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눈사람엔 행복이 담겨있다

행복을 느끼고 주변에 나눠주는 것이 성공한 인생 아닐까
글 입력 2022.12.2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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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눈이 좋다. 매일 같이 보던 거리가 하얗게 물들었다는 건 무척 로맨틱한 일이다. 늘 걷던 거리는 새로운 곳으로 변하고 하얀 빛으로 눈부시게 반짝였다. 같은 공간이지만 내가 알던 곳과 전혀 다른 느낌이다.

 

아침에 일어나 눈이 내리고,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든 것을 보곤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어렸을 때부터 눈이 오는 게 참 좋았다. 그때는 친구들과 노는 것이 참 좋았다. 눈을 가지고 썰매도 타고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까지 해줘야 직성이 풀렸다.

 

지금은 한걸음 물러서서 하얗게 덮인 풍경을 보는 것이 참 좋은 것 같다. 눈은 늘 같은 일상에 특별한 이벤트다. 하지만 가장 최근 눈이 왔던 그날은 옛날의 키 작았던 꼬마처럼 눈과 아주 가까이서 함께 놀았다. 아마 지난주에 눈이 잔뜩 왔을 때 근무시간 때문에 눈을 온전히 즐기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이번에 온 이 눈은 제대로 즐겨주겠다는 다짐을 하며, 곧바로 롱패딩과 목도리 하나만 둘러쓰곤 밖으로 뛰어나갔다. 밖에 나서자마자 새하얀 세상이 반겨줬고 작은 눈송이들이 어서 오라며 손짓했다.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마스크를 벗고 눈 냄새, 겨울냄새를 맡았다. 하얀 입김과 함께 겨울의 한 가운데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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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을 옮겨 공원으로 나섰다. 아침엔 분주히 출근하는 사람들, 길을 닦고 있는 경비원분들이 있었다. 누군가에겐 불편하고 위험할 수도 있는 눈이었지만, 이 눈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어른이 된 나에게 흔하게 오는 기회가 아님을 알기에 나만 빼고 바쁜 그 거리를 한적하게 거닐었다.

 

새벽부터 내린 눈은 두텁게 쌓여있었고 그것을 밟는 순간 뽀드득 소리가 났다. 눈은 어쩜 밟히는 소리마저 이렇게 이쁠까. 푹신한 촉감과 귀여운 소리가 나 자꾸만 눈이 많이 쌓인 곳을 걸었다.


집 뒤쪽에는 공터가 있는데, 아침이라 그런지 아무도 이곳을 거닐지 않아 깨끗하고 새하얀 눈이 두텁게 덮여있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길, 그런 길이 참 좋았다. 내가 처음 밟는, 하얀 눈길. 한 번 밟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눈밭이었기에 그 하얀 광경을 보자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었다.

 

그렇게 뽀드득 소리를 내며 발자국을 하나 둘 새기다가, 문득 이 하얀 눈밭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싶어졌다. 기다랗게 난 공터의 하얀 거리를 냅다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눈 쌓인 하얀 나무들, 하얗고 깨끗한 눈밭, 아직도 내리고 있는 눈발이 나를 빠르게 지나쳤다. 눈의 두께 때문에 푹신하기까지 하니 문득 구름 위를 달리고 있다는 착각까지 들었다. 주변엔 나 말고는 눈, 그리고 까치들밖에 없어서 정말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눈치 보지 않고 그저 한다는 생각에,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에, 이곳에 내가 존재함을 느끼며 진정으로 짜릿하고 행복감을 느꼈다. 1여 분을 그렇게 내달렸을까. 숨이 차 왔다. 길의 끝에 다다르자 달려왔던 길을 되돌아왔다. 12월의 한겨울이었지만 마스크 없이 얼굴을 때리던 그 공기 그리고 폐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공기는 하나도 차갑지 않았다. 유독 눈이 오는 날은 춥지 않았다.

 

공터엔 벤치가 하나 있었는데, 눈 덮인 그 벤치는 왠지 허전해 보였다. 그 앞으로 다가가 주위를 한번 쓱 둘러본 뒤, 바닥에 쌓인 눈을 조금 손으로 뭉쳐보았다. 이날 내린 눈은 무척이나 잘 뭉쳐졌다. 맨손으로 눈을 뭉치고 있자니 아려와서 빠르게 만들었는데도 한 번에 잘 뭉쳐졌다. 눈사람의 몸통과 얼굴을 만들고 앉음뱅이 나무에서 잔가지들을 조금 뜯은 뒤에 눈과 팔을 붙였다. 머리장식까지 붙여주니 꽤 그럴싸했다. 

 

벤치에 자그만 눈사람을 앉혀줬다. 이번엔 혼자 남은 눈사람이 쓸쓸해 보였다. 다시 맨손으로 눈을 뭉치기 시작했다. 손은 시려왔지만 곧 옆에 설 친구를 생각하며 웃음 가득 만들었다. 새로 뭉친 눈사람 친구는 조금 더 작은 모습으로 만들었다. 이번엔 팔을 좀 더 높이 치켜들고 웃는 모습까지 붙였다. 그 눈사람을 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세상에 태어나 행복하다는 듯이 "예에!" 함성을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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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만든 눈사람들 중 제일 마음에 들었다. 벤치에 눈사람 두 친구를 앉혀두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눈사람처럼 이 눈사람을 본 사람들이 순수하게 행복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가족과 친한 친구들에게 눈사람을 만들었다며 사진을 보냈다. 언니는 귀엽다며 웃음을 지었고 자신도 눈사람을 만들겠다며 집 밖으로 나선 친구도 있었다. 행복했다. 오늘도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었구나.

 

하루하루 생기는 이 감정들을 섬세히 받아들이고 즐거움을 찾아 행복을 느끼는 것. 이 행복을 느끼고 주변에 나눠주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다음번에 눈이 와도 또 이렇게 신나게 혼자 뛰어놀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쁨이 충만한 하루였다. 이 새하얀 눈이 또 온다면 여러분들에게도 닿아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고 기분 좋은 하루를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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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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