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클래식은 영원히 - 세르게이 말로프 내한공연 [공연]

글 입력 2024.04.2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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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세르게이 말로프.jpeg

 

 

연주자 세르게이 말로프는 러시아 출신 비올리스트로,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Violoncello da spalla)’의 거장이라고 불린다. 이 악기는 ‘어깨 첼로’라고 불리는데, 낮은 음으로 연주되지만, 바이올린처럼 어깨 위에 두고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바이올린부터 첼로, 더 나아가 콘트라베이스와 옥토베이스까지. 바로크 시대에 어깨와 발 사이로 무수히 많은 악기가 오르고 내리며, 바로크 시대의 악보를 다채롭게 꾸몄다.

 

이번 공연에서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곡들을 연주했다. 현대적 요소가 가미된 것은 클래식이 변주될 뿐, 가장 기본의 모습으로 영원함을 느낄 수 있었던 무대였다. 이 글을 통해 독자가 바로크 시대의 음악 특징과 함께 세르게이 말로프의 무대를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면 좋겠다.

   

 

 

바로크 시대, 바흐의 음악 - 관용성



음악가이면서 철학자인 장 자크 루소는 1768년, 자신의 책 <백과전서 Encyclopédie>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로크 음악이란 혼란스러운 화성, 변조와 불협화음으로 가득한 음악을 가리키는 단어다. 노래는 거슬리고 비정상적이며, 정확한 음정으로 부르기도 어렵다. 움직임도 단조롭다. 철학가들의 단어 '바로코baroco'에서 나왔다.”

 

장 자크 루소, <백과전서 Encyclopédie(1768)>

 

 

이번 무대에서 연주된 바흐의 곡들도 그렇다. 두 번째로 연주된 ‘바이올린 소나타 1번 G단조, BWV1001’은 네 악장으로 구성됐다. 1악장 ‘아다지오’, 2악장 ‘알레그로’를 지나 3악장은 느긋한 ‘시칠리아노’로, 4악장에서는 그와 반대되는 ‘프레스토’로 구성되어 있다. 각 악장을 지날 때마다, 선율들은 한데 묶여 가쁜 숨으로 춤을 추다가 어느 순간 흩어져 여유를 되찾는다. 또 규칙적인 리듬을 따르거나, 자유로움이 도드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가끔 완벽한 화음 대신 귀를 간지럽히는 불협화음이 들리던 때도 있었다. 또 규칙 속 삐끗한 박자도 있었다. 그때마다 어떤 무용수가 춤을 추다 실수로 넘어진 것 같은 아찔함이 닿았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연주는, 무용수가 '넘어짐'도 안무로 승화시키는 장면을 상상하게 했다. 그러자 그 '어긋남'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런 바흐의 포용, 관용의 자세가 이 음악에 그대로 녹아있었다.

 

실제로 바흐는 ‘불협화음’이 도드라지는 음악을 작곡했다고 알려져있다. 이는 바로크 시대의 관용적인 주법과 화성, 그리고 선법보다는 조를 중시한 음악 특징이 성행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 길을 따른 세르게이 말로프도 모든 순간 음악과 함께 했다. 시대 전체를 바흐의 음악으로 아우르면서 말이다. 그렇게 구현된 무대를 보며 나조차도 넓어지는 관용의 힘을 고스란히 느꼈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연주하다 - 루프 스테이션과 전자 바이올린


 

바로크 시대는 ‘관용성’ 외에 ‘통주저음’이라는 키워드로도 불렸다. 통주저음이란 계속 베이스, 숫자가 붙은 낮은음을 뜻한다. 따라서 통주저음 연주법은 기타 코드를 보고 자유롭게 음을 쌓아 연주하는 것과 같이, 숫자의 줄임표에 따라 즉흥적으로 건반주자와 류트 주자 등이 화성을 보충하면서 연주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원래 교회 오르간 주자가 메모 대신 간단한 악보를 보며 즉흥적으로 연주한 데서 유래했다.

 

세르게이 말로프는 이 연주법을 현대적인 방법으로 구현했다. 바로 ‘루프 스테이션’을 통해서다. 루프 스테이션은 소리 일부를 녹음해 반복 재생하는 장치다. 특정 소리를 재생해 놓고 그 위에 다른 소리를 쌓을 때 사용된다. 이번 독주에서도 마찬가지로 풍성한 소리나 성부를 위해 이 장치를 이용했다. 악기로 특정한 음을 연주한 뒤, 반복적으로 베이스가 될 선율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연주자 마음대로 페달을 밟고 떼가며 즉흥적으로 만들어가는 화음이 귀를 집중시킨다. 그리고 그 위에 흐르는 물처럼 흩뿌려지는 모든 음이 눈부신 빛의 산란으로 다가온다.

 

더불어 주목할 점은 바로 ‘자유성’이다. 루프 스테이션으로 구현된 베이스 음들에는 다양한 연주법이 그 기반이 됐다. 현을 긁는 소리부터 현을 튕기는, 더 나아가 악기의 울림통을 때리거나 가볍게 치며 내는 소리까지. 현악기의 연주법은 오직 '현의 마찰'이라고 여겼던 '관념'이 깨졌다. 곧 열린 세상은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될 수 있다’라는 자유로운 이치가, 넓은 평야로 이쪽을 향해 팔을 벌리고 있었다.

 

무대가 빛났던 마지막 이유는 세르게이 말로프가 루프 스테이션 장치와 함께 ‘전자 바이올린’으로 독특한 연주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전자 바이올린은 바이올린족 악기 중 가장 높은 음역을 연주할 수 있다. 동양풍을 물씬 품은 선율과 하늘을 찌르는 듯한 높은 소리는 공연장에서 자연스럽게 하늘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 넓은 도화지에 정말 갈매기가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듯, 그는 현의 마찰, 그리고 루프 스테이션 장치로 여러 마리의 갈매기 소리를 구현한다. 또 철썩이는 파도 소리에 다시 고개를 내려보니, 어느 순간 바닷가의 모래를 밟고 서 있기도 했다. 그렇게 관객들은 공연 내내 살아보지 못한 바로크 시대의 여행자였다가, 바닷가의 산책자였다가, 이웃 나라 일본인이었다가, 다시 한국의 공연장 관람객이기를 차례대로 경험하게 된다.

 

 

 

”Classic is Classic” - 클래식은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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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a Wesely

 

 

그러고 보니 처음 클래식을 접하기 위해 방문했던 서점에서도 잔잔하게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음악을 헤드폰으로 막고 있었던 시간이 후회스러워 공연장에서 나올 땐 잠시 헤드폰을 목에 건채 바람 소리를 들었다. 바람에 실려 오는 도시를 들었다. 차의 경적과 시계탑이 9시 정각을 알리는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잔잔하게 귓가에 맴돌았다. 지금도 들리지 않는가? 주변의 모든 소리가 언제든 클래식이 되기 위한, 베이스음이 되기 위한 준비를 마친 채 세상에 있다. 다양한 연주법과 현대 장치로 베이스음을 구축했던 세르게이 말로프의 무대가 그랬듯 말이다.

 

무대 위 모든 조명이 세르게이 말로프에 집중되던 80분의 눈부신 시간이 지나고, 공연이 막을 내릴 때 여운을 삼키려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무대의 잔상이 어둑한 눈앞에 선명했다. ‘Classic is Classic’이라는 말처럼, 클래식은 그런 잔상으로 남을 것이다. 숨은 듯, 숨지 않은 듯. 또 발견한 듯, 발견하지 않은 듯. 가장 클래식한 모습으로,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박정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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