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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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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생한 영화를 보면 정말로 그 삶을 체험한 것 같은 착각을 한다. 패티 스미스의 『저스트 키즈』도 독자에게 그런 경험을 전달하는 책이다. 뮤지션이자 작가 그리고 여러 영역에서 활동하는 패티 스미스가 예술을 시작할 무렵부터, 그녀의 동반자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망까지의 이야기가 상세하고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내게 패티 스미스는 ‘아티스트들의 아티스트’ 같은 범접하기 힘든 인상이 있었다. 여러 거장과 마찬가지로 이 사람이 사회와 예술에 막 발을 딛은 순수한 모습을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그녀와 동료들의 예술을 전혀 배경 없이 보았을 때는 마치 애초부터 예술가로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예술은 정말 소수만이 전유할 수 있는 어떤 것일까.


하지만 패티 스미스의 삶은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교대에 입학하고 예상치 못하게 아이를 낳고 입양 보낸 이후, 그녀의 예술 인생이 시작된다. 물론 마음을 먹은 것과 별개로 그는 로버트를 처음 만났을 때 스스로 자기 인생의 바닥을 살고 있었다. 생계를 유지하고 정신을 붙들기 위해 애쓰는 와중에 이어지던 예술이 진정으로 그녀의 삶이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누구에게나 일이 안 풀리는 시기는 찾아온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순간이야말로 두려울 것이 없는 무위의 상태일지도 모른다. 패티와 로버트는 그 시간 속에서 예술의 씨앗을 품은 채 이리 저리 움직인다. 버려진 가구를 주워 방을 채우고, 하루를 버티며 다음을 상상하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거장’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오, 저 커플을 찍어요. 예술가들인가봐요. 찍어요.” 웃고 있는 남편에게 부인이 말했다.

 

“그냥 가자고.” 남편이 으쓱했다. “그냥 애들이야 (They’re just kids.)”

 

 

이 문장은 이 책의 제목이 된 순간이자, 당시의 패티와 로버트가 놓여 있던 상태를 정확하게 가리킨다. 사회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아직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던 두 사람. 그러나 그 시간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찰나의 순간은 책의 한 부분이 되었다.

 

인생은 기세라는 말이 있다. 책을 읽으며 예술 또한 기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패티와 로버트의 가장 큰 재능은 뛰어난 예술적 능력이라기보다, 이 ‘저스트 키즈’의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이었을 것이다. 서로를 들여다보고, 균형을 맞추어주는 동료의 존재. 그것은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이자, 지금도 미완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절실한 무엇일 것이다. 나를 유지하고 누군가를 지지하는 마음을 단단히 하는 것이 비단 예술가에게만 필요한 것일까. 그 예술가로써의 삶의 방식이 우리를 자유롭고 편안하게 만들어줄 방법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며 이들의 삶에 매료되고 따라 살고 싶어지는 마음 역시, 자연스러운 일일테다.


초반에 던진 “예술은 정말 소수만이 전유할 수 있는가”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저스트 키즈』를 읽다 보면 예술가의 세계만큼 서로의 재능을 믿어주고, 곁에 있는 것만으로 힘을 주는 그 관계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라, 느끼게 되는 순간에 예술가를 꿈꾸기 시작하는 그 생명력에서 묘한 기분을 느낀다. 이들의 이야기는 오래전 뉴욕부터 시작됐지만 누군가가 예술가가 되고 싶다면, 이들의 방식에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쩌면 예술은 그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찾아오는 삶의 방식일 테니. 그렇다면 우리가 자신을 예술가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일까.


한 사람을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설명하는 일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나면, 패티 스미스를 로버트 메이플소프 없이 설명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사랑과 미움, 동경과 갈등, 그리고 남은 기억들이 겹겹이 쌓인 이 관계는 두 사람의 예술과 분리되지 않는다. 독자 또한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예술뿐 아니라, 그 관계 자체를 이해하고 싶어지고, 또 오래 바라보고 싶어진다.


로버트를 향한 추모 시와 곡으로 책은 끝을 맺는다. 『저스트 키즈』는 그 원초적임, 어느 정도의 우악스러움을 가진 청춘의 모습을 가장 생생하게 담아낸 책으로 느껴진다. 이들의 사랑과 예술이 점점 더 삶 전체로 퍼져가는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감각하는 일이 이 책이 남긴 가장 큰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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