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그린님, 유난히 새하얀 하늘 아래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향초를 맡으며 그린님께 편지를 씁니다.
그린님은 펜팔을 한 적이 있나요? 저는 어린 시절에 펜팔이 유행을 했었는데요, 우연한 기회에 잘 모르는 어떤 분과 편지를 주고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어떤 경로로 알게되었는지조차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학교 마치고 주소와 이름이 연필로 서툴게 적힌 하얀 편지봉투를 확인하는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편지가 왔을까, 아닐까하며 우체통을 확인하는 일이 너무 즐거웠어요.
이번 서간문 프로젝트를 하면서 오랜만에 비슷한 감정을 느꼈답니다. 다음 분이 편지를 써주셨을까, 혹시 말미에 나에게 전하는 이야기가 있을까 하며 매일 아침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는 것이 마치 어린 아이가 된 것 같았어요. 저는 편지를 정말 좋아합니다. 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온전히 적어내려가는 하나의 글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감동적인지 모르겠어요.
그린님의 글을 여러차례 본 적이 있습니다. 서간문 때문이 아니라 아트인사이트를 오며가며 여러번이요. 처음 클릭을 하게 되었던 글은 영화 <윤희에게>에 대해 쓴 오피니언 글이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도 <윤희에게>를 참 좋아합니다. 영화를 보고 궁금해서 오타루까지 다녀왔거든요(물론 비행기값 때문에 여름에 다녀오긴 했지만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좋아하는 어떤 이의 글을 읽는 것은 참으로 귀하죠. 저는 귀한 마음으로 그린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맞아요, 저도 ‘사랑’ 이라는 단어를 읽는 방식이 늘 고민스러웠습니다. 다들 너무 쉽게 사랑을 말하고, 너무 거칠게 사랑을 논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있고, 꼭 애인과의 사랑만이 사랑이 아니라 반려동물, 가족, 친구 등 그 대상도 한정지을 수 없는데 말이에요. 너무 소중해서 차마 쓰지도, 부치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그런 사랑, 속절없이 빠져들고 이끌리는 그런 사랑을 저도 <윤희에게>에서 너무 절절하게 느꼈기에 더 공감이 갔습니다. 그린님의 글을 읽으며 한 줌 짜리 집단의 동지를 찾은 것 같아 반가웠달까요.
재미있게도 <윤희에게> 역시 편지를 소재로 한 영화이네요. 그린님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이렇게 우연처럼 연결된 것도 편지라는 것이 참 신기하네요.
다음으로 그린님의 글을 마주하게 된 것은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의 리뷰였어요. 저도 그린님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그 영화를 함께 보았기에 그린님 같은 섬세한 분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을까 궁금했거든요. 저와 비슷하게 캐치하신 부분들과 제가 놓친 부분까지 섬세하게 다룬 글을 천천히 읽어내려가며 다시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어요.
그린님의 글은 정말 잘 정돈되어 보였거든요. 제가 늘 고민하고 연습하는 지점이기에 그린님의 노련함이 참 부럽고 멋져보였습니다. 감상이라는게 주관적인 것이다보니 공감이나 수긍이 가도록 쓰는 것이 어려운데, 그린님의 글은 그런 것을 끌어내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그린님을 접하다보니 그린님의 자기소개를 보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린님의 자기소개 글을 보다보니 참 여행을 많이 하신 분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아마 직접 찍은 사진이겠죠? 글의 서두에 첨부하시는 사진이 마치 그곳에서 보내온 엽서처럼 저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사진을 첨부해보았어요. 바다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그린님께 잘 전달되길 바랍니다.
캐나다에 오래 머물고 계실까요? 혹은 마음 깊이 인상적인 여행을 다녀오신 걸까요? 벤쿠버 섬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초록색 기타 소리는 아직도 그린님의 귓가에 맴돌까요? 어떤 노래였을지 참 궁금합니다. 글에서 풍겨오는 시원한 바닷바람과 바스락거리는 잔디의 감촉, 따스한 기타소리를 상상하며 저는 이 세상에 없는 멜로디를 흥얼거려보아요. 비슷한 경험을 언젠가 저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초연함과 꿈은 양립하기 어렵다고 하셨죠. 하지만 그린님, 꿈의 과정에 초연함은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삶은 커다란 시간 위에 있는 연속적인 과정이기에, 늘 그 위에 있기에, 초연함을 지닌 그린님은 언제나 꿈을 이루는 과정 속에 있어요. 그린님이 지키려는 그 꿈도 그린님의 이야기와 같이, 소용돌이가 지나간 자리에 따뜻함이 남기를 바랍니다.
제가 그린님이 자꾸만 기억에 남는 이유는 하나가 더 있어요. 제가 초록색을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저희 집의 포인트 컬러는 그린 컬러이거든요. 좋아하는 색을 이름으로 지닌 분께 당연히 눈길이 더 갈 수 밖에요. 고백하자면, 어떤 곳에서는 제 닉네임이 ‘그린’이랍니다.
몇 년 전, 도서전을 갔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을 한 권 말씀드릴게요. 아마 이미 알고 계실 것 같은데, 황모과 작가의 <그린 레터> 입니다. 초록색과 편지를 좋아하는 저에게 딱 알맞은 책이라 눈여겨 보았었는데, 이게 지금 이렇게 연결되네요.
<그린 레터>를 마구잡이로 펼치고 처음 눈에 들어온 구절을 말씀드리며 이만 줄이려 합니다. 그린님, 어디 계시더라도 늘 그 모험심과 초연함, 정돈됨과 시원함을 잃지 마시고 언젠가 멋진 작가가 되시길. 그때 저를 한 번 떠올려 주시길.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포근한 겨울 보내세요.
“그런데 말이야, 사랑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우린 사랑할 수 있단다. 사명감이 없어도 우린 사랑할 수 있어. 사랑에 조건이 붙는다면 누가 감히 제대로 사랑할 수 있겠니? 조건이 필요 없기에 누구든 사랑할 수 있는 게 아니겠니? 조건이 붙는다면 네 사명감은, 네 사랑은 아주 편협할지도 몰라.”
**
추신, 서간문으로 얽힌 예은님(루루), 현승님(현), 상은님, 그린님께 우연한 인사와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첫 타자로서, 잘 모르는 저를 위해 열심히 제 글을 읽어주시고 감상을 나눠주신 예은님께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다들 다정하고 무탈한 한 해 보내시길 바랍니다.
2026년 1월, 이유은 드림
실제로 만나뵌 적 없는 분께 받은 편지가 어딘지 모르게 거칠고 버거웠던 하루를 순식간에 '제법 괜찮은 하루'로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이 신기해요. 실은 제법 괜찮은 수준이 아니라 덕분에 멋진 하루가 되었답니다.
보내 주신 바다 사진 감사히 받았어요. 덧붙여 보내 주신 말들도 하나하나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마음에 들고 좋은 대목이 많아서 앞으로도 여러 번 거듭해서 읽어 볼 것 같아요. '어떤 우주에서는 반드시 친구가 되었을 당신'이라는 말이 좋아서 몇 번을 곱씹고 있는데, 언젠가 실제로 만나뵐 기회가 있다면 이 감사 인사를 직접 전해 드리고 싶어요.
저도 오타루를 여름에 다녀왔답니다! 생각보다도 여름의 오타루가 더 좋아서 언젠가 다시 걸음할지도 모르겠어요. 유은님은 어떠셨나요, 여름의 오타루도 퍽 만족스러우셨는지 궁금하네요.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다음의 만남을 고대합니다. 늘 행복하시고 안온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