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유인원이 먼저냐, 인간이 먼저냐 [영화]

영화 <혹성탈출> 시리즈
글 입력 2024.05.2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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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과학기술의 종착지는 결국 디스토피아일까.

 

인간은 자신이 만든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지적 능력을 잃고, 유인원은 그로 인해 지적 능력을 얻는다. 인간은 짐승처럼 말을 못 하고 유인원은 인간처럼 말을 한다. 유인원은 그런 인간을 사냥하고, 가두고, 생체실험을 한다.

 

혹성탈출(1968)에서 그런 세상에 불시착한 우주비행사는 ‘이런 곳에 떨어지다니, 최악이야.’라고 한다. 이 대사처럼 인간인 우리는 혹성탈출을 보며 유인원의 잔인함에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영화 속 그들에게 인간은 그저 말 못 하는 짐승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을 쉽게 비난할 수는 없다. 영화 밖에서는 우리도 같은 동족이 아니라면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인간이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혹성탈출은 오리지널 5편, 리메이크 1편, 리부트 4편으로 50년 넘게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는 영화다. 최근에 개봉한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를 보고, 컴퓨터 그래픽 기술과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에 매력을 느꼈다. 이후 오리지널 시리즈 2개와 리부트 시리즈를 모두 정주행하게 됐다.

 

오리지널 영화 속 유인원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내세운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인간 진화의 단계 중 하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조상이 유인원이라는 가설을 믿는다.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오리지널 시리즈와 리부트 시리즈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돈다. 생체실험을 당할 위기의 인간을 과학자 침팬지가 구해주고, 생체실험하는 곳에서 폐기될 위기에 처한 침팬지를 과학자 인간이 구해준다. 유인원과 인간은 서로의 도움으로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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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과 모든 유인원이 이들처럼 돕고 살면 좋겠지만, 그건 매우 희귀한 케이스이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서로를 혐오한다. 하지만 웃기게도 그들은 서로를 닮아 있다. 권력다툼, 탐욕, 배신. 반대로 동료애와 연대라는 사회적 구조와 관계에 대한 양면의 모습. 그뿐만 아니라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내적 갈등과 혼란, 저항, 정의까지도. 집단적 측면에서나 개인적 측면에서나 다를 바가 없다.


오리지널 시리즈의 주인공은 우주비행사 테일러다. 유인원이 지배하는 세상에 떨어진 곤경에 처한 인간의 승리를 원하는 것은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부트 시리즈의 주인공은 침팬지인 시저(1~3편)와 노아(4편)다. 그리고 인간인 나는 그들이 죽지 않기를, 승리하기를 바란다. 인간의 승리, 유인원의 승리가 아닌 정의의 승리를 바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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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의 승리와 이득, 윤리와 도덕이라는 선택의 기로 앞에서 집단은 전자를 선택한다. 악의 목소리는 크고 선의 목소리는 작다. 집단에 속한 목소리가 작은 이들은 후자를 원함에도 집단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또는 제아무리 리더라고 해도 다수의 선택이 모여 이미 시작된 종 간의 전쟁은 되돌릴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이 전쟁으로 얻은 것이라고는 가족과 친구를 잃은 슬픔뿐이다. 과학기술을 숭배하며 더 많은 것을 원했던 이들의 앞에는 지구의 종말과 죽음이라는 소멸만 존재했다.


지능을 가진 인간이 지능을 갖기 시작하는 침팬지 시저를 보고선 ‘인간 같다.’는 말을 내뱉는다. 침팬지가 인간 같다면 인간 같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유인원들이 모두 말을 하고 지능을 가졌을 때 그들을 모두 인간 같다고 하지 않았다. 인간 같다는 말을 들은 것은 시저뿐이었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은 지능을 가진 것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시저는 인간 같은 유인원이다. 막 지능을 가지기 시작해 사람의 언어로 말하지 못하는 대신 그는 눈빛으로,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그는 가족이 멸시를 받을 때는 분노하고, 인간으로부터 고통받는 동족들을 보며 동정심을 가지면서도 괴롭게 만든 인간에게 자비를 베풀기도 한다. 그렇기에 인간답다는 것은 상대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줄 안다는 것과 같은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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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이야기다.


혹성탈출은 결국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며 끝이 난다. 시저는 인간의 집에서 자랐지만 결국 유인원들이 있어야 할 자연으로 동족들과 함께 돌아간다. 노아는 납치된 독수리 부족들을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데려가기 위해 싸운다. 결국 모든 것은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한다. 인간은 인간이 만들어 둔 도시 속에서, 유인원은 자유롭게 나무를 탈 수 있는 드넓은 정글에서 살아야 한다.


유인원이라서 나쁜 유인원이고, 사람이라서 좋은 사람인 것은 없다. 좋은 행동을 하기에 좋은 유인원이 되는 것이고, 좋은 행동을 하기에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종에 따라 특성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 따라 특성이 결정될 뿐이다. 어차피 다 같은 동물이다. 자이라가 테일러를 도와준 것처럼, 윌이 시저를 도와준 것처럼. 결국 지구에 사는 한 모든 생명체는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 정글은 유인원의 것, 도시는 인간의 것이라 한들 지구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우리의 집’을 지키는 것을 망각한다면 결국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의해 절멸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돌고 돌기 때문에.

 

 

[이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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