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t solo album] track08.

글 입력 2024.04.24 15: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크기변환]track08..jpg

[illust by Yang EJ (양이제)]

 

 

[NOW PLAYING: Delilah - Tom Jones]


오늘은 주제를 조금 달리 해볼까요.


일전에 트랙3번 기고글에선 주인공이 사는 집을 상상해서 그려보았습니다. 그림과 함께, 어느 장소에 어떤 소품을 배치하느냐에 따라 그 현장에 있는 인물에 대한 감상과 해석도 달라진다며 공간이 가진 힘에 대해 설명드렸는데요. 오늘도 역시 장소와 관련된 이야기지만 반대로 사람이 공간에 가지는 힘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먼저, 저는 전처럼 하나의 장소(집)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거치는 '경로'까지 상상해 보기로 했어요.


우리는 하루 동안 수많은 장소에 들르고, 지나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장소들에는 항상 사람들이 저마다의 위치에 자리해 있어요. 꼭 어디 건물이나 터가 아니어도 행선지를 위해 지나쳐 온 길에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모습은 또 어떻던가요? 사람들은 단순히 길 위에 서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대화를 나누거나 행동을 주고받으며 각자만의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찌푸린 표정의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무표정하게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장소는 그렇게 다양한 일상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상황을 정해 보겠습니다. 아침 찬 기운에 몸을 제대로 추스르기도 힘든 어느 추운 겨울의 월요일 출근길을 떠올려 볼까요. 사람들은 대다수 무뚝뚝하거나 어딘가 짜증스럽거나, 초조하거나 피로하고 지쳐있을 겁니다. 평소보다 굼뜬 다리로 잰걸음질을 하느라 보폭은 일정함에도 몸 어딘가가 삐그덕거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쉬어갈 틈은 좀처럼 없죠. 그런 날의 공기를 한번 떠올려 보세요.


이제는 긴 연휴날의 거리를 상상해 봅시다. 아까 상상한 출근길과 같은 거리입니다. 그러나 마치 다른 곳 같습니다. 길을 걷는 사람 수에도 차이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 밝고, 나른하기까지 합니다. 걸음도 늘어졌습니다. 빠르게 걷기 위해 발끝까지 힘을 주며 긴장하고 있던 다리가 지금은 운동에 그대로 제 몸을 맡기며 휘적휘적 흔들리고 있어요. 일정한 박자를 타던 인공적인 도시 소음 위에 사람들의 불규칙한 대화 소리가 덮입니다. 이 거리가 정말 좀 전에 상상한 출근길과 같은 곳인가요?


이렇듯, 거리는 그곳을 채우는 사람에 따라 얼굴을 바꿉니다. 길 위에 사람이 없을 때도 마찬가집니다. 사람이 없는 곳은 한적함이나 혹은 쓸쓸함, 으스스한 공포감을 줍니다. 때론 거리가 어둡기까지 하면 괜히 시선을 좌우로 움직이거나 뒤를 돌아보며 주변을 살피기도 합니다. 아무도 없음에도 길 위에 상상 속의 사람을 한 명 세우곤 경계하는 겁니다. 결국, 사람은 설령 장소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거리의 인상을 좌우합니다. 그런 이유로 인물의 경로를 구상하기 위해선 거리 위의 사람들까지도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느꼈습니다. 인물이 지나치는 수많은 엑스트라의 대략적인 인상이나 행동이 곧 그 거리를 설명해 주리라고요.


오늘의 장소인 레코드샵은 그림을 완성하기 전까진 별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장소 속의 엑스트라를 완성하고 보니, 하나의 이야기가 떠오르게 되더군요. 레코드샵 직원은 손님이 없는 카운터에서 깜빡 잠들고 말았습니다. 손님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청소용품을 아무렇게 기대어 놓아도 불평할 사람은 아무도 없죠. 그런 엑스트라의 행동을 먼저 설정하고 나니, 그림의 장소인 레코드샵은 아직 대중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 새로운 장르의 노래들만 모아 파는 비주류 상점이 되더군요. 깔끔하게 단장해 두었으나 손님이 너무 없는 탓에 바닥에 발자국 한번 찍히지 않는 너무 깔끔한 가게로요. 곤히 잠든 직원의 존재로, 상점은 극적인 가사의 노래가 흘러나오더라도 좀처럼 한가로움을 감출 수 없는 곳이 되어주었습니다.

 

 

 

양은정 에디터태그.jpg

 

 

[양은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5.0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