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는 84일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한 어부 산티아고가 먼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사투를 그린 소설이다. 소설 내내 바다에서 홀로 고기와 씨름하는 산티아고를 보다 보면 바다의 건조함과 그의 고독, 그리고 한 방울의 따뜻함을 경험하게 된다.
각자의 고통
하지만 자신을 가져야 해. 발뒤꿈치에 뼈돌기가 박혀 있으면서도 그것을 참고 최후까지 멋지게 승부를 겨루는 저 훌륭한 디마지오 못지않은 사람이 되어야지. 뼈돌기란 과연 어떤 것일까, 하고 그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 “내가 알 턱이 있나. 난 발뒤꿈치에 뼈돌기가 나 본 적이 없으니까.”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p.69~70)
그런데 저 훌륭한 디마지오 선수는 내가 상어의 골통을 내리찍은 솜씨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야 대단한 솜씨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 정도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 손이 발뒤꿈치의 뼈돌기처럼 그렇게 불리한 조건이었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 헤엄을 치다가 가오리를 밟아 침에 찔려 아래쪽 다리가 마비되고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팠던 적을 제외하고는 발에 이상이 있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 (p.105)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산티아고가 ‘디마지오’라는 야구 선수를 계속해서 언급하는 부분이었다. 디마지오의 부상과 자신의 부상을 비교하듯 이야기하는 부분이 직접 겪기 전에는 알 수 없는 타인의 고통이나 경험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고통과 경험이 어떻든 간에 디마지오가 겪은 '발에 부상을 입고 경기를 뛴 것'은 그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라 비교할 수도 없고 오직 상상으로만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이 각자가 느끼는 고통과 경험을 존중하는 태도처럼 느껴졌다.
그 무엇보다 인간
책을 읽다 보면 산티아고가 굉장히 인간스럽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자신이 사냥하는 것에, 작은 새 하나에 연민을 느끼고 행운을 빌어주면서도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욕하고 죽어가는 것을 즐기는 모습. 물론 모든 것에 자애로운 존재는 없겠다만, 조그마하고 연약한 제비갈매기를 가엾게 생각하던 사람이 해안으로 떠밀려온 고깔해파리들 위를 걸으며 그것들을 밟을 때 나는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언급하는 것은 읽는 내게 묘한 느낌을 주었다.
다른 한편으로 산티아고가 목표에 집착하는 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집념이나 끈기 같은 걸 극대화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약 세 달가량을 빈손으로 돌아왔으면서도 오늘은 다를 거라며 더 먼바다로 나가는 것. 그렇게 만난 청새치 때문에 3일을 바다 위에 떠다니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잡아내는 것. 상어의 습격에도 고기를 버리지 않고, 뼈만 남은 그것을 끝까지 끌고 오는 것. 소설적인 과장이 들어갔다고 해야겠지만, 그럼에도 그 스스로 낚시꾼으로 태어났다 할 만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자신의 목표에 치중하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노인과 바다>는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라는 문장으로도 유명하다. 얼핏 보면 무슨 의미인지 한 번에 와닿지 않는 이 문장에 대해 옮김이는 이렇게 해설하고 있다.
언뜻 보면 ‘패배’와 ‘파멸’ 사이에 이렇다 할 차이가 없을지 모른다. 실제로 사전을 보아도 전자는 어떤 대상과 겨루어서 지는 것을 뜻하고, 후자는 파괴되어 없어지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파멸’은 ‘패배’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헤밍웨이는 산티아고의 입을 빌려 물질적 승리와 정신적 승리를 엄밀히 구분 짓고 있다. 즉 ‘파멸’은 물질적/육체적 가치와 관련된 반면, ‘패배’는 어디까지나 정신적 가치와 관련되어 있다. (...) 산티아고는 물질적으로는 이렇게 패배할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조금도 위축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어떤 역경과 고난에도 좀처럼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p.152~153)
산티아고는 비록 육체적으로 파멸당했을지는 몰라도 청새치를 잡으려는 시도에서는 조금도 패배한 것이 아니다. (...) 다시 말해서 애써 잡은 청새치를 상어 떼한테 빼앗기기 전에는 전혀 패배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더구나 상어 떼의 습격을 받고 비록 파멸했을망정 자신이 세운 목표, 즉 큰 고기를 낚았다는 점에서 그는 정신적으로는 전혀 패배하지 않고 오히려 승리를 거둔 셈이다. (p.154~155)
겨우 뭍에 도착한 산티아고가 스스로에게 졌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독자인 내가 산티아고는 절대 패배하지 않았다고 단언하게 된다. 그 투쟁의 상징인 거대하고 흰 등뼈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약간의 숭고함까지 느껴지는 이유는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사건에서의 카타르시스나 뚜렷한 줄거리를 따라 절정으로 치닫는 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노인과 바다>는 '재미있는' 소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나면 이상한 여운을 느끼게 된다. 해설에서 설명하고 있는 내포된 의미나 상징성을 파악하지 못했어도 소설의 가장 큰 주제, 인간이 가져야 할 정신적 가치와 투쟁정신 하나만큼은 생생히 전달된 듯싶다. 한 인간의 고독한 투쟁, 씁쓸한 듯하면서도 슬프지는 않은 여정을 꼭 읽어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