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를 잃어버렸던 장소

인생이라는 한복판에서 나를 잃어버린, 다시 되찾을 이야기
글 입력 2022.02.21 14:2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나라는 사람이 사방으로 파편화된 기분을 느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 잘 알았다고 확신한 채 기뻐했던 어느 날이 머쓱할 만큼. 내 정신과 감정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이 세상 다른 어딘가에 던져져 있는 것만 같다. 분명한 건 꽤 오랫동안 '나 자신'에게 적절한 관심과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를 잃어버린 것이 분명하다. 나를 찾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진 어느 날부터, 사방팔방 주위를 미친듯이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과연 나라는 사람이 갈 '옳은 길'은 어디인지, '정답'이 있는지 확인하고자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남들이 말하는 주장과 정보들이 내게 꼭 맞는 옷처럼 여겨지진 않았다. 우선 스스로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목적지가 없는 길을 무작정 떠나려고 했으니 밑빠진 독에 물 붓기였겠지.

 

최소한 내가 어떤 광경을 보고 기뻐하는지, 어떤 분위기의 장소에 가 닿을 때 설렘을 느끼는지, 이 여정에 어떤 준비물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조차 되살려야 했다. 이를 점검하지 않아 녹이 쓴 회전목마처럼 나의 몸과 마음은 삐그덕대기 마련이었다. 이제 그만 남들이 옳다고, 그렇게 가야만 한다고 외치는 곳을 추종하는 데에는 질려버렸다.

 

 

running-g09333709f_1920.jpg

 

 

한 사람이 길을 떠나려면 최소한 그에게는 움직일 이동수단(예컨대 다리와 발, 혹은 탈 것)과 생각하고 사고할 정신, 그리고 지도 또는 나침반이 있어야 한다. 나에겐 멀쩡한 이동수단은 있었지만 미친듯이 달리고 있던 와중에 떠올려보니 정신과 나침반은 어디로 도망갔는지 사라져버렸다. 뼈저리게 깨닫고 말았다. 아무리 빠르게 뛰어간다고 한들, '어디를', '어떻게', '왜' 가는지 모르면 가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려고 한다. 열심히 달린 이 길의 끝에서 허망함을 느끼지 않도록, 지나온 시간에 후회하기 싫어서다. 무작정 빨리 달리고 싶은 질주 본능은 부상이라는 결과를 만들기에 딱 좋다. 준비운동도 제대로 하지 않고 오로지 완주라는 얕은 성취감을 단기간에 얻고자 추운 겨울날 준비 운동도 없이 10km를 뛴 사람으로서 안다. 그날의 무리로 인한 부상은 근 2년간 무릎 통증을 만들었다.


몸이든, 정신이든 어딘가로 향하고 싶다면 부단히 '준비'해야한다. 물론 준비 과정에서 그 둘의 갈등과 불화는 필연이지만, 그대신 목적지까지 효과적으로 도달할 나침반과 지도를 만드는 데 큰 정성과 수고를 들이면 어느 순간 평화협정이 맺어져 있겠지.


그렇다면 나침반과 지도를 만드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이 작업은 사람마다 모두 다 다르게 진행될 것이다. 사람은 모두 완벽히 다른 존재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자에 맞게 매우 섬세하고 사려깊게 다뤄져야 한다. 나침반 또는 지도를 만들 때 세상 모든 사람이 "좋다"라고 할 곳이언정, 그 스스로에게 강한 진동과 파장이 일지 않는다면 시기상조다. 과연 어느 순간에 어떤 경로와 기회를 만났을 때 스스로가 잠든 상태에서 깨어나는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역설적으로 여행 중 엉뚱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가더라도 그 자신을 축하해줘야 마땅하다. 일단 가보지 않고는 정답이 없는 나침반의 방향을 올바르게 맞춰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목적지가 누구에게는 짜릿함과 즐거움을 안겨줄 지라도 다른 이에게는 1초라도 더는 있기 싫은 곳일 수 있다.

 

 

compass-g193bfedad_1920.jpg

 

 

부단히 실패하며, 나침반의 방향을 찾아가다 보면 알게 되겠지. 실패없는 완벽한 성공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중력법칙과도 같은 사실이다. 어느 순간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이 여행과 여정이 곧 '인생' 그 자체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쓰다보니 이제 선언할 수 있겠다. 나를 잃어버렸던 장소는 바로 인생이었다.


지금까지 했던 모든 실패 또는 경험의 양보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들을 겪고, 다양한 장소에 가겠지. 그래도 앞으로의 여정이 꽤나 두렵지 않게 된 건 나에게 '쉼'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를 잃어버리는 파편화된 상태에서 달리지는 않기 위해서다.

 

쉼을 통해 지나온 과정에서 무엇을 느끼고, 사랑했는지 돌아보며 그때마다 나침반의 방향을 섬세히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몸과 마음의 준비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음으로써 두 가지의 근육을 동시에 키워갈 것이다. 둘을 베스트프렌드로 만들어 볼 작정이다. 그러다보면 앞만 보고 뛰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상처가 점차 줄어들겠지. 그리고 보다 깊은 확신을 더해가며 다음 장소로 향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불확실한 여정이 이제 전처럼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단단한 근육으로 뭉쳐진 몸과 정신을 되찾고, 제법 애정을 갖게 된 나침반을 사용하다보면 이제 또 다른 누군가가 보일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열면 나만의 주파수와 맞는 동료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과 때로 동행하기도, 흩어지기도, 또 어느 순간 모이게 되면서 '느슨한 연대'를 이어나갈 생각이다. 인공지능은 대체할 수 없는 인간(人間)의 본질은 사람 인이라는 문자의 상형처럼 '서로 맞대어 살아가는'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돌보며 다시 새로운 여정을 떠나겠다. 조금 더 단단해진 채로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는 동료들의 다가옴을 설레이 고대하고 있다.

 

 

 

신지예 컬쳐리스트.jpeg

 

 

[신지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