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극작가인 데이비드 헨리 황의 연극 M.버터플라이(M.butterfly) 한국 라이선스 5연은 2024년 3월 16일부터 5월 12일까지 두산 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만나볼 수 있다. 1988년 미국 초연, 2012년에 한국 라이선스 초연이 올라온 이후로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고, 2017년 브로드웨이 버전의 대본이 수정됨에 따라 이번 연출도 그 대본을 따르고 있다. 이탈리아 오페라 <나비부인>(Madam Butterfly>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프랑스인 외교관 버나드 부르시코(극중 르네 갈리마르)와 중국인 경극 배우의 쉬 페이푸(극중 송 릴링)가 국가 기밀 유출 죄로 법정에 서게 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오페라 <나비부인>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가문의 몰락으로 게이샤가 된 일본인 여성 초초상이 일본에 주둔한 미군 핑커튼과 사랑에 빠져 아이를 갖지만 핑커튼이 미국에서 미국인 여성과 새로 결혼하고 아이를 데리러 오자 결국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연극 M.butterfly는 이러한 <나비부인>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오리엔탈리즘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전복하는 것이 ‘관람 포인트’이다.
오리엔탈리즘과 제국주의/식민주의의 젠더화
오리엔탈리즘은 처음 동양에 대한 탐구를 의미했지만, 서양이 ‘동양’을 대상화하는 방식을 문제화하며 새롭게 개념화되었다. 지금 오리엔탈리즘은 부정적인 것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서구 사회에서 동양 사회에 대해 품고 있는 이미지에 기반한 서구중심주의를 드러내는 의미로 통한다. 극에서도 언급되었던 것처럼, 중국과 인도 같은 동양이 서양을 경제력이나 문화의 측면에서 앞서던 중세 시대와 달리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동양에 대한 서양의 ‘역전’이 발생했다. 근대화된 서구 사회는 서구를 ‘문명’으로, 동양이나 다른 대륙을 ‘야만’과 ‘비문명’으로 의미화해 침략과 식민 지배를 정당화했다. 제국주의 질서에서 서구를 남성으로, 통치 대상인 피식민지를 여성화해 표현하며 국가의 위계는 젠더화되고 성애화된다. 과잉성애화된 피식민지의 여성들에 대한 환상의 한 일례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자주 문제시하는, ‘정숙하며 절개를 지키는’, ‘순종적이고 고분고분한’ 동양 여성에 대한 서구의 시선일 것이다. 연극에서 르네는 중국에서 오페라 <나비부인> 속 초초상의 마지막 자결 장면을 연기하는 송 릴링을 보고 빠져버리는데, <나비부인>의 주인공인 초초상이 바로 그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이라고 할 수 있다.
연극 M.butterfly는 명목적인 제국주의에 기반한 식민주의 통치는 끝났지만,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남긴 유산인 국가 간의 정치경제학적 위계가 존속하고 있는 시대인 20세기 중후반을 배경으로 한다. 이 작품은 남성중심성과 이성애규범성에 기반하고 있는 가부장제 질서와 근대국가의 서구중심주의가 서로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프랑스인 남성 르네가 동양인 여성에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체화해 재현하는 송 릴링은 겉으로는 그에게 순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가 자신에게 투영하고 있는 것을 인지한 채 르네가 원하는 여성상을 연기하는 것이다. 르네는 프랑스 남성 사회에서 소위 ‘알파 메일’이 되지 못하는 어수룩한 ‘찐따’로 통했기 때문에 자신의 남성성에 대한 자존심의 감각이 손상된 상태였고, 이를 진작에 눈치챈 송이 영리하게 이용해 그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모습을 한 상태로 그를 대했던 것이다. 실제로, 르네가 ‘현지처’를 둔 소문이 프랑스 영사관에서 돌자 르네의 상사나 동료들은 르네를 부러워하거나 진정한 남성으로 인정해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늘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던 르네는 송을 만나고 나서부터 자신감을 얻고 아내 아녜스를 속일 정도로 송과의 외도 관계에 더욱 깊게 빠져든다.
그렇지만 송이 (르네가 생각하는) ‘여성’이 아니고 중국 정권의 스파이였다는 점에서 르네의 송을 향한 믿음과 기대는 결국 거짓과 허구에서 기반하고 있었음이 알려진다. ‘동양’+’여성’인 타자를 통해서 구성되는 서구+백인+남성 르네가 수행하는 주체화의 과정은 서구 근대의 위계적 이항대립에 기반하고 있는데, 이러한 규범화된 구도 자체는 해체될 수 있는 불안정한 것이라는 사실이, 르네의 송에 대한 믿음이 배반되며 드러나는 것이다. 동양인 여성을 타자화하는 오리엔탈리즘의 각본이 진정성있는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쉽게 위장되고 모방될 수 있는 구성물이라는 점, 그리고 그것이 서구/남성의 기대가 투영된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폭로하고 조롱한다는 점에서 연극 M.butterfly의 텍스트는 젠더화된 오리엔탈리즘의 대한 효과적인 전복이 된다.
중국과 프랑스 그 사이에서, 여자와 남자 사이에서, 송의 신체
르네의 독백을 시작으로 극 중에서는 르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백인 남성인 르네의 시선에서 섹슈얼리티의 측면에서 대상화된 인물들이 등장하고 (핀업걸, 송릴링이 연기하는 ‘나비 부인’ 역할), 르네가 비밀을 품고 있는 송 릴링과 애인 사이가 되는 과정도 묘사된다. 하지만 송이 르네가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할때면 ‘이야기’의 편집권을 두고 르네와 송 사이에는 긴장 관계가 감돈다. 언쟁이 일기도 하지만 결국 르네가 외면한 송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은 송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된다. 이러한 형식, 르네의 시선과 송의 시선의 낙차를 몸소 경험하는 것은 사회 내에서의 두 사람의 위치의 차이를 반영한다. 권력을 점유하고 있는 다수자의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협소한 시각과 그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회의 전체적인 구조를 실질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소수자의 유동적인 시각, 송은 르네가 당연시하는 헤게모니 질서가 허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소수자의 입장에서 인식론적으로 우월해질 수 있다. 송은 자신의 소수자성을 위장과 연기라는 방법을 통해 자원화하여 르네를 속인다. 중국 마오 정권의 스파이 활동을 했던 송의 ‘연기’가 목표로 하는 최종적인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일단 애국은 아니다.
그렇다면 송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연극 M.버터플라이나 연극의 기반이 된 실화에 대한 설명에는 여자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남자였다는 글귀가 흔히 따라붙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것보다 더 모호하고 복잡한데, 젠더는 인종화되고 계급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혹은 해부학적인 방식으로 판별된다고 믿어지는 ‘섹스’ 역시도 사실 사회적인 젠더 시스템의 일부라는 것은 이미 퀴어 이론의 상식으로 통하니 굳이 길게 언급하지 않겠다.) 연극 초반, 송은 남성 위주의 전통이 유지되었던 오페라나 중국 경극 배우로 활동하며 경극의 관객은 송을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려하거나 ‘양성적’이거나 ‘중성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듣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초반 르네와 가까워지기 시작했을 때 자신을 ‘무슈 송‘(프랑스어의 남성 호칭)라고 부르는 것을 굳이 거절하지 않던 송은, 르네가 자신의 집에 왔을 때 사실 자신은 ‘여자’이며 당시 가부장적 아버지에 의해 그동안 여자 형제들만 낳아 온 어머니가 버림받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막내인 자신이 남장을 하고 자랐다는 비밀을 고백한다. 물론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이 거짓말을 기점으로 송은 르네와 대놓고 ‘밀당’을 하기보다 르네가 원하는 희생적이고 정숙한 동양 여성의 이미지를 연기하기 시작하고, 르네의 무리한 요구로 인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임신했다는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극 내에서 송의 욕망과 젠더와 섹슈얼리티 정체성은 모호하게 등장한다. 송은 자신의 정체성을 직접 말하지 않지만, 단지 르네가 서구 사회가 자신을 호명하는 것에 ‘아니’라고 부정할 뿐이다. 프랑스 법정에 섰을 때 송은 둘이 관계는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끝까지 정체를 숨겼는지 같은 이슈에만 흥미있는 판사(와 프랑스 사회)의 물음에 서양과 동양의 비대칭적이고 불균등한 위계를 설명하고 지적한다. 제도와 불화하는 송의 ‘비규범적 신체’와 송과 르네의 이야기가 단순히 가십거리로 전락한 상황에서 송은 재판에서 사법적인 판단의 대상인 피고가 됨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모습으로 말할 수 있었고, 프랑스 사회에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문제의식을 우회적으로나마 전달할 수 있었다.
LGBT+라는 성소수자 정체성이 서구 사회에서 태동한 것처럼, 그 자체로 교란이 되는 송의 신체는 서구의 정체성 정치 담론에도 완벽하게 녹아들지 못한다. 물론 그 당시에는 정체성 정치의 성과가 활발하게 나타나기 이전이지만, 아무튼 송은 서구의 정체성 정치도 포착하지 못하는 ‘젠더 무법자’라는 모호한 위치에 서 있는 존재다. 계속 누락되는 존재이자 ‘비규범적 신체’로서의 송을 드러내는 상징적 장면이 있다면, 정숙한 동양 여성을 연기할때면 환한 빛이 있는 상태로 보여주지 않았던 몸을 르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의 환상을 깨버리는 장면이다. 끝까지 ‘진실’을 부정하는 르네의 모습에서 미국 사회의 미디어 속 트랜스젠더 이미지의 활용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한 다큐멘터리 영화 <디스클로저>(Disclosure) 속 한 대목이 떠오른다. 주류 영화나 매체에서 트랜스젠더 여성(비수술, 혹은 수술 이전, 혹은 호르몬 치료 중, 혹은 수술 포기, 불가, 거부 등)의 성기가 드러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이 매혹되었던 대상이 ‘대문자 여성’, ‘시스젠더 여성’이 아님을 깨닫고 거부 반응을 보이는 (시스젠더) 남자 주인공의 장면은 트랜스혐오적이며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영화 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서구-시스젠더-이성애자-남성이 규범화한 공간 속에서 송의 ‘성기 보여주기’는 정확히 <디스클로저>가 문제삼았던 퀴어혐오적인 장면에 대한 전복으로 느껴졌다.
송이 프랑스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한 것처럼 문화대혁명이 벌어지고 있던 중국 사회에서도 그는 말 그대로 실존적 위기를 맞닥뜨린 대상이 된다. ‘인민’이라는 기표가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기에 문제이지만) 겉으로는 몰성화, 그리고 탈성애화되고, ‘(부르주아적) 여성성/상’과 퀴어성의 기표들이 자본주의와 퇴폐의 산물이라는 이유로 비판을 받는 상황 속에서 르네가 프랑스로 떠난 이후의 송은 예술가였기 때문에 경극 배우의 옷을 입은 채 자아비판을 해야만 했고 결국 노동교화소에 가게 된다.
사실 퀴어(성)혐오와 여성(성)혐오를 내재한 당시의 중국 사회의 문화 혹은 제도의 모습은 초반부부터 드러난다. 르네와 처음 만났을 때 공연이 끝나면 ‘탈성애화된’ 인민복을 입어야만 했던 송은 숨긴 드레스를 르네의 앞에서만 입는다. 친 동무에게는 숨긴 드레스를 르네를 완벽하게 속이기 위한 하나의 도구라는 점에서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인민복과 드레스라는 대립적 기표와 그 두개 모두를 위장을 위해 사용하는 송의 모습은 마치 송이 오페라 <나비부인>에 애증을 느끼는 것과도 유사하다. 송의 ‘생존과 결부된’ 욕망과 섹슈얼리티, 유보된 젠더 정체성은 당시의 중국 사회에서도, 프랑스 사회에서도 위장과 거짓말이라는 방법을 통해 일시적으로 수용될 수 있었다. 프랑스 사회와 르네에게는 정숙한 동양 여성의 이미지로, 중국 마오 정권과 친 동무에게는 애국을 위한 간첩 행위라는 명목으로 송은 살아남았다.
탈식민주의 페미니스트 가야트리 스피박은 저서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에서 서구의 학자들이 실제 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체적인 상황이나 권력의 역학에 무지한 상태로 마오주의를 단순하게 이상화함으로써 아시아를 대상화한다고 비판했다. 연극 속, 아녜스에 의해서 언급된 프랑스의 68혁명의 모습과 예술가이자 ‘젠더 무법자’인 송이 중국에서 겪었던 일들이 겹치며 아이러니를 만들어 낸다. 68혁명의 시점에서 노동교화소에서 일을 하던 송은 이혼한 르네에게 편지를 받고, 스파이 임무에 대한 친 동무의 지시를 거쳐 다시 프랑스에 가게 된다. 그리고 프랑스 사회에서 르네와 결혼해 살던 송은 둘 사이의 아이(사실은 친 동무가 구해준 아기)가 중국 정권에 의해 길러지고 있다며 아이를 위해서 정보를 요구하고, 바로 그것이 둘이 체포되는 계기가 된다. 중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연극을 했던 송이 그 연극이 강제적으로 종료된 후 사법적 권력에 의해 ‘정체’가 밝혀지고 프랑스 재판장에 선다. 자신의 정체를 묻는 프랑스 사회의 심문에 대한 송의 대답의 핵심은, 동양을 ‘여성화’하는 프랑스 사회의 이데올로기 자체가 허구(‘연극’)이라는 의미와도 같다. 송의 발화는 단순히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해명’이 아니라 결국 서양 사회의 핵심 질서 자체를 문제화하는 ‘질문’의 행위다.
사랑 이야기이지만 사랑 이야기가 아닌 역설
연극 M.butterfly는 사랑 이야기지만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르네가 송에게 가지는 애정은 성 역할 수행을 전제한 이성애 각본과 서양 대 동양이라는 위계에서 기반해 있다는 점에서 ‘무결’하지 않다. 연극은 이를 명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보편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신화를 배반해버린다. 하지만 평등한 사랑만이 사랑은 아니고, 이 작품은 권력의 낙차라는 로맨스물의 공식과 팽팽한 긴장 관계라는 성애화된 코드를 동시에 활용해 르네와 송의 관계를 구성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텍스트를 일종의 로맨스의 연장선으로 읽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르네가 자신을 이용한 송 릴링을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나비부인이라는 환상에 빠졌듯, 그러한 낭만적 사랑의 각본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형태로 맥락적인 현실에서 실현될 때의 복잡성과 모순을 견디지 못한 나약한 백인-남성-주체인 르네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송이 르네를 진심으로 사랑했는지, 호감을 가지고 사랑을 한 적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이 작품은 주체와 타자라는 관계의 측면에서 사랑의 폭력성과 불/가능성이라는 역설을 표현할 수 있었다. 사랑이라는 일종의 정동이 어떠한 맥락에서 발현되고 그것은 정당한지, 이러한 통찰은 연극 M.butterfly는 쉽게 포착할 수 있었지만 서양 백인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오페라 <나비부인>과 뮤지컬 <미스 사이공>(<나비 부인>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작품)은 절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