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모순적이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생각과 말이 다르며, 추구하는 이상과 살아가는 현실이 다를 수밖에 없다. 처음엔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을 연인에게 못난 내면을 드러내고, 상처를 주고, 사랑했던 기억을 버리고 남남이 되는 게 어리석고 안타까운 모순의 대표 사례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면서도 행동은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또한 그렇다.
연극 <렁스>는 그토록 모순적인 ‘남자’와 ‘여자’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연애, 임신, 유산, 이별, 재결합, 출산, 노화, 죽음까지 삶을 95분으로 압축한 생의 기록인 <렁스>는 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 또한 고민하게 하는 21세기 연극의 클래식이다.
연극의 명가, 연극열전에서 2020년·2021년에 이어 2026년 세 번째로 올린 연극 <렁스>는 5월 23일 개막해 8월 2일까지 관객을 만난다.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되는 <렁스>는 지난 시즌들의 직선 무대 대신 극장 구조를 활용한 원형 무대로 돌아왔다. 두 사람의 인생 분기점마다 새롭게 놓이는 신발들, 조명 변화를 제외하곤 거의 텅 빈 무대는 텍스트와 배우의 연기를 보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이다.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숨을 곳 없이 연극의 본질에 가장 빠르게 다가설 수 있는 곳이 <렁스> 무대인 것이다.
지구환경에 대한 박사 논문을 쓰는 여자와 음악하는 남자는 연인이다. 결혼은 안 했지만, 이미 부부처럼 살고 있기에 남자는 여자에게 아이를 갖자 제안한다. 그 시점부터 그들의 대화와 토론은 시작된다. 작품의 독특한 점은 그들이 토론하는 주제 중 상당수가 환경에 대한 담론이란 것이다.
그들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재활용을 하고, 장바구니를 쓰고, 작은 카페에 가고, 양치할 때 물도 안 틀고, 자전거를 타고, 공정 무역 제품을 구매한다.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선기금 마라톤 대회도 나가며 시위에도 참여한다. 한편으론 담배를 피우고, 운전하고, 베이컨을 먹고, 대형마트에서 쇼핑하고, 욕조에 뜨거운 물을 가득 받아 목욕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자신들이 좋은 사람일지 고민하는 이들의 모습은 모순적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나쁜 말과 행동으로 서로를 찌르며 상처 주고 자신도 상처받는다. 여자는 남자의 부모님에게까지 부적절한 말을 하고, 끊임없는 변덕과 히스테리로 남자를 극한까지 몰아붙인다. 하지만 남자도 일방적 피해자는 아니다. 그는 여자처럼 말로 상대를 찌르는 대신, 배신으로 타인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새로 들어간 회사 직원과 키스하고, 여자와 이별 후 새로 만난 연인과 약혼까지 했음에도 여자에게 아이가 생기게 만든다. 두 여성을 기만한 건 사실이기에 남자는 결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연극 <렁스>는 이처럼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닌, 나약하고 모순적인 두 인물을 보여주며 관객에게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누구나 <렁스>의 여자와 남자처럼 못나고, 이기적이며, 그럼에도 지극히 인간적이면서도 쉽게 상처받는 연약한 면을 가졌다. 관객은 쏟아지는 대사의 향연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무대에서 찾아낸 또 다른 ‘나’의 마음에 공감하면서도 마냥 편하진 않을 것이다. 많은 연극이 그렇듯, <렁스> 또한 현상과 인물에 대한 미화가 없는 지독하게 현실적인 거울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언행에 불편하고 찜찜하지만, 그럼에도 극장을 나오며 깊이 생각할 수 있단 점에서 <렁스>의 텍스트는 짜임새가 탄탄하다.
연극 <렁스>는 배우들에게도 도전인 작품이다. 빈 무대, 압도적인 대사량, 조금도 늘어지면 안 되는 극의 템포와 속도감은 배우의 역량과 실력을 그대로 드러낸다. 장면과 장면의 전환 또한 오직 연기로 표현되기 때문에, 배우의 언어와 몸이 세트이자 소품이기도 하다. 다양한 영역에서 실력을 쌓으며 활발하게 활동해 온 여섯 배우(임주환·박성훈·김경남·정운선·전소민·신윤지)는 각자 색깔과 해석이 담긴 연기를 보여주며 호평받고 있다.
작품 제목은 렁스(LUNGS), 즉 ‘폐’이며, 대사엔 ‘숨 쉬어’란 말이 반복된다. 극은 ‘숨 쉬어’란 남자의 대사로 막을 열지만, 거의 모든 장면이 숨 쉴 틈 없이 전개된다. 이름 없는 보편적 인물들인 남자와 여자의 정확한 나이 또한 나오지 않지만, 결혼·임신·출산을 고민하고 남자가 직장에 어렵지 않게 취직하는 걸로 보면 아직은 젊다고 할 수 있는 나이다. 즉 한창 일하고, 사랑하고, 인생의 새 장들을 열어나갈 연령대엔 숨 고르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큰일들을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이 시기의 기억들은 비교적 생생하다.
작품은 두 사람이 먼 길을 돌아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후엔 더 빠르게 전개된다. 부모가 된 후부턴 이들의 말은 파편적으로 이어진다. 전처럼 촘촘한 티키타카가 아닌 띄엄띄엄 이어지는 말은 나이가 들고, 남자가 먼저 세상을 떠난 후엔 여자의 독백으로 변한다. 무대 아래로 내려간 남자는 묵묵히 여자의 말을 듣고, 여자의 마지막 말로 연극은 끝난다.
“어쨌든, 사랑해.”
두 사람은 평생 상처를 주고받았지만 어쨌든 사랑했다. 여자의 유언이자 인생 막바지에 얻은 깨달음,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도 어쨌든 사랑한단 뜻일 것이다. 모순투성이 삶의 결론이 ‘어쨌든 사랑’으로 난다는 것 또한 작품과 우리 인생이 닮은 점이다.
거창해 보이지만 별것 없고 비슷비슷한 게 인생일 수도 있다. 반대로, 삶이 하찮고 시시해 보일지라도 그런 사소함 속에서 기쁨과 행복을 계속 발견하는 것이 인생일 수도 있겠다. 어느 쪽도 완벽한 정답은 아니다. 때마다 신발을 바꿔 신고 묵묵히 걸어 나가는 것, 후회 없이 사랑하고 마음을 표현하며 최선을 다해 웃고 울고 싸우는 것. 그것이 인생일 수도 있다. 연극 <렁스>는 삶의 정답을 강요하지 않고 그저 보여주며, 관객에게 질문한다. 당신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