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작년부터 올해까지, 나를 아주 오래 괴롭혀 왔던 단어가 있다. 바로 '미감'이다. 미감이라는 단어만 들어서는 저마다의 취향과 기준에 의존하는 다분히 개인적인 미의식을 표현하는 용어에 불과해 보인다. 다만 자신만의 취향을 다듬고, 전시하고, 공유하는 젊은이들, 특히 요즘의 20대에게 미감은 그 사람이 얼마나 세련되었는지를 '증명'하는, 철저히 평가가 가능한 영역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나의 경우 약 3년간 디지털 카메라만을 사용하다가 약 1년 전 입문한 필름 카메라가 미감에 대한 딜레마를 불러왔다. 이 딜레마가 시작된 기점은 필름 카메라 특유의 감성으로 뭉뚱그려 표현하는 몇몇 특징이 사실 제한된 조건과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후다. 미감을 증명하는 사진의 결과물에 무척 심한 기복이 있다면 어떤 사진이 진짜 나의 미감을 보여주는가? 어쩌다가 "미감이 좋네요"라는 칭찬을 듣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 칭찬에 기뻐했다가 곧 그 말의 진의를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 목적으로든 예술을 좋아하고,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미감은 무척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실상 예술가조차 자신의 미의식을 의심하는 일이 적지 않다. 안그라픽스에서 얼마 전 출간한『시각 문해력』에 제목만으로 강하게 끌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감은 천성에서 비롯된 날카롭고 동시대적인 감각이라고 인지되어 왔고, 디자인을 전공하는 이들조차 "미감을 기를 수 있나요?"라고 수없이 질문을 던진다. 우리 안에서조차 구체화되지 않는 이러한 감각을 향해 헛손질을 하던 시간에서 이제는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다면『시각 문해력』이 사진, 그림, 영화 등 다양한 시각 예술 작품을 만들고 향유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 탈출구가 되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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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답하자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책의 저자인 도니스 A. 돈디스는 책 65쪽에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이 장의 예들은 누구든지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각 언어를 개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적절한 시각 정보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러한 지각에 대한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가 구성하는 방식을 훈련시키고, 시각 문해력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구문적 지침이 될 수 있다. 문해력의 기준은 모든 언어 사용자가 시인이 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디자이너나 시각 자료를 만드는 사람들이 전부 위대하고 재능 있는 예술가가 될 필요는 없다. 문해력은 고도의 시각적 매체 환경에 처해 있는 세대의 능력을 해방시키기 위한 시작이다.

 

 

그의 말마따나 문해력을 갖춘 모든 사람이 모두 유려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각 커뮤니케이션에 원활히 참여하기 위한 문해력을 기르기 위한 첫 걸음을 이 책을 통해 뗄 수 있음은 분명하다. 애초에 우리는 시각 매체에 쉴 새 없이 노출되고 있지만, 그것을 창작하는 입장이 되어서는 그저 관습을 답습하거나 공식을 암기하는 데 그치기 일쑤다. 시각 예술을 해석하고, 평가하고, 자신이 직접 만들어가기 위한 미감을 한층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려면 적어도 내가 향유하는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시각 문해력』은 우리가 앞으로 더욱 다듬고, 발전시켜갈 미감의 코어(core)가 되어줄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시각 문해력은 현대인의 힘


 

본론으로 들어가며 저자는 인간이 지닌 지각에 관한 욕망의 축이 되는 감각에 대한 설명에서 출발해 이러한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균형, 색조, 스케일, 움직임과 같은 시각 매체의 기본 요소를 설명한다. 이 부분은 우리가 공유하는 공통된 감각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읽힌다. 다만 이 부분은 개념으로 머릿속에 한 번 더 새겼을 때 그 후에 나올 내용들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기에 건너뛰는 것보다는 이해를 돕기 위한 삽입된 그림과 함께 읽으며 자신의 감각을 재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이어서 나오는 내용은 특히 흥미로운 부분으로 재현적 표현, 상징적 표현, 그리고 추상적 표현과 이 세 단계 사이의 상호 작용에 관해 이야기한다. 시각 메시지를 만드는 과정은 이러한 다양한 시각적 해결책 중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 과정에서 미적 판단은 배제하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료하게 전달되는 방식으로 해결책이 구성됐다면 "내용과 형식 간의 관계가 우아하다"고 저자는 표현한다.

 

이 부분이 특히 흥미로웠던 이유는 우리가 미감을 이야기할 때 사실 상당 부분은 분위기를 잘 표현한 작품을 이야기하기에 메시지 전달의 측면에서 정말로 좋은 매체인지에 대한 판단은 뒤로 밀려나는 것처럼 느낀 적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미묘한 분위기를 표현하고 그것을 느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완성된 매체일 수도 있지만, 가끔 작품의 설명과 작품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일전에 SNS에서 한 사진을 접했는데, 캡션에 적힌 멘트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은 그리움이 묻어나는데 사진만 보아서는 전혀 그러한 정서를 느낄 수 없었던 경험을 했다. 사진에서 느낀 감동이 공감할 수 없는 설명으로 인해 반감되었던 이 경험을 반추해보면서, 우아한 표현을 위해 특히 적절한 표현을 선택하는 것이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는 '대비의 역학', '시각적 기법: 커뮤니케이션 전략', '시각적 스타일의 합성', '시각 예술: 기능과 메시지'를 통해 디자인이 어떤 전략을 통해 구성되고 어떤 디자인적 접근이 어떠한 감각을 우리에게 자극하는지를 설명한다. 이 부분들이 바로 우리가 연마하고 싶었던 그 미감과 특히 관련이 있는 부분이라고 느꼈다. 엄밀히는 창작에 있어 나의 주관과 미의식을 펼치기 위해 지켜야 하는 몇 가지 구성 면에서의 법칙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밑줄을 친 대목이 많았지만, 대비의 역학을 다루는 부분 중 대비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무척 와 닿았다. 도니스는 수잔 랭거가 그의 에세이에서 한 말을 발췌해 대비의 의미를 설명한다. 삶과 예술이 모두 긴장과 해소, 균형과 불균형, 리듬의 일관성, 위태롭지만 지속적인 통일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삶 안에서 고요함 속에서도 맥박처럼 느낀다는 수잔의 표현은 대비를 "예술과 커뮤니케이션에서 내용을 명료하게 할 수 있는 필수 경로"라는 설명을 어렵지 않게 이해시켰다. 대비되는 경험과 감각이 없다면 그것은 삶이라고 부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예술 또한 삶과 맞닿아 있기에 삶의 그런 측면을 닮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런 섬세한 표현을 사용해 그가 디자인의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 덕에, 본질적으로 시각 문해력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느끼고 있는 지각 과정을 해부해 그것을 디자인에 의식적으로 투영할 수 있는 능력임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무언가를 가리거나, 혹은 비치게 하거나, 정확하게 표현하거나, 왜곡하거나 하는 표현을 기획자의 입장에서 다시 보는 것은 다시 말해 세계관을 공유하는 일이다. 곧 우리가 같은 언어로 말하는 것을 넘어 말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과 아주 유사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이를 이렇게 다시 정리해보면서 시각 문해력을 조금은 이해했다고 믿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처음 『시각 문해력』의 표지 상단에 있는 부엉이 사진의 의미를 처음에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읽은 후 이 표지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음을 느꼈을 때였다.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보이는 현실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카메라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이 부엉이의 사진이 실린 것을 발견했다. 잘 생각해 보면 시간과 공간 속에 고정된 존재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한 세계를 발견하고 경험해본 적 없는 시간을 탐험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진이라는 것은 특별한 테크닉 없이도 한 순간을 포착해낸다는 특성 자체만으로도 다분히 명료한 의도를 지닌 시각 매체라는 것을 느꼈다. 실수로 셔터를 누른 게 아닌 이상 그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다는 것만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다시 표지를 보며 나는 그 이미지를 그렇게 해석했다. 그렇다면 부엉이의 존재는 이 사진 자체가 지닌 상징적인 의미를 뛰어 넘어, 마치 책 중간 중간에 있던 문해력을 기르기 위한 연습 문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시각 매체로 가득한 세계에 살고 있다. 이토록 다채로운 시각 매체의 바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그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능동적인 보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시각 매체를 볼 때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배경지식에 더해 그것의 의도를 해석해볼 수 있는 최소한의 문해력이 있다면, 우리 안의 취향이나 주관을 정립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도니스는 책 260쪽에서 역설하는 내용과도 연결될 수 있다. 여전히『시각 문해력』을 읽을 강력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저자의 말이 확실한 동기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비예술가가 시각적 통찰력과 표현 잠재력을 개발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무엇일까? 첫 번째이자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자연스러운 반응과 개인적 또는 학습된 취향과 선호를 넘어서는 기준을 발전시키는 데 있다. 시각적으로 학습된 사람만이 유행과 일시적인 열풍을 초월하여 스스로 적절하고 심미적인 선택과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의 참여를 통해 시각 문해력은 시각적 방식에 대한 구사력과 표현 효과에 대한 통제력을 제공한다. 문해력이란 곧 능동적인 참여를 의미하며, 이는 시각 문해력을 갖춘 이들이 더 이상 수동적인 관찰자에 머물지 않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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