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존재론적 성찰이 필요한 당신이 종말에 대처하는 자세 [드라마]

글 입력 2024.03.03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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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끝장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첫 시작은 ‘사는 게 부질없다.’라는 생각이었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건가? 먹고 자고 싸고 일하고 다시 자고 먹고 싸고 일하고 그렇게 5일을 피곤한 상태로 지내며 나머지 이틀을 죽어라 기다리는 게 삶인가. 투입과 허기의 사이클을 반복, 또 반복. 그리 대단하지도 모험적이지도 않은 평범한 일상에 지쳐 이런 삶을 원하는 사람은 절대 없으리라 생각했다. 나가서 어디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좀 더 대단한 일을 해야 할 거 같은데... 내 어릴 적 꿈도 이게 아니었는데…. 차라리 지구가 멸망하면 좋겠다. 그러면 남은 시간 동안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야지. 아, 지구가 멸망하면 좋겠다고!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


 

그렇게 정말 지구는 끝났다. 종말의 날이 코앞에 닥쳐서 나의 시간은 이제 반년도 남지 않았다. 사실 온 세상 사람들이 이제 특정 시기에 다 같이 죽게 생긴 거다. 나라마다 다른 평균 수명도, 의학 기술도, 저출생 고령화, 인종, 역사, 미래가 다 상관없다. 지구라는 행성과 그 안의 유기체들은 모두가 같이 죽는다.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는 모두의 삶이 끝나기 전 유토피아 같은 자유를 즐길 수 있는 한정된 시간을 비춘다.


지구 종말이라는 대전제 아래 일상처럼 영위하던 모든 것들은 흐릿해진다. 돈과 돈으로 살 수 있던 모든 것들은 무가치해지고 사람들은 잃어버렸던 자아를 찾는다. 루틴을 버리고 그토록 하고 싶던 휴식과 모험을 하기 위해 떠난다. 세계적인 산을 등반하고, 승마를 배우고, 바닷가에서 태닝하며 몇 주를 보내고, 세계 여행을 떠나고. 낯선 것을 추앙하며 일출과 일몰 사이에 일탈만을 바라는 꿈같은 삶을 산다. 캐럴의 나이 지긋한 부모님은 나체주의에 빠져 다자관계를 맺은 간호사와 함께 크루즈 세계 여행을 하러 떠났다. 캐럴의 동생은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하며 프랑스어를 배웠다. 캐럴의 친구는 티베트로 여행을 떠나 내면의 수행 비슷한 걸 하고 돌아와 캐럴에게 꼭 티베트 여행을 해보라며 부추긴다.


그런데 캐럴은?


모든 이들이 캐럴을 걱정 어린 눈빛으로 흘긋거린다. 쟤는 세상이 망한다는데 아무것도 안 할 셈인가? 이 거대한 자유를 누리지 않을 셈인가? 이제야 비로소 죽음 앞에서 우리는 자유인데, 어째서 지금 가장 중요한 자원인 ‘주어진 시간’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않는가? 모든 이가 캐럴의 거대한 꿈을 궁금해한다. 마지못해 캐럴은 서핑을 하러 갈 것이라 말한다. 그녀의 거짓말로 모든 이가 걱정을 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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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은 혼란스럽다


 

일상을 가꾸고 정돈하고 또 그것을 반복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모험인 사람들이 있다. 캐럴은 그런 류의 사람이다. 이들은 가장 가까운, 하지만 나와 가장 다른 반짝반짝 빛나는 가족들의 삶을 동경하며 때로는 견디기 힘들어하기도 한다. 특히 지구 종말을 앞둔 지금은 모든 이들이 규칙과 질서, 캐럴이 지키고자 하는 소소한 일상들은 없는 체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거기에 있었다. 대범한 모험보단 반복되는 일상에, 상공을 가르는 패러글라이딩보다는 지루한 오피스 의자에. 매일 점심을 먹고, 화장실을 가고, 같은 자리에 앉아 일을 하는 그 지점에 있었다. 세계 반대편에서 기아 몇백 명이 죽어 나가도, 어디선가 내전이 일어나 건물이 파괴되어도, 빙하가 전부 녹아도, 그래서 북극곰이 사라져도 같은 일을 하던 우리가 이제는 비범해지겠다고 큰 꿈을 꾼다. 하지만 이걸 자각할 만큼 똑똑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들 틈에서도 극도로 평범한 꿈을 꾼다는 이유로, 캐럴은 주눅이 든다. 아, 나만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으로 남았구나. 

 

이제는 아무도 타지 않는 지하철을 탄다. 출퇴근길에 꽉 막혀 보이지 않던 창문 밖이 이제는 꽤 선명히 풍경을 담는 데도 불구하고 자리에 앉아 고개를 떨군다. 이윽고 고개를 들었을 때 오피스 복장을 한 중년 여성을 보게 된다. 묘한 동질감에 따라 간 길의 끝에, 아직 운영되고 있는 회사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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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실물 보관소처럼 모인 이들의 오피스


 

쓸데없이 평범한 사람들, 꿈에서도 버림받고 혼자인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도 있다. 바로 그래서 이곳에 모두 모였다는 것. 세계가 자신의 관성을 빼앗아 가도 자신 그대로의 관성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마치 날 때부터 해 온 것처럼 일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가 없는 사람들. 입사 사진을 찍는 카메라 플래시조차 너무 밝게 빛나 부담스러워 한 쪽 눈을 가린 채 찡그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곳에서 캐럴은 숨통이 트인다. 그곳에서 루이, 도나를 만나 친구가 되고, 점차 그 오피스에 있는 모두에게 일상적인 다정함을 전한다. 각자의 가장 내밀한 사정 또한 알게 된다. 도나는 가족들과 함께 있지만 젊었을 때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공유하고 있는 기억이 없고, 루이는 부모님께 말하지 못할 비밀을 감추고 있다. 자신이 인생 전체가 부정당하는 경험을 한 캐럴은 자신과 너무나도 상반된 삶을 사는 진짜 가족이 아니라, 자신과 마찬가지로 외로운 사람들끼리의 연대를 통해 치유된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서핑, 승마, 여행은 두려워하지만, 복사기 토너를 찾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낯선 오피스 디포들을 떠돈다. 그녀는 낯선 사람들과 한가득 모여 미래의 종말을 위해 파티하는 것은 두려워하지만, 과거의 가장 좋았던 추억을 곱씹으려 폐허가 된 버려진 식당에 혼자 머무는 것은 괘념치 않는다. 운석이 떨어지는 지구를 따라 모두가 공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세상은 내면으로 자전하는 데 집중한다. 캐럴은 그런 사람이다. 또한 그런 사람들을 하나둘 버려진 식당으로 모아 다시금 활기찬 일상을 선사할 수 있는 다정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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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잘 살기' 위한 꿀팁이 가득한 세상에서


 

꿈이 현실 같고 현실이 꿈 같아질 때, 종말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질 때 캐럴의 이름은 더 크게, 자주 불린다. 이름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을 비로소 알 수 있다고 나는 자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드라마를 보기 전에 캐럴의 이름을 명확히 알고 있었음에도 결국 캐럴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와는 참 다른 성격.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미래를 보며 달리는 나와는 다르게 자신이 속한 가장 작은 세계와 사회를 뒤바꾼 캐럴의 시간은 바로 지금에 있다. 우리가 시간이 지나 가장 그리워할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지구가 멸망하기 일보 직전에 우리가 지구를 위해 해야만 했던 재활용, 집을 사고 차를 사려 돈을 모아야만 했을 때의 그 감정, 상실되기 전 당연시했던 모든 것을 기억할 줄 아는 사람. 지구 종말에도 외톨이들에 대한 다정함을 잃지 않는 사람. 그녀의 이야기는 내게도 묘한 위로가 된다.


오늘날 인생을 잘 살기 위한 정보는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한 가지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그래, 그거다. 뻔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나는 나의 지금을, 세상을 사랑하는가? 어느 정도로 사랑하는가? 다양한 애정을 가지고 매일을 지내왔는가? 겪어 보았고 겪어 보지 못한 것들 중 자신이 마음 바치고 싶은 행동은 무엇이 있나?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한 가지로 정의내릴 수 없기에, 그 누구도 쉽게 조언할 수 없으리라.

 

어쩌면 인간 존재의 본질이라는 대주제 앞에서 나는 너무나도 과장된 일면만을 바라보고 사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바뀔 가치들 앞에서 너무나도 전전긍긍하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바다는 사막을 동경하고 사막은 바다를 선망한다. 그러나 동시에 완전한 버석함과 촉촉함은 드물다. 완전한 기쁨과 슬픔도, 완전한 성공과 실패도, 완벽한 인생과 패배를 진단하기에 우리는 너무나도 작고 많고 무지하다. 그러니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매일매일을 사랑하고 만족하고 그렇지 못한 타인에게 다정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할 수도 있겠다. 비록 반년 뒤 지구가 멸망하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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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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