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계절을 열어라, 소년들이여 - 타조소년들 [공연]

글 입력 2023.11.30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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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타조소년들>을 보기 위해 대학로 한예극장으로 향한 것은 11월 말의 어느 늦은 저녁이었다.

 

얄궂게 등을 떠미는 찬 바람으로 2023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맞다, 지나간 한 해에 안녕을 고해야 하는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보내는 것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좋아하던 사물과 사람, 그리고 계절이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색다른 시각을 전해준 연극이 있다. <타조소년들>은 세상을 떠난 로스와 그 상실을 위로하려는 세 명의 친구의 이야기를 다룬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 무대에는 총 4명의 배우가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덕분에 극의 주인공이 네 명의 배우가 연기한 로스, 블레이크, 씸, 케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대를 앞두고 긴장한 것인지, 아니면 감정을 잡기 위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아무런 표정이 없던 그들이었다. 미묘한 그들의 표정만큼이나 어두운 조명만이 공연장을 감싸고 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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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오르자, 어두웠던 무대의 조명이 밝게 켜지며 가장 신나고 행복해 보이는 네 사람이 등장한다. 마치 몇 년 전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듯 핸드폰으로 단체 사진을 찍는 등 화목한 우정을 보여준다. 그런 우정을 힘껏 흔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주인공 ‘로스’의 죽음이다. 로스의 죽음으로 장례식에 온 수많은 사람을 보며 나머지 세 명의 친구는 로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기로 한다. 그것은 “로스를 로스로 데려가는 것."

 

극에서 등장한 지역 ‘로스’는 주인공 ‘로스’의 이름과 같은 곳으로, 세 친구가 로스와 떠나는. 로스를 위한 여행지다. 이 극은 그곳으로 가며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다루고 있으며 로스의 죽음 뒤에 가려져 있던 괴롭힘 등 어두운 면을 들춰내기도 한다.

 

 

 

용기와 성장



로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는 씸, 케니, 블레이크가 있지만, 그 중 ‘블레이크’에 조금 더 주목해 보고자 한다. 그는 로스를 로스로 데려가자고 한 장본인이자 로스에게 가장 많이 의지했던 친구다.

 

그런 주인공의 성격답게 장례식을 마친 후, 유골함을 집에서 가져오기 위해 나선다. 유골함을 가지고 로스로 향하던 중, 세 친구는 기차표를 잃어버리게 된다. 다시 표를 구할 방법을 모색하다가 ‘번지점프’에 도전하면 돈을 준다는 솔깃한 제안을 듣게 된다. 그렇게 블레이크는 유골함을 훔친 데 이어 용기 있게 번지 대 위에 오른다.

 

다른 두 친구에 등 떠밀려 도전하게 된 번지점프인데다가 높은 곳을 무서워하던 블레이크였지만, 뛰어내리려는 찰나 자신이 가장 믿고 의지했던 친구 ‘로스’를 떠올린다. 로스는 그의 내면 어딘가에 깊숙하게 위치한 것처럼, 블레이크의 독백을 대신하는데 덕분에 이 세상에 없는 용기를 얻어 블레이크는 성공적으로 번지점프를 뛸 수 있게 된다.

 

번지 대의 높이만큼 한 단계 성장한 블레이크 뒤로도, 극에서 성장하는 소년들을 엿볼 수 있다. 관객들은 주인공들과 함께 여정을 떠나며 로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된다. 사실, 로스의 죽음 뒤에는 어두운 서사가 있었다. 그가 쓴 사랑 시가 의도치 않게 공개되고, 선생님, 그리고 동급생으로부터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로스의 마지막을 위한 여정임에도 그의 죽음을 보다 깊이 헤아리고 성숙하게 이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에 연극 <타조소년들>은 한 편의 성장드라마 같기도 하다.

 

 

 

애도를 표하는 성숙한 방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 친구 모두가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로스의 이야기와 관련됨을 알게 된다. 누구 하나 잘못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어 더욱 혼란에 빠진 이들의 감정은, 불씨가 되어 갈등으로 번지고 극을 클라이맥스로 이끈다. 이 과정에서 생긴 오해와 분열로 결국 주인공 '씸'은 로스로 향하는 여정을 포기한다.

 

블레이크와 케니만 도착한 로스. 두 사람은 유골함에서 꺼낸 로스의 가루를 뿌린다. 그렇게 로스의 죽음을 여행의 일부로 추억할 수 있는,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사진 한 장처럼 간직하기로 한 것이다.

 

두 친구와 달리, 무대 뒤쪽 의자에 걸터앉은 씸에게는 마지막까지 그 어떤 조명도 비춰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었다. 가장 거칠며 가감 없어 보이는 씸의 모습 뒤에는 사실 여린 마음이 있었다. 블레이크, 케니와의 갈등 사이에서 언성을 높이는 씸을 떠올려본다. 그 끝에 묻어있던 눈물과 떨리는 목소리를 얼핏 엿본다. 그리고 그것이 씸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결국 씸은 로스와의 마지막을 친구들과 함께 보내지 못한다. 하지만 언젠가 그의 마음이 로스를 덤덤하게 보내줄 수 있을 때, 그때 두 사람보다 더욱 깊고 성숙한 방법으로 로스에게 그 여린 마음을 표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외에도 극을 풍성하게 이해하도록 돕는 연출을 빠뜨릴 수 없다. 죽음을 맞이한 로스지만, 그의 연기를 맡은 배우는 무대를 떠나지 않고 무대 뒤, 옆에서 무대를 지켜봤다. 그러다 과거를 회상하는 대목이 나올 때면, 흰 조명 아래에서 '과거 로스'의 역할을 다했다.

 

또 4명의 배우가 다른 등장인물의 역할까지 맡아 무대를 풍성하게 만든 점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연출들로 구현해 낸 상실에 대한 울림과 메시지가 유독 마음을 울린다. 등장하지 않아도 무대 어딘가에 자리한 배우들, 그리고 역할의 경계를 허무는 연기. '없음'이 곧 '비어있음'이 아니라는 것과 죽음을 맞이해도 그 죽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것. 이를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들려주려는 노력이 무대 곳곳에서 빛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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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곁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것이 있다. 이를테면 며칠 전에 본 낙엽의 아름다운 활강, '어떻게 하면 오래 붙잡아 둘 수 있을까?' 혼자 알던 순간을 사진처럼 기록하고 싶어 글을 쓴다. 말은 언제나 매끄럽고 아름다운 것. 사실 들춰내 보면 아무래도 지나간 것에 대한 미련 같다. 이따금 이런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원인을 멋대로 정의해 보자면, 제대로 보낼 수 있는 '작별 인사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던 중 작별의 한 방법을 알려주던 연극 <타조소년들>을 만났다. 블레이크를 보며 스쳐 지나간 과거로부터 용기를 얻는다. 또 씸을 보며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건네지 못했던 과거를 본다. 간지러웠던 부분을 명쾌하게 긁어주는 듯 연극 <타조소년들>은 그런 울림으로, 이 글과 함께 매듭지어진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연극 <타조소년들> 속 로스와 친구들은 올해가 지나도 반드시 돌아올 새로운 계절을 제시한다. 봄. 그리고 그것을 닮은 용기. 그 생명력과 더욱 올곧은 성숙함으로, 상실을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다는 시각이 벚꽃잎처럼 부드럽게 와닿는다.

 

블레이크와 씸, 케니, 그리고 로스까지. 연극 <타조소년들>에게 작별 인사와 함께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수많은 연극 중 하나로 지나갔지만, 언젠가 떠올리며 곱씹어 볼 연극임이 분명했다'고.

 

그러니 계속 다른 이의 계절을 열어라, 소년들이여!

 

 

[박정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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