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꿈 사랑 믿음 사랑 꿈 사랑 꿈 꿈

K에게
글 입력 2024.04.2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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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내 거, 라고 말하면 용기가 난다.

 

작년 여름엔 일기에 ‘좋다’는 말을 자주 적었던 기억이 나. 어제 먹은 김치볶음밥과 지금 재생하고 있는 뉴진스의 음악이 좋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수플레와 생맥주가 있었던 오늘은 너무 좋은 날이었다고 썼다.

 

때때로 너무 헤프게, 어쩌면 나에게 할당된 양이 있을지도 모를 좋음을 다 소진해 버리는 건 아닌지, 또 미세하게 다른 좋음의 뉘앙스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일엔 게으른 게 아닌지 주춤거렸던 날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내 진심은 그때그때의 좋음을 아낌없이 다 쓰고 싶은 마음뿐이라는 것도 알았다.

 

어차피 이런 판판하고 단면적인 즐거움도 다 한때야, 오래 가도 한철이야, 그러니 이다음은 생각하지 않겠다, 는 나로서는 드문 결심으로. 사람의 뇌는 본래 즉각적인 만족감을 좋아하도록 설계되어있다고 하니까,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았던 때라고도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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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작년의 여름은 ‘좋은 마음 같은 건 그만 먹을 때가 됐다’는 비관과 회의의 긴 터널을 지난 뒤 처음 맞는 새 계절이었다.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 몇 차례의 낙방만으로 그 시절의 불안과 위태로움의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 작년 봄은 내가 꼭 물먹은 수건 같았다.

 

어떤 날엔 눈물을 짰다는 관용표현이 문자 그대로 이해됐어. 지원하고 싶었던 회사에 이메일을 보냈던 날이었는데, 있는 깡 없는 깡을 끌어내 쫄지 말자, 종일 애를 쓰다 자려고 누웠더니 대뜸 눈물이 났다. 물에 적신 수건의 양 끝을 잡고 돌릴 때처럼 주륵주륵 눈물이 즙처럼 짜여 나왔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쭉쭉 짜고 난 뒤에야 후련한 마음이 되었고. 그리고 그날 저녁엔 너와 통화를 하기도 했지. 그래서인지 그날의 울음은 어떤 설움에 네가 준 위로가 안도감이 되어 섞인 주스,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내가 너에게 갖고 있는 고마움에는 이런 기억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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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그 여름을 얼렁뚱땅 보낼 수 없었다. 아이스크림을 입가에 묻히고 뻥- 단순한 얼굴로 맛있다, 하던 어린 시절처럼 좋은 감정을 쫙 펴 혓바닥에 붙이고서 완전한 달콤함이라는 걸 나도 맛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너에게 먹은 마음도 이렇게나 감정적으로, 그러나 이성과 논리 따위로 방어하려는 마음 없이 아주 솔직한 것으로 왔어. 나는 그런 내 모습이 좋았다. 너한테 용기를 얻어서 그걸 너에게 써본 것 같은 기분이야.

 

하지만 마음과 말 사이 거리는 멀었다. 내 결심과는 달리, 가령 오렌지가 좋다는 말과 네가 좋다는 말은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었다. 아무래도 오렌지는 마음을 Unfair하게 만들지 않으니까. Unfair, 직역하면 불공평한, 이라는 의미지만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느슨하게 포획되는 의미들이 더 마음에 든다. 그러니까 ‘좋다’는 말이 어떤 중력을 갖고 있는 듯 한 번 말하고, 두 번 말하고, 세 번 말할수록 너와 나 사이의 저울이 심하게 기우뚱거리는 것 같았다. 내가 너에게 한정해 취약한 사람이 되었음을, 우리 관계에서 내가 약자가 됐다는 사실이 분명해질수록 조바심과 갈급함 앞에 맥을 못 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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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제목은 윤지영의 음악에서 출발했다. 윤지영의 음악은 내게 언제부터 여름이었던 걸까.

 

아마 여름의 초입이었던 것 같아. 내가 꼭 부품 하나가 튕겨 나간 로봇 같다고 생각한 건. 이 정도야 당장 없어도 그만, 이라고 오만하게 굴었던 탓인지, 나는 여름 내내 ‘추후’를 ‘후추’로 잘못 쓰거나 ‘끝’을 ‘꿈’으로 잘못 읽는 것과 같은 사소한 실수들과, 내려야 할 역에서 내리지 못해 앞과 뒤를 연달아 왔다 갔다 하는 사소하지 않은 불운에 시달렸던 것 같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어. 장마철이었고, 나는 병원의 휴가 기간을 확인하지 않은 탓에 허탕을 치고 퇴근 후 카페에서 젖은 양말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빗물이 세차게 곤두박질치고 급기야 경사를 따라 흐르는 물길이 만들어졌으니, 일찌감치 빠른 귀가를 포기하고 관성적으로 음악의 재생목록을 거슬러 올랐다.

 

그렇게 맞닥뜨린 이 대목은 윤지영의 정규 1집 중 몇 곡. 그저 재생한 시간순으로 쌓인 평범한 구간 중 하나였을 텐데, 문득 이게 며칠간 내가 쓴 마음의 영수증 같았다. 멀어진 자리에서의 감상은 그렇다. 꿈 한 번에 사랑 한 번, 믿음도 한 번, 다시 사랑 꿈 사랑 꿈 꿈. 이렇게 쓰고 보니 좀 어지럽고, 꿈 사랑 믿음 사랑 꿈 사랑 꿈 꿈, 입 밖으로 불러보면 이렇게 예쁘기만 해도 괜찮은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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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행인 나를」은 내가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노래. 사랑을 빠짐없이 느끼고 또 이해하고 싶을 때, 그리고 사람이 밉고 싫을 때 이 노래를 들어. 이 곡의 현악기 소리에 집중하면 머리칼이 빗겨지듯 삐쭉삐쭉 솟고 울렁거리는 감정들이 가다듬어진다. 활과 줄을 섬세하게 마찰하고, 꼭 사람의 살을 긋는 것처럼 날카롭게 그어지는 감촉과 떨림을 느끼면, 나는 음악이 있어서 덜 퍽퍽해지는 하루라고 가볍게 위안하게 된다.

 

또 이렇게 대화상대가 필요한데 징징거리는 말이 될까 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대신 역에서 과자를 한 봉지 사서 와그작와그작 씹는 날엔, 너를 떠올리기도 한다. 우리는 친구였으니까, 너도 비슷한 이유로 내게 전화를 걸었던 날이 하루쯤은 있었겠지, 하면서 말이야.

 

어떤 날엔 네 목소리가 좋지 않았는데, 너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는지 기억을 더듬는다. 묻는 게 좋을지 묻지 않는 게 좋을지 네 마음을 내다보는 건 내 추측에 불과할 테니 나는 약간 조심스러웠던 것만 기억이 나는데, 오늘의 나는 나를 울적하게 또는 분노하게 만든 것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네, 생각한다. 또 그보다는 그냥 재밌는 얘기를 듣고 싶다, 기분 좋아지는 말을 듣고 싶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는 나도 그날 대책 없이 신나는 얘기를 해줬으면 좋았을까 다른 가정을 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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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늦가을, 부산에 여행을 갔다가 소품샵에 들렀다. 머리핀과 반지를 사고 받은 포장지에는 가게 이름이 적힌 종이가 달려있었다. 거기에 적힌 문구는 “LOVE IS GIVING”,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했다. 가족이나 친구의 선물을 사려고 들르는 관광객이 대부분일 테니, 소품샵의 존재 이유에 맞는 평범한 이름일 뿐인데 그게 예사롭지 않게 읽혔다. 돌려받지 않아도 되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어.

 

‘기브 앤 테이크’라는 유명한 말이 있고,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라고도 하잖아. 그런데 꼭 그래야만 할까, 생각해봤어. 다른 건 모르겠지만 그게 내 마음을 한결 낫게 한다는 점은 분명했다. 기대하지 않는 것, 또 사랑하는 만큼 주는 것. 이렇게 생각하면 나는 여전히 한참 부족한 사람이고,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한 내 노력 중 하나가 ‘내 마음은 내 거’라는 문장이라는 점은 역설적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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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건 기억해 볼 만한 장면. 작년 여름, 창경궁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이었다. ‘해방촌, 해방촌입니다’ 안내방송의 목소리에 버튼이 눌린 것처럼 재작년 늦가을의 기억이 재생됐다. 가파른 오르막길과 약간 쌀쌀하고 휑한 카페 야외 테라스, 그리고 계단을 쭉 오르면 다다르는 장면. 뒤를 돌았더니 노을이 펼쳐져 있었던가, 아니면 버스 정류장으로 올라가는 동안 건물에 가려져 있던 해가 차츰 시야에 들어왔던가.

 

장면의 앞뒤는 지워지고 사진처럼 남은 건 네 뒷모습이다. 건물들이 해 아래로 깔린 풍경을 보며 감탄하다 대화를 멈추고 하늘을 응시하는 뒷모습. 저 앞쪽의 노을을 보다 네 뒤통수로 시선이 닿았다가, 끝엔 둘을 함께 놓게 됐던 기억이 나.

 

그 장면에 이름을 붙인다면, 나는 사랑스러운 장면이라고 부를 것 같다. 그러니까, 말로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그 순간을 통째로 사랑, 스러운 장면이라고 기억하고 있어.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작고 동그란데 제법 진지해보이는 네 뒤통수가 사랑스럽다고 - 이것은 보편적인 뉘앙스로 - 나도 모르게 생각해버렸던 것 같다.

 

“무슨 생각해?” 묻고 싶었고, 또 그냥 지켜보기만 하고 싶었고. 꿈을 꾸고 있을까, 나는 알지 못하는 과거를 넘겨보고 있을까, 아니면 황홀한 풍경에 기대어 생각을 비우는 중일까, 오해가 필연적으로 섞이는 중인 걸 알면서도 모르는 새 멋대로 상상해버리기 시작한 그때. 무엇이 됐든 골몰하는 네 뒷모습이 마음에 들어왔다고 고백해. 그 뒷모습을 계속 보고 또 봐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도.

 

그날의 구체적인 기억을 찾느라 일기를 뒤적였는데, 이 내용과 더불어 나도 잊고 있던 약속을 일기가 기억하고 있다. 다음에 또 오자, 고 누군가 얘기했다는데, 너는 기억할까. 일기를 읽는 건 꾸준하게 변하는 나에 대한 발견. 안개가 낀 것처럼 감정이 희뿌옇고 불투명해서 어떻게 서술해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그럴 때 나는 기억하고 싶은 사실들을 증거처럼 기록하는 걸로 솔직한 고백을 대신한다는 걸 알게 된다. 부러 표현하지 않아도 마음이 흘러나오는 걸, 한참 넘겨본다.


 

(...)

잠시 죽었다가 깨어나는 삶과 죽었다가 잠시 깨어나는 삶. 둘 중 무엇을 선택하겠냐고 물었다. 나는 죽었다가 잠시 깨어나 있는 것이면 좋겠다. 어디서부터 시작이고 어디까지가 끝인지 알 수 없어서 자꾸 깨어나는 것 같아. 마지막 인사는 마지막에 하는 인사가 아니라 마지막이 올 때까지 하는 인사일까.

따뜻한 물로 손을 씻을 때마다 네 생각이 난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일들은 마음에 오래 남는다고 하더라.

 

안녕, 잘 지내. 여름을 잘 보내. 

 

- 안미옥, 「여름잠」

 

 

너는 내게 아직도 최신의 인물이지만 거의 1년이 지났고, 시간과 노력의 힘으로 이제는 멎었다 풀렸다 하는 물렁한 감정이 아닌 형체가 완전해진 단단한 돌을 쥐듯 그 여름을 떠올릴 수 있다. 때때로 그때의 내가 진짜 원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곤 했다. 내가 사랑을 필요로 하는 순간.

 

그것의 가장 처음은 이기적이게도 내가 기댈 곳이 필요한 순간이다. 의존과 의지는 구별해야 하겠지만, 부족한 사람들끼리 기대고 기댐 받고 가끔은 어른답지 못하게 돼도 괜찮은, 그런 울타리의 감각은 상상으로나마 안정감을 준다. 나에게 변하지 않는 믿음을 줘, 응원을 줘, 사랑을 줘, 또 그냥 지켜봐 줘, 이건 부끄럽지만 내 깊은 곳에 있는 가장 솔직한 말. 사실 각별함 같은 건 의미를 부여한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고 또 영원할 수도 없기에 신기루에 불과할지 몰라도, 누구에게나 정착한다는 감각은 어려운 것이고 또 그래서 자꾸만 사람을 찾게 되니까, 사랑도 불가피한 것 같다.

 

너에게도 왔을 이 봄이 따뜻하기를 바라. 봄볕 아래에선 평안하고, 세상의 모든 색을 끌어다 쓰는 듯 아름다운 풍경을 빠짐없이 눈과 마음에 담으며 걷고 또 뛰기를 바라. 이중엔 너에게 내키지 않는 것들도 있겠지만, 마찬가지로 너에게 닿지 않아도 무관할 내 바람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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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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