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초보자를 위한 클래식 즐기기 가이드 [음악]

초보자가 알려주는, 초보자를 위한 클래식 즐기는 법
글 입력 2023.07.2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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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클래식은 무슨 재미로 들어?”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하면 자주 받게 되는 질문이다. 대중음악에 비해 너무 긴 분량, 가사도 없어서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는 음악, 옛날부터 같은 레파토리만 반복해서 연주하는 전통, 부담스러울 만큼 진지하고 엄중한 실황 공연의 분위기… 확실히 클래식이 대중음악에 비해 비효율적이고 불친절한 건 사실이다.

 

나도 클래식을 즐겨 듣게 된 지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은 클래식 초보자다. 얼마 전까지 같은 질문을 했던 사람으로서, ‘초보자가 알려주는 클래식 즐기기 가이드’를 써보고자 한다. 아마도 앞으로 클래식에 더 조예가 깊어질수록 감상법도 달라지겠지만 (어쩌면 그때 가서 보면 지금의 가이드가 부끄러울 만큼 초보적일지 모르지만), 초보자를 위한 가이드는 사실 초보자가 제일 잘 알 수도 있다. 사람들이 클래식에 대해 무엇을 제일 어려워하는지 가장 가까운 시기에 느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클래식 고수들이 보면 한없이 얕을 수는 있겠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의 감동을 느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써 내려 가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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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곡 : 파고 들어가기



제일 먼저, 무슨 곡을 들어야 할까?

 

사실 이 문제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맞는 방법이 다를 것이라서 한 가지 방법을 추천해 주기가 어렵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클래식은 집중하거나 잠들기 위해 듣는 잔잔하거나 웅장한 음악’이라는 편견부터 버리는 것이다. 유튜브에 클래식을 검색하면 대체로 ‘잠들기 좋은 피아노 음악’, ‘명상할 때 듣는 클래식’, ‘공부할 때 듣는 음악’ 이런 식의 제목이 눈에 띈다. 사람들이 보통 클래식을 우아하고 조용한 음악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클래식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이 말이 얼마나 어불성설인지 알게 된다.

 

내가 처음 듣고 충격받았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예로 들어보자. 기묘하고 불안정하게 시작하는 1악장, 매우 빠른 템포로 세상 정신없이 흘러가는 2악장, 장엄한 듯 하지만 어딘가 단단히 잘못된 것만 같은 기괴한 3악장, 그리고 정말 제대로 미쳐가며 내달리는 4악장까지. 시종일관 어디로 튈지 모르겠는 게 이 곡의 매력인데,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세상이 뒤집히거나 삐뚤어진 것만 같은 이상하고 신비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과연 누가 이 곡을 들으면서 잠이 들거나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단조로운 인생에 다이내믹을 한 스푼 넣고 싶다면 추천하고픈 곡이다.

 

나는 클래식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장르가 들어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클래식에는 발라드, 댄스, 힙합, 재즈, 알앤비가 다 있다. 쇼팽의 발라드처럼 아예 ‘발라드’라고 이름이 붙여진 곡들부터 시작해서, 무용을 목적으로 한 차이콥스키의 발레곡이나 왈츠곡들, 속사포 랩처럼 템포가 빠른 음들로 이루어진 곡, 재즈풍의 리듬감과 소울이 느껴지는 곡들까지 장르가 정말 다양하다.

 

클래식이 고루하다는 편견을 버렸다면, 이제 열린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곡을 찾아 나서면 된다.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나의 경우 특정 연주자에 꽂혀서 그 연주자의 레파토리를 하나씩 찾아가며 넓혀간 케이스이다. 연주자를 기준으로 곡을 파고들면 내가 좋아하는 연주 스타일로 다양한 작곡가나 곡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작곡가를 기준으로 파고드는 방법도 있다. 특정 곡이 마음에 들었다면 그 곡을 쓴 작곡가의 다른 시기의 다른 곡들도 찾아보는 것이다. 이때 작곡가의 인생에 대한 약간의 지식도 곁들이면 훨씬 풍부하고 재미있는 탐험이 될 수 있다. 무엇이든 창작자의 뒷이야기를 알고 창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그 작품을 심도 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악기를 기준으로 파볼 수도 있다. 나는 피아노를 가장 좋아해서 주로 피아노 협주곡이나 솔로곡을 즐겨 듣는데, 가끔 좋아하던 곡이 알고 보니 원래 협주곡이나 다른 악기곡이었던 것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버전이란 것을 알게 될 때가 있다. 피아노가 아닌 다른 악기로 연주된 원곡 혹은 편곡을 들어보면 같은 곡의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이외에도 국가, 시대, 장르를 기준으로 탐험해 볼 수도 있겠다. 각자가 꽂힌 기준대로 파고들면 된다. 이때 한꺼번에 너무 넓게, 많이 알려고 조바심 내지 말고, 단 몇 곡이라도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 반복해서 들어보자. 진짜 사랑은 한두 개를 진심으로 깊이 좋아하면서 시작된다.

 

어느 정도 자신의 최애곡 플레이리스트가 만들어 졌다면, 그때부턴 그날그날의 기분과 감정의 온도와 결에 따라 골라 들으면 된다.

 

 

 

2) 음악 감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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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긴 곡을 어떻게 들어?”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하면 흔히 받는 질문이다. 클래식은 대중음악에 비해 너무 긴 분량부터 일단 진입장벽이 생기는 듯하다. 짧은 소품이 아닌 이상 보통 소나타나 교향곡은 짧게는 10분, 길게는 30분을 넘어가기 일쑤이고 한 시간을 넘어가는 곡들도 많다. 3분이나 5분 정도 길이의 대중음악에만 익숙해진 청자들에게는 다분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이 긴 곡들을 어떻게 들으면 좋을까? 일단은 기본적으로 클래식은 많이 들어봐야 감이 온다. 단번에 귀에 꽂히는 곡들도 있지만, 대개 처음엔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일단 꼭 3번 정도는 더 들어보길 바란다. 여러 번 반복해서 들어보는 것을 전제로, 초보자인 내가 음악을 재미있게 감상하는 몇 가지 팁을 소개하겠다.

 

반복 구간을 어떻게 다르게 연주하는지 들어보기

 

대부분의 곡들, 특히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음악이 분류되는 고전주의 음악에는 항상 반복 구간이 있다. 대중음악에도 ‘후크’ 부분이 있듯이, 클래식에도 반복되는 멜로디가 있다. 처음 들을 때는 워낙 곡이 길다 보니 반복 구간이 어딘지 파악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다. 몇 번만 들어보면 이 곡의 주요 멜로디가 어디인지 감이 오게 되는데, 그때부터는 반복 구간이 어떻게 다르게 연주되는지 잘 들어보면 좋다. 보통 연주자들도 의도적으로 반복 구간은 다르게 표현하려 노력하고, 작곡가들도 반복되는 멜로디는 다른 악상 기호를 사용하여 다른 표현법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 나올 때는 선언하듯 강렬하게 등장했다가, 두 번째 나올 때는 부드럽게 나올 수도 있다. 혹은 반대로 처음엔 조심스럽게 등장했다가 마지막에 힘차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 반복 구간의 차이를 느끼다 보면 작곡가나 연주자가 어떤 스토리텔링을 하고 싶었는지 알아챌 수 있다. 

 

‘대화’를 찾아보기

 

보통 여러 악기가 함께하는 실내악이나 협주곡, 교향곡에는 악기들이 서로 선율을 주고받는 구간이 많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선율을 피아노가 바로 이어받아 같은 선율을 연주하기도 하고, 다른 멜로디이지만 주고받듯 번갈아 가면서 연주되기도 한다. 내가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간들이다. 특히 노골적으로 ‘대화하듯’ 연주가 이루어지는 피아노 듀오를 유난히 좋아한다. 이 ‘대화’들은 질문과 대답일 때도 있고, 치고받는 싸움일 때도 있고, 다정하고 따뜻한 수다일 때도 있다. 

 

꼭 여러 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곡이 아닌 솔로곡에서도 ‘대화’는 존재할 수 있다. 셈여림이나 템포 등 질감의 변화로 서로 다른 캐릭터를 표현하는 경우도 있고, 바흐의 다성 음악처럼 두세 개의 선율이 마치 여러 명의 새가 지저귀듯 얽히고 설키면서 함께 노래하는 경우도 있다. 한 곡에 얼마나 다양한 캐릭터의 목소리가 노래하고 있는지 집중해서 들어보면 한층 더 재밌을 것이다.

 

‘이야기’를 상상하기

 

음악에도 글처럼 기승전결의 문법이 있다. 물론 모든 ‘현대’ 예술이 그러하듯 현대 음악은 그런 문법과 규칙을 전부 뒤집어엎는 시도를 하지만, 대부분의 잘 알려진 클래식 음악에는 주제가 되는 선율이 있고 어떻게든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궁극에는 종결하는 형태를 띤다.

 

클래식 음악을 심층적으로 공부해 보면 ‘제시부’, ‘재현부’, ‘동기’ 등의 단어들이 등장하는데, 이런 전문적인 이론을 잘 몰라도 자연스럽게 우리는 어떤 멜로디가 ‘주제’인지 알고, 그 ‘주제’가 조금씩 다르게 여러 번 등장하면서 전개되다가 마무리되는 어렴풋한 형태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처음 듣고 알기는 어려워도, 반복해서 들어보면 고전 음악은 그 패턴을 인지하기 쉬운 편이다.

 

비록 대중가요처럼 친절한 가사와 제목이 있는 건 아니지만 클래식을 들으면서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음악의 분위기에 맞는 상황과 인물을 설정해 보고 흘러가는 음악에 따라 이야기를 상상해 보는 것도 초보자로서 괜찮은 감상법이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기

 

방금 앞서 얘기한 것과 바로 상충하는 이야기지만, 사실 클래식 음악은 본디 ‘이야기’라고 할만한 것이 없는 음악이다. 애초에 발레나 오페라와 같은 극을 위해 쓰인 곡이 아니라면 클래식은 그저 음악 그 자체일 뿐, 서사가 있는 장르는 아니다. 심지어 곡에 붙어있는 제목(’월광’이나 ‘황제’ 등)조차 작곡가가 붙인 제목이 아닌 경우가 많다. 가사도 없고 제목도 없는 곡에는 그럼 대체 무엇이 있는 걸까?

 

레너드 번스타인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된 <청소년 음악회>에서 ‘음악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한 시간 동안 강의하는데, 그는 결국 ‘음악은 어떤 이야기도, 관념도 아닌 그저 감정일 뿐이다’라고 결론 짓는다. 예컨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는 웅장하고 화려한 1악장에서 제목 그대로 마치 황제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그려낸 것만 같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황제'라는 제목과 연상하면서 음악을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곡의 제목이 ‘궁전’이나 ‘승리’였어도, 우리는 쉽게 궁전의 웅장한 모습이나 전쟁에서 승리한 것과 같은 위풍당당한 느낌을 받으며 곡을 들을 것이다. 결국 이 곡이 가져다주는 것은 무언가 웅장하고 위풍당당하다는 ‘감정’ 뿐이다.

 

그러므로 클래식을 들을 때는 굳이 어떤 ‘생각’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감정만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는 것이 제일 좋다. 보통 클래식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단순히 ‘기쁘다’거나 ‘슬프다’는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는다. 기쁘면서 슬프고, 슬픈데 기쁜 것이 클래식의 매력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느껴지는 감정을 정의하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느껴보자. 복합적인 감정 그 자체야말로 작곡가가 의도했던 것일 것이다.

 

 

 

3) 같은 곡의 다른 연주 감상법 (피아노곡 위주)



클래식 장르의 매력 중 하나는 바로 같은 곡을 과거와 현재의 수많은 연주자가 수없이 다른 버전으로 연주한다는 점일 것이다. 같은 연주자더라도 어떤 시대에 어떤 장소에서 연주했느냐에 따라 해석이 천차만별이다. 각기 다른 해석을 느껴보는 것은 클래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가장 쉽게 알아챌 수 있는 차이는 셈여림과 템포다. 같은 부분을 연주하더라도 어떤 연주자는 강하게 칠 수도 있고, 어떤 연주자는 약하게 칠 수도 있다. 또 어떤 연주자는 셈여림의 변화를 갑작스럽게 줄 수도 있고, 어떤 연주자는 자연스럽게 서서히 음량을 조절할 수도 있다. 템포 역시 연주자마다 곡 전체의 속도는 물론이고, 어떤 부분을 얼마나 빠르게 혹은 느리게 치는지가 다 다르다. 특히 ‘루바토’라는 개념이 있는데, 소위 ‘엇박’에 가까울 정도로 연주자가 박자를 자유롭게 늘였다가 줄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악상 기호를 일컫는다. 루바토는 즉흥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같은 연주자라도 매번 다른 방식으로 루바토를 활용하여 템포를 조정할 수 있다.

 

좀 더 세세하게 들어가 보자면, 음의 길이에도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한 음의 길이를 가장 극적으로 바꾸는 것은 음의 지속 효과를 주는 페달링이다. 그와 반대되는 효과로는 음을 짧게 튕기듯이 연주하는 스타카토가 있다. 사실 피아노를 배워보지 않은 사람이 페달이나 스타카토의 여부를 듣는 것만으로 알아채기란 어렵겠지만, 단순하게 음이 지속하는 길이를 느껴보기만 해도 된다. 어떤 음은 오래도록 퍼져나가고, 어떤 음은 아주 금방 끊긴다. 어떤 음을 어떤 길이로 연주하는지에 따라 곡의 리듬감과 음색이 달라진다. 참고로, 음의 길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위해서는 좋은 음향 장비로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 밖에도 어떤 음을 강조하는지도 들어보면 좋다. 피아노의 경우 두 손과 열 손가락을 이용해서 치는 특성 때문에 한 번에 여러 음을 누르게 된다. 기본적으로 가장 윗음이 주선율을 연주하는 게 보통이지만 연주자마다 간혹 일부러 왼손 반주를 강조하거나 중간음을 도드라지게 치는 경우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예상 밖의 강조법을 정말 좋아한다. 마치 연주자가 ‘이 위대한 곡에는 이런 아름다운 반주와 중간음이 숨어 있어’라면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곡의 숨은 부분을 큐레이션 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위에 나열한 감상법처럼 현미경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곡의 면면을 들어보는 것도 흥미롭긴 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곡의 전반적인 인상만 느껴보아도 연주자의 특색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처음엔 그 차이를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나도 아직 몇몇 개성이 강한 연주자를 제외하면 거의 비슷하게 들리는 연주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연주자가 생기면 그의 연주 스타일을 자연스레 터득하게 될 것이고, 좋아하는 곡이 생기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어떤 연주자가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는지 들리는 경지에 다다를 것이다. 그런 단계에 왔다면 이제 클래식을 완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4) 실황 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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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가장 마지막 순서에 넣긴 했지만, 클래식에 아직 익숙하지 않더라도 실황 경험은 빠르게 해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클래식 실황 공연이 주는 감동은 또 다른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실황에 앞서 예습은 필수다. 가능하면 여러 연주자 버전을 들어보고 가는 것이 좋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면 마음에 드는 한 연주자의 버전으로만 여러 번 들어봐도 괜찮다. 충분한 예습을 해야 어떤 부분을 내가 좋아하는지, 그 부분을 연주자가 실황에서 어떻게 다르게 연주하는지 듣는 재미가 있다. 별 임팩트 없이 지나가기만 했던 부분이 예상외의 연주로 좋아지게 되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실황 공연에 가서는 ‘악장 사이의 박수 금지’, ‘마지막 음이 완전히 끝나고 연주자나 지휘자가 손을 내릴 때까지 박수나 환호 금지’ 등과 같은 간단한 주의사항만 숙지한 후엔 그 어떤 강박도 벗어던지길 바란다. 음악에 온전히 빠져들지 못하고 잡생각이 들어도 상관없다. 잠이 쏟아진다면 살짝 조는 것도 괜찮다. 실황 공연의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집중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벗어 던지자. 우리는 음악의 현장을 즐기러 온 것이지, 스스로를 시험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어차피 음악은 순간의 예술이라, 정말 온 정신을 집중해서 듣는다 해도 흘러간 음악을 온전히 기억할 수는 없다.

 

내 경험상 음악회에 대한 기억은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곤 한다. 본 프로그램에서 큰 감흥이 없다가 앵콜에서 엄청난 감동을 받아서 좋은 공연으로 기억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음악은 잘 기억나지 않아도 연주자의 모습이나 태도에 감동받아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경우도 있다. 음악회에서 어떤 한 순간, 작은 부분이라도 감동을 느꼈다면, 그래서 내 마음 한켠에 일정 기간 남아있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우리가 음악회에 가야만 하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

 

클래식을 즐기는 마음에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부담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클래식을 듣는 데 정해진 방법은 없다. 누군가는 공부하거나 잠에 들기 위해 배경 음악으로만 클래식을 들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특정 연주자의 열혈 팬이라 그 연주자의 곡만 들을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거장의 음악은 잘 와닿지 않지만, 유명하지 않은 음악가의 음악이 나의 마음을 울릴 수도 있다.

 

클래식은 조금도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신성한 것이 아니다. 원하는 공간에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수많은 음악을 골라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온 이상, 클래식은 더 이상 거룩한 마음으로 차분히 앉아서 들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지하철에서 에어팟으로 듣다가 신이 나서 춤을 출 수도 있는 것이 클래식이다. 나는 보다 많은 사람이 클래식이 고루하고 엄격하기만 하다는 편견을 버리고, 그저 이 좋은 음악을 음악 그 자체만으로 즐겨봤으면 좋겠다.

 

클래식에 빠진 이후로 매일 들어야 할 곡들이 많아서 하루가 너무 짧게 느껴질 지경이다. 듣기로 했던 곡들을 다 듣지 못하고 하루가 끝나버리기 일쑤다. 클래식 애호가는 평생 들어도 절대 정복할 수 없는 방대한 레파토리가 있다는 점에서 축복받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레파토리마다 수많은 과거와 현재의 아티스트들이 제각기 다르게 해석해서 다양한 버전으로 내놓으니 말 그대로 끝없는 축복이라 하겠다. 부디 많은 사람이 이 위대한 음악의 매력을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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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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