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복하게 한 걸음 다복하게 두 걸음 [사람]

글 입력 2023.12.2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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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지난 나를 참 많이 되돌아보는 계절이기도 유난히 주변을 많이 챙기는 날이기도 해. 왜 그런 거 있잖아. 항상 이야기의 끝에는 "추운 겨울이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하루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감기가 유행이래, 꼭 따뜻하게 입고 나가", "늘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등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들이 붙는 거, 난 이래서 겨울이 날씨는 춥지만 마음은 따뜻한 계절인 것 같아.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도 매년 순수한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잖아. 타인을 생각하는 포근한 마음들이 소복이 눈처럼 쌓이는 연말이야.

 

나의 일 년은 생각보다 하루하루가 가득하게 즐거웠어 치열했고, 이번 연도는 네게 어떤 날들이었을지 궁금하다. 나는 3월에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동네 친구한테 전화해서 너무 외롭다고 엄청 슬퍼했던 기억이나. 그때 친구는 시간이 답이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일을 해보라고 했었는데 글쎄, 그냥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도 너무 어렵고 알지 못하는 한 동네에 갇힌 느낌이어서 좀 힘들었던 것 같아. 그렇게 어색하고 쌀쌀한 3월이 지나고 4월. 나는 몇 번의 시도 끝에 내 버킷리스트 맨 위에 있던 영화관 알바를 시작했지. 영화관 알바는 무지 재밌었어 처음에 다들 "일 어때요 힘들지 않아요?" 했었는데 매번 "타이쿤 같고 재밌어요!" 했던 순간이 생각나 근데 정말 재밌었어. 안 닦이는 때를 벗겨내려 팔이 부러지게 판을 닦은 날도 기억난다. 영화관 사람들은 정말 좋았고 재밌었어. 마음이 잘 맞는 친구도 있었고 챙겨주고 싶은 친구도 내게 정말 소중한 친구도 생겼지. 사람을 대하는 법도 많이 배웠어. 상황을 대처하는 법도 많이 배웠고, 그 사이에 틈틈이 단기 알바도 했는데 거기에서도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났어. 그렇게 사람들과 만날수록 나는 사람에게서 배울 점을 찾기도 다양한 분야의 일을 경험해 보며 세상의 경험치를 조금씩 쌓아가고 있었지.

 

그렇게 적응과 바쁜 일들로 5월과 6월이 지났어. 영화관이 성수기라 매일을 눈 뜨고 일 가고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 그러다 1년의 반 정도가 지나니 슬슬 걱정이 됐어. 서울에 적응도 어느 정도 됐는데 뭔가 일 말고 한 게 없는 것 같아서. 6월에 누군가는 내게 휴식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그동안 어떤 걸 했는지 물었고, 또 누군가는 아직 휴식 기간이 많이 남았다며 하고 싶은 걸 찾아 하면 되겠네라는 말을 했어. 참 다들 말이 다르지? 그래서 나는 처음엔 모두의 말을 들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불안했고 걱정됐어. 근데 이렇게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르잖아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가진 건 아니니, 내 생각을 가장 존중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어. 결국 우린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거고 이건 내 인생이니까, 남들보다 빠르게 흘러가도 느리게 흘러가도 내가 한 선택에 후회 없게 내 의견을 가장 존중하자 이거지. 그래도 아무것도 안 했다기엔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그 순간들도 내겐 배움의 연속이었을 텐데 그땐 불안해서 좀 자책했어. 그리고 그 자책이 자극이라도 된 듯, 단기간에 장편 영화 한 편을 편집했지. 가끔씩 불현듯 찾아오는 자책을 안아주면 위로가 되어 다시 피어나게 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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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은 새로운 곳에 여행을 참 많이 다녔어, 나를 찾아다니는 날들의 연속이었지. 3월과 달리 혼자여도 너무 재밌었어. 스스로에게 빠져있는 날들이 많았거든. 좋아하는 음식을 정성스레 차려 먹고 서울에 좋아하는 동네도 생겨서 혼자 자주 들리곤 했지. 제주도로 여행도 가고, 제주도 여행은 정말 좋은 기억들로 가득해 정말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왜 시원한 기억들뿐일까. 특히 아침에 가볍게 입고 아침 산책을 한 기억이 새록새록 해. 그날은 아침 일찍 언니가 일어나 숙소 창문 밖을 보라 했는데, 잠깐 보이는 바다의 실루엣에 벌떡 일어났었어. 아침 햇살이 드리운 바다와 탁 트인 해변로가 어디로 갈진 몰라도 그냥 무작정 걷고 싶게 만들었지. 바쁘게 여행을 하면 주변을 잘 못 보잖아. 근데 그날 산책을 하며 길가에 아주 예쁘게 핀 꽃도 보고 한쪽 구석에 자란 금귤들도 봤어. 돌멩이 뒤를 걸어 다니는 작은 게도 보고 현무암 돌담 위에 올려진 예쁜 조개껍질들도 봤지. 빛이 눈부시게 내린 조개껍질들이 반짝거리는 게 참 예뻤어. 인천에 여행 갔던 기억도 난다. 처음 인천에 가봤는데 비가 정말 엄청나게 내렸거든, 근데 잠깐 우산을 내려놓고 비를 펑펑 맞으며 놀았어. 여행이라 즐거움으로 허용되는 이 감정들이 좋더라. 여행은 단어만으로도 일상에서 특별한 감정을 선물해 주는 것 같아.

 

그렇게 8월. 모든 감정이 안정적이었어. 그냥 요동치기보단 편안하고 무던한 날들의 연속이었지. 여전히 스스로가 가장 재밌었고 영화관 일은 어느새 익숙해져 이제 누군가를 가르쳐 줄 정도의 익숙함을 가지게 되었어.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잔잔하게 흐르고 있던 마음이었는데 갑자기 영화관 매니저님의 소개로 마주한 누군가의 등장으로 인해 흐름이 멈춰. 아직도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가 생각나, 그때는 알았을까 그 사람과 내가 이렇게 만나게 될 줄. 처음으로 누군가를 먼저 좋아하게 된 감정은 정말 특별했어. 모든 행동에 그 사람의 감정을 신경 쓰게 되고 노력하게 됐지. 최대한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고 조심스러웠어. 좋아하는 마음은 신기했어. 따지고 보면 우린 각자잖아. 서로가 누군지도 몰랐고 이제 알아가고 있는데, '나는 이 사람에게 왜 이렇게 잘 해주고 싶을까?' 생각했고 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움직이는 마음과 감정의 변화가 좀 더 나를 확장 시키는 것 같았어.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유가 명확했어. 아주 오래도록 말할 수 있었어. 왜 좋은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들을. 그렇게 8월부터 내 삶의 감정은 더욱 풍부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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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은 다채롭더라, 어느새 가을이 다가오고 좋아함이 사랑으로 번지며 삶의 색은 더욱이 다채로워졌지.

 

드디어 그리웠던 본가에도 다녀왔어. 오랜만에 본 가족들은 너무 애틋했고 참으로 다정하게 날 맞이해주었지. 작은 동네인데 구석구석 돌아보며 추억이 드리웠던 음식들도 혼자 먹고 2시간 동안 걸었던 것 같아. 근데 이상한 게 변한건 하나도 없는데, 뭔가 변한 느낌이었어. 어릴 적엔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도 않던 동네가 다시 둘러보니 이 동네도 자신만의 색이 있구나 싶더라. 예전에는 못 보던 것들도 다시 보니 보이고, 졸업했던 중학교과 고등학교도 지나가봤어. 마침 고등학생들이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나오는데, 그때 나의 고등학교 때 추억들도 많이 생각났어. 뭔가 지나간 추억들이 기분 좋은 쓸쓸함이 된 것 같은 감정이었어.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다시 못 돌아가는 그날들이 얼마 소중했었는지 순간 확 와닿더라.

 

그렇게 다시 서울로 돌아와 새로운 일들을 하나씩 하기 시작했어. 예전에 광고기획 공모전을 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 했던 기획이 생각보다 너무 재밌는 거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서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거웠어. 그리고 난 어릴 적부터 말하기를 좋아했었고 대학교 때도 발표는 내가 하고 싶을 만큼 앞에서 말하는 게 너무 좋았어. 그래서 기획을 해 PT를 하고 설득을 해서 결국 프로젝트를 성공해 내는 일이 너무 멋지게 느껴졌지. 아주 작게 PD의 꿈을 심었어. 하지만 내가 말한 이 부분은 PD의 한 부분의 일일뿐 배워야 하는 것도 해야 할 일도 내가 어려워하는 일도 많았어. 그래도 해보고 싶으니 작게 도전하고 있어. 그래서 지금까지 두 편의 영화 기획서를 썼어. 다행히도 긍정적인 평가를 주셨지만 그래도 아직은 처음이니 아쉬운 게 많았어. 제안서라든지 협찬 ppt라든지 다른 영화와 드라마 기획서를 보고 배우는 중이지만 여전히 어려운 것 같아. 이게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 생각도 들지만, 도전이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그전에 배워야 할 것들이 많으니 차근차근 밟아나가야지. 이런 것들이 쌓여 훗날 내게 큰 도움이 될 테니. 배움이란 늘 즐거운 것 같아. 스스로 책임지고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는 일들이 재밌어.

 

10월은 글 쓰는 것에 대한 감정이 더욱 커진 달이야. 평소에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었던 경험이 있었는데 바로 아트인사이트라는 곳의 에디터가 돼보고 싶었어. 나는 혼자 내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렸었는데 조금 더 내딛고 싶은 거야. 혼자만의 갇힌 세계에서 조금 더 밖을 두드려 보고 싶었던 거지. 근데 '과연 내가 될까?'라는 생각도 있었어. 세상에는 글에 진심인 사람도 너무 많았고 잘 쓰는 사람도 너무 많아. 나는 5월부터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해서 미숙하다 생각했거든. 그래도 누구보다 글에 대한 애정이 크고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도 컸어. 글로써 사람들의 곁에 있고 싶었어. 작고 따뜻한 햇살이 돼주고 싶었던 것 같아. 내 글로 삶에 작은 따스함이 맴돌기를 바랐지. 그런 마음에 지원서를 썼는데, 뭔가 너무 꾸며진 느낌이었어. 합격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 간절해 보였지만 글이 안 써졌어. 그러던 중 한 언니가 내 글을 보며, 글을 쓸 때 느껴지는 나의 결과 색이 있는데 뭔가 잘 안 보이는 것 같아서 조금 더 나의 색이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해줬지. 그래서 다 지우고 다시 써 내려가기 시작했어. 최대한 솔직한 내 진심을 내려 적었지. 합격을 하지 않아도 좋았어, 그냥 이렇게 진심을 전달하고 싶었지. 그리고 나는 몇 주간 지원서를 쓰며, 정말 글에 대한 나의 진심을 알아가게 되었어. 나는 글쓰기를 사랑했던 것 같아. 그렇게 마지막 날, 지원 마감 시간이 다 되어서야 제출 버튼을 눌렀는데 뭔가 정들었던 나의 글을 떠나보내는 게 시원 섭섭했고 진솔한 마음이 잘 전달되길 바랐어.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나는 에디터가 되었어. 서툴지만 열심히 배워보고 싶었고 정말 기뻤어. 나에게 또 다른 배움에 길이 열린 것 같아서 행복했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고 사람들과 함께 사색하고 도모하며 같이 자유롭게 향유하라는 대표님의 말씀이 정말 깊게 와닿았지. 그렇게 나는 한 분야의 에디터가 되었어. 나는 주로 사람에 대한 글을 써. 애정 하는 분야의 글을 쓰니 당연히 글쓰기는 재밌었어. 그렇게 나의 10월은 다복하게 여러 가지 애정들이 쌓여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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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는 그동안 추억이 많았던 영화관을 그만뒀어. 마지막으로 서비스 평가 만점을 받고 베스트 드리미가 됐었는데 정말 기쁘더라. 뭐든 최선을 다했을 때 결과가 좋으면 기쁘잖아. 그래도 이제 서울에 있을 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고, 앞으로는 조금 더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싶어서 그간 즐거웠던 추억을 정리했어. 마지막 근무 날은 기분이 참 묘했어. 마지막이라 더욱이 낯설게 느껴졌지. 생각해 보면 끝까지 사람들은 내게 친절했어. 많은 걸 가르쳐 줬고 정말 많이 고마워. 사람 때문에 떠나기가 아쉽더라. 인생에서 정말 많이 생각날 것 같은 경험이야. 그리고 그 이후에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했어. 문화 에디터가 된 이후 처음 오케스트라도 보고 뮤지컬도 경험하고 전시도 연극도 정말 좋은 경험들을 향유할 수 있게 대표님이 도와주셔서 문화의 폭이 넓어졌지. 서울에서 많은 경험들이 쌓여가는 게 행복했고 그리고 슬슬 서울을 떠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좋기도 하지만 조금 아쉬워졌어.

 

그렇게 초록의 풀 내음으로 가득하게 지나간 길은 어느새 소복하게 흰 눈이 예쁘게 내리는 12월이야.

 

12월은 끝맺음과 새로이 시작할 나를 기다리는 달이야. 그간 새로운 기회와 좋은 소식들도 많았어. 지금은 5편의 영화 색보정을 오래도록 하고 있는 중인데 외국으로 송출이 된다는 소식이 들려와. 그래서 놓치고 싶지 않은 이 일을 붙잡고 있지. 이 색보정이 끝나면 내년엔 작은 사업 기획서를 써보려고 실현이 될진 모르지만 그래도 꼼꼼하게 써서 도전해 보고 싶어. 도전을 해보고 안 해보고는 차이가 클 테니. 24년은 또 어떤 해가 될까? 나는 꿈을 찾아가고 있어 여전히. 요즘엔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추천받아서 그 분야에 대한 공부도 해보고 싶더라. 나는 결국 어떤 사람이 될까?

 

내게 터닝포인트가 될 만큼, 좋은 한 해였어. 그래도 그 좋은 삶 속에서도 불안하고 끊임없이 바뀌고 흔들리는 안정적이지 못한 청춘이 조금은 아쉽기도 했어. 근데 그냥 즐기려고 삶의 흔들림과 불안정함을 그냥 귀엽게 흔들거리는 춤이라 생각하자 신나게 흔들리는 거야. 우리 흔들려도 서로를 잡고 같이 단단하게 버텨보자. 언젠가 그 흔들림이 줄어든다면, 안정적이게 된다면 그때의 흔들렸던 우리가 안쓰럽게도 예뻐 보일 거야.

 

올 한 해는 네게 어떤 한 해였어? 일상에서 참 기쁜 일도 마음대로 안되는 날들도 일에 지쳐 많은 고민에 휩싸이는 날들도 불안도 행복도 많았겠지. 2023년도 고생 많았어. 올해가 행복했다면 내년도 늘 기쁨이 함께하길 바라고 올해가 아쉬웠다면 내년에는 그 아쉬움이 더욱이 빛을 바라게 될 거야 작지만 내가 행운을 빌어줄게.

 

이제 어느덧 12월도 일주일이 남았어.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모두가 들떠있는 것 같아. 기분 좋게 나도 같이 들뜬다. 이 크리스마스가 끝나면 왠지 세상은 고요해질 것 같아. 다가오는 1월에 다들 눈을 감고 새해의 염원을 빌며, 차분히 올해의 스스로를 정리하고 다가올 나를 기다리겠지. 날이 너무 춥다 그치. 얼마 남지 않은 12월도 포근한 겨울의 눈송이들과 함께 다복하게 보내길 바랄게. 새해 복 많이 받고. 늘 건강했으면 좋겠다. 우리 내년에도 같이 다정하게 지내자.

 

 

[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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