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업이란 무엇일까 - ‘남아있는 나날’과 대학생의 연결고리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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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북클럽 가입 선물로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을 골라서 읽었다.
로맨스만 즐겨 읽던 나에게는 생소하고 독특한 설정의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이었는데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해당 책의 주인공인 나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저명한 귀족이자 외교 인사였던 달링턴 경의 충직한 집사였고 집사라는 업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50년대인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충직한 집사인 나는 현재 모시고 있는 패러데이 경의 미국식 농담에 맞춰주기 위해서 농담까지도 연습한다. 자칫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있을 만큼 진지한 그이지만 그가 집사라는 직업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일견 경외감까지 느껴진다.
그는 화려한 언사와 능숙한 매너, 멋있는 외모로 같이 번지르르 한다고 해서 집사로서 품위를 갖춘 것은 절대 아니라고 힘주어 역설한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품위 있는 집사 그 자체라고 표현하며, 존경할 만한 훌륭한 주인 아래에서 충직하게 자신의 업에 임하는 자세야말로 품위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의 주인은 어떠한가?
오랫동안 모셔왔던 달링턴 경은 50년대인 현재 몹시 나쁜 평판으로서 기억되는 역사 속 인물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독일의 행보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비난받는다. 스티븐스 역시 세간의 평을 인식하고, 달링턴 경을 모셨다고 말하고 다니지는 않는다. 하지만 달링턴 경은 그럴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되는 위대한 주인이었으며, 그렇기에 자신의 집사 인생 역시 품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책이 중반에 이르기까지, 스티븐스의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하는 달링턴 경의 훌륭한 일화들과 스티븐스와의 관계가 회상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는 유럽 각국의 외교 인사들과 함께 비공식 회의를 진행하며 세계 평화를 위해 유럽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 고뇌하며, 그 과정에서 1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 독일에 지나치게 비난적인 태도를 취하는 국가들에 대해서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패전국에 예의를 갖추지 않고 비난한다면 더 큰 후폭풍이 올 것이라는 논리에서이다.
이처럼 입체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세계의 평화를 위해 일조하는 달링턴 경의 모습. 하지만 스티븐스가 회상하는 그의 모습은 그리 완벽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히틀러를 포함한 독일 수뇌부의 정치적 야욕을 꿰뚫어 보지 못했고 의도치는 않았으나 그들의 악행에 도움을 주고 결과적으로 동조하게 되는 판단을 하기도 한다. 특히 유대인 하인들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해고함으로써 스티븐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스티븐스 역시 그러한 사실에 이제는 인정하고 직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남아있는 나날, The Remains of the day 여행을 하고 자기 과거의 삶을 죽 돌아보는 과정에서 스티븐스는 자신이 과거 직면하지 못했던 자신의 본심에 대해 솔직해지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남아있는 나날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스티븐스는 이미 직업인으로서의 성취를 이룬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그의 이러한 고민은 20대인 나에게도 충분히 의미 있게 다가온다. 어차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유한한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이 순간이 아닌 미래의 모든 순간은 나에게도 남아있는 나날, 들이다.
그 속에서 내가 해야 할 것은 잃어버린 주체성을 찾고 나의 본심을 마주하는 것. 자신의 마음과 머리로 생각하는 것. 그것이 앞으로 남아있는 인생의 업과 태도를 결정함에 있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날이다.
[김정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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