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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점 이야기

하얀 종이 위에 점이 선을 이루어 완성되는 저마다의 그림

by 정서영 에디터
2026.03.07 21:26

 

 

우리는 세상에 한 번 태어나서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누리며 살다가 죽는다.

   

인생이라는 하얀 종이 위에 툭- 올려진 점은 오르락내리락 정처 없이 흔들리지만, 굵었다가 얇아지더라도 끊어지지 않고 선이 되어 하나의 어지럽고 예쁜 그림이 되어 종이를 떠난다. 선을 이루는 점의 입장에서는 이전에 지나온 길은 보이지만 앞으로 진행할 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함에 먼 곳을 보곤 한다.

 

간혹 어떤 점은 여기서 여정을 멈추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점이 멈추고 싶어 했던 순간을 참고 참아 어떻게든 살아가다 보면, 그 궤적은 분명 그 점만의 특별한 그림이 될 것이다.


열심히 움직이면서 그리다가 문득 멈춰 선 점은 생각한다. ‘잘하고 있는 걸까? 다른 종이 위에 점들은 어떤 선을 그리고 있는지 궁금해’. 주변에 있는 다른 종이들을 보며 점의 색과 선 움직임을 고민해본다. 종이 한쪽 끝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한다. 마치 종이를 뚫고 나갈 것 같은 각도였지만 안전하다. 흰 종이 밖으로 나갈 수는 없다.

 

빙글빙글 돌아 보고 각도를 수시로 바꿔보기도 한다. 어떻게 진행해도 흰 종이 안에서 점은 자유롭고 안전하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점은 운이 좋다. 점이 완성한 그림은 분명 즐거운 모습일 것이다.


‘P’라는 점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더 용기 있게 확인하고 싶어서 지금껏 삐죽빼죽 움직이긴 했지만 거침없음이랑은 거리가 먼 시간이었다. 주변 종이들에 놓인 다른 점들을 살펴본다. 조심스러울지라도 제법 힘 있게 질주한다. 왜 나의 선은 멋진 질주가 어려울지 생각해보다가 자신의 종이가 반으로, 또 반으로 접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P'는 ¼ 크기로 종이를 축소하여 선을 그리고 있던 것이다.


나이, 환경, 기회 등의 현실적인 요소로 종이의 크기를 줄이고, 완성한 결과물이 마음이 들지 않을지, 이런 선의 모습이어도 괜찮을지, 갔던 길을 다시 돌아오면 어쩌지 등의 고민에서 비롯된 두려움으로 또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을 제한하고 있다. 'P' 점이 현실과 두려움이라는 이유로 작아진 종이 안에서 어지럽게 공간을 채우는 동안 다른 점들은 넓은 영역에서 우아하게 뛰어노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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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가 멈춰 서서 생각하고 있는 동안 비슷하게 접힌 종이에 복잡한 선을 지닌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 점은 현실적인 요소를 생각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마음껏 움직이지 못했다고 성을 낸다. 스파크가 팟! 튀기는 하지만 위험한 상태는 아니다. 다만 억울해하고 있는 것뿐이다. 현실적인 요소에 벽을 느끼지 않았다면 자신 또한 처음에 등장한 운이 좋은 점처럼 종이 한 면을 가득 채우는 그림을 시작부터 그렸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점은 조금 조용하다. 환경보다 자신을 탓하고 있다. 생각이 많은 점은 움직임을 결정하는 데까지도 시간이 걸린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시간이 흐르며 그럴수록 두려움은 더 증폭되어 지금 ‘P’처럼 멈춰 서는 지경에 달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멈추긴 했는데, 다음 진척은 어느 방향이 좋을지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정답이란 없는 흰 종이의 세계를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그 사실을 수용하는 것조차 이 점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비슷한 상황의 셋이 모였으니 머리를 맞대어 본다.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모두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이 되어야 할지 함께 생각한다. 우선 종이를 펴야 하지 않을지 고민한다. 좁은 공간에서 완성되는 그림은 분명 너무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종이를 펼 수 있을지 여전히 두렵다. 만약 지금 편다면 종이가 접혔다가 편 흔적이 남을지, 그걸 보고 다른 점들이 우습게 생각하지는 않을지, 상처를 드러내는 행동은 아닐지 걱정한다.


두 번 접혀서 가장 작은 종이에 놓여 있는 ‘P’가 지나온 자신의 선을 보다가 문득 수많은 망설임을 지나오며 혼란스러운 연결이지만 한순간도 끊어지지 않고 종이 위에서 선이 이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지금껏 접힌 종이 위에서 움직이느라 방향을 망설이면서 신중히 그려 왔지만 ‘P’는 이제 이곳이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종이를 펼쳐볼 용기를 낸다. 여전히 두렵지만 어쩌면 이제는 종이를 펼쳐도 괜찮지 않을지 모른다는 다소 충동적인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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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종이에 굵게 접었던 선이 남았다. ‘역시 이 흔적은 부끄러운 상처겠구나’ 생각하던 순간, 옆으로 연한 선이 보인다. 접힌 선보다는 유연하고 부드러운 선이 있다. ‘P’는 보자마자 알았다.

 

이것은 자신이 작은 종이 시절에 신중히 그려나갔던 선의 눌린 자국이다. 접혀 있던 네 면은 그 선이 그려낸 모양이 확장된 듯 펼쳐진 종이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P’는 접힌 자국으로 드러난 상처의 아픔보다 자신이 지금껏 조심스럽게 내디딘 작은 움직임이 앞으로 나아갈 길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모습을 발견한 기쁨이 더 크다.

 

종이는 넓어졌고, 접힌 자국은 남아 있다. 이제 그 자국을 ‘P’는 벽이나 상처로 보지 않는다. 접힌 자국은 여전히 남아 있고, 앞으로도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지나온 시간의 흔적이고, 그 덕분에 자신이 이어 온 선도 연약하지만 분명히 남아 있다. 종이를 다시 펼친다고 해서 두려운 일이 생기지 않았다. 다만 그 위에 자신을 믿는 시간을 더 그릴 수 있을 뿐이었다.

 

* * *

 

어떻게 하면 점이 현실과 두려움의 벽을 넘어서 자유롭게 종이를 채울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다시 글을 쓰러 이곳으로 돌아왔다. 어떤 글을 통해 ‘P’를 응원할 수 있을지 시간을 구별하여 이야기를 적어 보다가 그것이 곧 본인을 응원하는 이야기였음을 깨닫는다. 우리가 함께 나눈다면 이 이야기는 더 이상 ‘P’만의 고민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 완벽한 점은 없고, 같이 응원할 수 있는 점들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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