄모토가 후지노에게 옷 뒤에 사인을 요청한다. 후지노는 쿄모토의 유일한 꿈이자 선배이고 파트너였기 때문에, 그녀는 기꺼이 방문을 박차고 나오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된다. 급속도로 친해진 쿄모토와 후지노는 함께 단편 만화를 그리고, 공모전에 출품도 하고, 정식 연재를 제의받기도 한다. 후지노가 내민 손을 쿄모토가 망설임 없이 잡으며, 둘의 우정은 나날이 갈수록 두터워진다. 쿄모토가 홀로서기를 택하기 전까지는.

 

 

날 따라오기만 하면, 전부 다 슬슬 풀릴 걸?

나는 후지노에게 의존하지 않고... 나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가고 싶어...

무리야, 죽었다 깨어도 안 돼!

그래도! 그림을 더 ... 잘 그리고 싶은 걸 ...

 

 

두 소녀의 우정이 아무리 두터워도 결국 성공하고 싶다는 욕심을 버릴 수는 없던 것일까. 후지노는 홀로서기를 결심한 친구 쿄모토에게 온갖 모진 말들을 뱉어낸다. 가령, '미대 따위 가봤자 의미 없다', '애초에 네가 혼자서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혹은 '넌 편의점에서 계산할 때도 부끄러워서 아무 말 못 하는 주제에 뭘 해' 등의 날선 문장들.

 

그러나, 쿄모토는 후지노의 폭언에 주눅 들면서도 기어코 자립을 선택한다. 쿄모토의 입장에서는, 홀로서기를 통해 성장하며 후지노에게 부끄럽지 않은, 말 그대로 떳떳한 친구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의 독립 선언을 받아들일 수 없는 후지노에게는 그 선택이 배신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어쨌든, 두 소녀는 이별의 길을 택하고 후지노는 만화가가, 쿄모토는 미대 진학생이 된다.

 

 

 

너의 등 뒤를 바라보며 나는 인생을 배웠어


 

만화가가 된 후지모토, 그리고 미대 진학생이 된 쿄모토. 이 둘의 인생을 바꿔놓는 사건이 2016년 1월 10일에 발생한다. 어느 날, 후지노의 방 텔레비전 너머로, 대학교에서 묻지마 살인범이 12명을 살해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쿄모토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후지노는 이를 통해 쿄모토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연재 중이던 만화를 휴재하고 쿄모토의 죽음을 추모한다.


쿄모토가 없는 쿄모토의 집을 방문한 후지노는 방바닥에서 네 컷 만화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곤, 자신이 아니었다면 후지노가 죽을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뒤늦게 후회한다. 분명 자신의 탓이 아닌데도, 죽음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을 텐데도, 후지노는 친구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죄책감에 목 놓아 운다. 우리는, 그림을 왜 그린 걸까. 그림이 없었다면 네가 죽지 않는 세계만이 이어졌을 텐데. 쿄모토의 인생은 너무나도 빠른 완결을 맞아버렸다.

 

그래서, 후지노의 마음은 쿄모토가 살아있는 가능 세계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쿄모토가 방 밖에서 나오지 않는 평행세계에서도 후지노가 쿄모토를 구해내며, 서로가 함께인 세상이 다시 만들어진다. 후지노는 쿄모토를 괴한에게서 구해내는 네 컷 만화를 그리는데, 그 그림이 후지노가 웅크린 방 근처로 날아간다. 만화가 펼쳐진 방 안으로 뛰어들어간 후지노는 쿄모토의 옷 뒤에 쓰인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다.

 

쿄모토는 사라졌지만, 쿄모토의 옷 뒤에는 후지노의 이름이 남겨져있다. 결국 그 옷은 쿄모토를 추억하는 물건이자 후지노 그 자체가 되어버린 셈이다. 등 뒤에는 서로가 같이 했던 세월과, 함께 꾸었던 꿈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서 후지노는 평생 쿄모토를 추억하게 될 것이다. 후지노를 살게 한 원동력이, 죽어버린 쿄모토가 기억 속에서 영영 살아 숨 쉴 테니까. 만화의 끝자락에서 후지노는 다시 책상에 앉는다. 이제 후지노의 앞에 닥친 수많은 불행 모두 그녀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후지노, 너는 왜 만화를 그려?

후지노는 쿄모토의 등 뒤를 바라보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룩 백, 모든 이야기를 뒤돌아보며


 

후지모토 타츠키의 <룩 백>은  '교토 애니메이션 사건'의 희생자들을 위한 헌정적이기도 하다. 이는 공개일이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방화 사건 2주기라는 점과, 묻지마 살인마의 대사나 작중 등장인물의 이름을 통해 추측할 수 있다. 타츠키는 만화를 통해 묻지마 살인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자 한다.


이 만화에는 유독 등에 대한 묘사나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룩 백>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후지노와 쿄모토의 등을 활용해 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 뒤를 뒤돌아보는 건 지난 과거를 되돌아보는 행동이며, 등 뒤를 타인에게 내어주는 행동은 그 사람을 신뢰한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는 때때로 등을 맞대어 기댄 상태로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기도 한다. <룩 백> 또한 그렇다. 작가는 후지노와 쿄모토의 등을 통해 못다 한 말을 전하고, 더는 뒤돌아보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후지노의 모습을 통해 성장과 치유의 메시지를 담아낸다.


인간은 늘 강해진다는 말을 믿는다. 우리는 수많은 역경과 시련을 거쳐서, 인격적으로 성장하며 쓰라린 아픔에도 치유하는 방식을 배운다. 떠나간 이의 빈자리에 외로워하지 않으며, 지난 일에 극복하는 법을 파헤쳐 낼 것이다. 너와의 추억이 정신과 육체 속에 스며들어 내 일부분이 될 때까지. 분명 후지노도 그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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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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