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헤드윅'의 몸에 새겨진 여러 역사들 [공연]

뮤지컬 <헤드윅>(Hedwig and the angry Inch)의 맥락 읽기
글 입력 2024.05.0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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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헤드윅>(원제: Hedwig and the angry inch)은 현재 한국에서 라이선스 14연 공연이 무대에 올라오고 있다. 뮤지컬 <헤드윅>의 한국 라이선스 14연은 제작사 쇼노트(Shownote)에 의해 샤롯데씨어터에서 2024년 3월 22일부터 2024년 6월 23일까지 공연된다. 한국 라이선스의 경우 2005년 대학로라이브극장에서 초연되었고, 점점 소극장에서 중극장 규모로, 중극장 규모에서 대극장 규모로 크기를 키워 14연까지 꾸준히 공연되는 작품이다. 뮤지컬 <헤드윅>(Hedwig and the angry inch)은 존 카메론 미첼이 극본을, 슈테판 트레스크가 작곡을 맡아 1998년 미국에서 초연되었고,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를 거쳐 2014년 브로드웨이 무대까지 진출했다.

 

극은 주인공 헤드윅이 남편이자 조수 이츠학과 앵그리 인치 밴드와 함께 공연장에서 자신의 기구하고 박복한 인생사를 관객에게 얘기해준다는 컨셉으로 진행된다. 동독과 서독이 분리되어 있던 시기, 동베를린에서 태어나 ‘자유’를 갈망하던 한셀 슈미트는 어린 시절 미군이었던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엄마가 아버지를 쫓아내고 헤드윅은 방치된 채 컸던 과거가 있다. 헤드윅은 어느 날 미군 루터를 만나 청혼을 받고, 결혼해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동베를린에서 결혼을 하고 가야 했다. 한셀은 자신의 어머니인 헤드윅의 이름을 따 헤드윅 한셀 슈미트라는 이름으로 미국으로 가기 위해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지만 의사의 실수로 1인치 살덩이가 남게 된다. 미국으로 가고 1년 뒤, 헤드윅은 이혼하고 무너진 베를린 장벽을 tv로 보고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힌다. 그 이후에도 1인치 살덩이를 알게 된 후 떠난 애인 토미 노시스가 자신의 음악을 훔쳐 락스타가 된 일, 크로아티아에서 인종청소를 당할 뻔한 이츠학을 거둬준 에피소드 같은 자신의 사연을 여러 넘버들과 함께 관객에게 설명하듯 말해준다. 그렇다면 헤드윅의 모든 이야기가 끝난 이후, 헤드윅은 과연 어디로 향하게 될까?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통해 본 자기 긍정 서사


 

뮤지컬 <헤드윅>은 경계를 계속 넘어가는 이야기다. 동시에 그러한 경계 넘기의 어려움과 정착의 실패를 다루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떠한 서사를 ‘퀴어’하게 읽는 방법은 작품의 경계를 거스르고, 횡단하고, 그 중간에(in-between) 있는 캐릭터들에게 주목하는 것이다. 헤드윅은 자유를 위해 자신의 성기를 포기하고 루터를 따라 동독에서 미국으로 갔던 것처럼 경계를 넘어 안착하는 것에 대한 욕망이 있었고, 그 욕망은 번번히 좌절되었기 때문에 헤드윅은 계속해서 경계 넘기를 시도하는 존재이자 계속해서 구성중인 존재로 남아 있게 된다. 바로 그 지점 때문에 헤드윅의 퀴어 정체성뿐만 아니라 헤드윅의 서사 자체가 퀴어적인 형식성을 수반하고 있다.

 

뮤지컬 <헤드윅>의 원작자 존 카메론 미첼은 헤드윅이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라고 밝혔다. 성별에 대한 성본질주의적 견해를 벗어나 퀴어 이론가들은 트랜스젠더퀴어의 신체를 복잡하고 모순적인 ‘아카이브’로 인식하는데, 이는 트랜스젠더를 다루었던 근대 성과학 담론과 어느 정도 충돌한다. 근대의 성과학 담론은 트랜스젠더의 신체를 치유의 대상으로 포섭시키면서 동시에 배제하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였다. 의료적 트랜지션은 ‘패싱’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으로 상정되었고 이성애중심적 가부장제 주류 사회에 편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지만 헤드윅의 남겨진 1인치 살덩이는 그러한 성과학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틈새다. <헤드윅>은 초기의 성과학이 포괄하지 못한, 후기 근대 사회를 맞아 더 유동적으로 변한 트랜스젠더퀴어 담론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주류 사회의 변화라는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헤드윅이 겪었던 의료적 트랜지션의 경험을 단순한 실패의 상징으로 묻어두지 않고, 쉽게 부정하거나 경시하지 않는다. 단지 그 선택을 하게 된 맥락을 살펴보고 과거의 자신을 존중할 뿐이다.

 

루터와의 이혼 이후로 헤드윅은 미국 사회에서 락 음악을 하면서 허드렛일이나 성애화된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룸펜’ 격인 존재가 된다. 군 장교 집의 베이비시터로 일할 때 만난 그 집의 큰아들 토미와 사랑에 빠졌어도 헤드윅의 1인치를 알자 토미가 떠난 아픈 경험도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자기혐오와 세상에 대한 환멸로 가득 찬 헤드윅에게 가 닿았던 토미의 사과를 통해 헤드윅은 자신이 집착하고 매달렸던 것들과 통제하고 억압했던 것들을 돌아본다. 이때 헤드윅 한셀 슈미트가 으깨버린 토마토의 이미지는 엄마가 미국 락을 듣던 어린 헤드윅에게 던진 토마토의 이미지와 겹치며 헤드윅의 성장을 함의한다. 헤드윅은 비규범적인 신체로 살아왔던 자신의 과거를 거부한다기보다 그 취약성 자체를 받아들인다. 트랜지션 경험과 1인치 살덩이는 헤드윅의 몸에 쌓인 하나의 복잡하고 모순적인 역사다. 또 다른 반쪽을 찾으려던 헤드윅은 마지막에 자신의 1인치라는 ‘퀴어성’을 긍정하고 함께 살아갈 힘을 얻고 또 다른 삶의 여정을 시작한다.

 

 

 

나와 타자: 내셔널리티라는 은유


 

자기 자신의 주체화 과정에 동원되는 타자, 타자를 통해 자신의 자아상을 조절하는 것 모두 사회적인 과정의 산물이다. 다만 이것을 수행하는 주체에 따라 타자에 대한 자의적인 물화와 특정한 방식의 ‘대상화’가 문제적인 것으로 변모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국가의 단위로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식민주의, 제국주의, 민족주의, 그리고 민족주의를 활용한 제 3세계의 저항 담론, 그 민족주의 저항 담론에서조차 온전히 포괄할 수 없는 누락된 하위 주체(서발턴)의 탈식민주의⋯ <헤드윅>이 자신의 자아를 구성 혹은 회복하는 서사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과 그 이후의 시기 베를린 혹은 독일의 역사, 미국 사회의 변화, 독일과 유대인의 역사가 반영된다. 초반부 넘버 에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다른 반 쪽’을 찾기 위한 헤드윅의 여정은 결국 ‘완전한 나’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로 귀결되었는데, 헤드윅의 자기 이해는 곧 타자와의 관계와 타자에 대한 이해와 같이 이뤄진다는 측면에서 흥미롭다.

 

먼저, 베를린은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와 독일이 패망한 이후,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인 미국, 영국, 소련 등에 의해서 전쟁을 일으킨 책임으로 인해 동독과 서독이 분리된 상황 속에서 수도였던 베를린도 같이 분리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베를린은 동독과 서독의 중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독 땅 한 가운데에서 동과 서로 갈라졌다는 것이다. 동독과 동베를린은 공산주의 진영이었던 소련이, 서독과 서베를린은 자본주의 진영이었던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주둔해 있었다. 기나긴 갈등 속에서 소련에 의한 (서)베를린 봉쇄 같은 사건들이 일어나기도 했을 만큼 베를린 장벽은 물리적인 분리와 상징적인 이념 분리의 상징이었다. 물론 분단 시기의 독일은 지금의 한국처럼 아예 통행이나 접촉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헤드윅이 경계에서 루터를 만날 수 있었다.

 

공연이 시작된 후 이츠학이 헤드윅을 소개하는 넘버 ‘Tear me down’에서 말했던 대로 헤드윅은동과 서의 경계, 남성과 여성의 경계 사이에 있지만 이러한 경계는 자연적인 이분법적 대립 구도 속의 경계가 아니라 마치 동독 땅에 있는 동/서베를린처럼 밖으로 나가는 것이 어렵다고 상상되는 ‘봉쇄’ 속의 경계다. 또한 당위적으로 발생한 경계라기보다 근대국가와 이념이라는 권력의 역학들에 의해 임의적으로 설정된 임시적 경계이다. 이러한 범주의 임의성은 서구 근대의 의학 담론이 (생물학적 성이라고 불리고 그렇게 여겨지지만 단지 스펙트럼에 불과한 것을 사람들이 간과하고는 하는) ‘섹스’ 체계를 ‘발명’한 것과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소련의 해체로 냉전이 종식된 이후 후기 자본주의의 질서 속에서 헤드윅의 존재는 경계 그 자체를 나타내는 혐오스러운 구성물이자 그 이전을 환기시키는 해결되지 못한 찌꺼기 같은 ‘비체’다. 사실 여기 헤드윅을 대하는 주류 사회의 기만이 있다. 냉전은 해소되었지만 냉전이 남긴 것들은 끝나지 않았다. 독일의 역사가 쌓인 헤드윅의 신체가 바로 그 유산이다.

 

그렇다면 루터를 따라 엄마 여권을 들고 미국에 간 헤드윅의 월경(越境)은 단순히 독일(동독)에서 미국으로의 결혼 이주라는 의미를 넘어 (후기) 냉전 시기 미국을 필두로 하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진영으로의 편입이다. 이 이행에 퀴어 담론과는 긴장 관계에 있는 성과학의 아이러니한 유산인 의료적 트랜지션이 요구되었다는 것과, 그 편입이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자유’를 바라던 헤드윅이 자신의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 택한 낭만화된 이성애 각본은 미국에 온 후 이혼으로 인해 한 번 좌절되었고,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인해 그러한 희생 역시 무의미해졌다. 냉전 시기 헤드윅이 원했던 자유는 냉전이 종식되고 전 지구가 미국을 필두로 한 신자유주의(자본주의) 체제에 통합되면서 애쓰지 않아도 닿을 수 있는 것이자, 오히려 흘러넘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신자유주의의 자유는 인간의 해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독립된 개인이라는 근대적 자아상이 시장 권한의 확대와 조우하게 되면서 단지 ‘시장적 자유’,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파이를 차지할 권리’로 비화되었을 뿐이다. 결국 <헤드윅> 속 헤드윅이 추구했던 해방의 수사인 자유는 결국 헤드윅을 해방으로 이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의 개념이 사회에 의해 오염되면서 헤드윅을 비체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아이러니하게도 헤드윅에게 루터가 요구했던 희생과 포기할 것은 헤드윅과 이츠학의 관계에서도 이어진다. 크로아티아에서 Kristallnacht(크리스탈나크트)라는 별칭을 한 드랙퀸이자 유대인이었던 이츠학은 인종청소의 위험 속에서 헤드윅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헤드윅은 소름돋게도 루터가 말했던, “자유에는 희생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그를 자신의 남편으로 삼는다. 이러한 연쇄적인 방식의 위계는 헤드윅이 이츠학의 생존을 대가로 그에게서 ‘크로스드레스’할 자유를 빼앗고 쇼에서 자신의 코러스만 맡도록 자신의 조수 급으로 격하시킨 것에서 잘 나타난다. 흥미롭게도 이츠학의 드랙퀸 네임인 ‘Kristallnacht’는 한국어로 수정의 밤이라고 번역되는데,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수정의 밤은 나치가 유대인 시나고그의 창문 유리를 깨버리는 테러를 저지른 사건을 지칭한다. 수정의 밤은 유대인을 게토로 몰아넣는 것과 더불어 그 사건 그 자체뿐만 아니라 단순히 ‘분위기’나 정서에서 멈췄던 유럽의 유대인 혐오가 본격적인 테러로 전환되었던 기점이 되었던 사건이자 홀로코스트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헤드윅과 이츠학의 관계에 있어서 그들의 출신지 혹은 정체성은 기나긴 역사의 누적들을 은유한다.

 

헤드윅은 이츠학뿐만 아니라 더 앵그리 인치 밴드 멤버인 슈크슈프, 크리츠토프, 이첵, 슐라트코, 미르코 (공연에서는 단순히 음악을 담당하는 연주자를 넘어 추가적으로 극에 개입하기도 한다.) 역시 이츠학과 비슷하게 헤드윅의 권한 아래 있다. 사실 앵그리 인치 밴드 구성원들의 이름에서도 그러하듯 미국에서 전형적인 ‘백인’에게 사용되는 이름이라기보다 여러 스페인계, 멕시코계, 라틴계 이민자 출신의 이름에 더 가깝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정한 지위는 극 내에서 헤드윅이 경찰들이 찾아온 것처럼 호각을 불고 놀라서 도망가자 장난이라며 그들의 여권을 자신이 다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웃으며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는 앵그리 인치가 적어도 서류 상으로는 미국인인 헤드윅의 자비가 아니라면 위태롭고 언제든지 추방당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사랑과 사람에게 계속해서 버림받은 헤드윅은 자신의 반쪽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이츠학과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집착하며 그들을 통제한다. 이츠학의 뮤지컬 <렌트> 합격증을 찢어버린 헤드윅의 모습은 사람들이 자신을 떠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자 ‘국민 자격’이라는 위계를 활용해 그들을 억압하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아버지와 루터에게 당했고, 엄마에게 방치되었던 것처럼.

 

헤드윅이 (지식이라는 뜻의) ‘노시스’라는 성을 지어준 토미 노시스, 본명 토미 스펙에게 위로와 사과를 듣고 난 후의 헤드윅은 그동안 자기 자신이 스스로 미완의 것이라고 여겼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동안 헤드윅이 의식했던 불완전한 자아상과 완결을 추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운명의 상대를 찾아다녔던 집착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며 동시에 헤드윅은 이츠학에게 그가 원하던 가발과 옷을 (되돌려) 준다. 이츠학과 밴드의 멤버들의 해방은, 헤드윅의 ‘해방’이 단순히 독립적인 주체의 개별적인 성장이라기보다 타자와의 네트워크, 그리고 그 속의 위계를 인식하고 그것 자체를 변화시키는 대안적인 방식의 해방이자 성장임을 함의한다. 넘버 <‘Midnight Radio’>에서의 헤드윅은 관객을 포함한 모두에게 지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 후 자신의 변화를 외부로 확장시키며 극은 끝난다.

 

추가적으로, <헤드윅> 속에서 국가의 경계가 어떻게 활용되었는지에 주목한다면 헤드윅이 켄자스 정션 시티에서 미군과 결혼한 한국인 여성들과 밴드를 만들었다는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분단된 한국의 종주국으로 기능해왔다는 점과 식민화가 수반하는 젠더화를 생각하면, 헤드윅의 밴드 멤버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남긴 유산의 기표다. 미군이었던 헤드윅의 아버지가 어린 헤드윅에게 성폭력을 가했다는 것과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한국인 여성들과 함께 한 밴드는 일종의 하위주체 간의 연대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외에도 헤드윅의 이혼 이후 헤드윅의 어머니가 이민을 갔다는 유고슬라비아는 내전이 일어난 국가여서 헤드윅이 이 말을 할 때는 어머니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알리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이츠학의 출신지인 크로아티아에서 벌어진 인종청소는 헤드윅의 어머니가 이민간 국가인 유고슬라비아 내전과 연관성이 있다. 1990년대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냉전은 끝났지만, 냉전 시대의 질서가 남긴 여파와 상흔은 <헤드윅>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헤드윅>, 표백된 퀴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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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뮤지컬 <헤드윅>은 공연예술 마니아층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진 작품이며, 굉장히 많은 화제성과 경제적 가치를 낳을 수 있는 흥행 보증수표로 통한다. 하지만 차별금지법도 제정되지 않은 한국에서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이 작품이 왜 이렇게 많은 대중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일까? 바로 헤드윅의 퀴어 수행을 단지 쇼적인 것으로만 스펙타클화하고 트랜스젠더퀴어로서의 성장을 다룬 이야기를 ‘보편적인 인간’으로 치환하며 ‘소비’하기 좋도록 자의적으로 가공하기 때문이다. 이는 퀴어 서사이지만 트랜스젠더퀴어 정체성을 부차적인 것으로 규정해 피상적인 극에 대한 이해를 초래하고 사회 규범에 ‘누락된 자’로서의 헤드윅이라는 존재의 자기서사가 ‘완전한 나’라는 주체의 자기동일성 신화에 복무하게 되는 텍스트로 전유될 위험이 있다. 보편자 혹은 다수자에 의한 소수자 서사의 전유의 전형적인 사례로서 퀴어성이 표백된 <헤드윅>은 자본주의를 포함한 사회의 지배 체제와 불화하지 않는 안전한 작품이 되고, <헤드윅>의 욕망과 섹슈얼리티는 치열한 인정 투쟁의 역사를 표현하는 극적 장치로서가 아니라 단지 ‘프릭쇼’의 셀링 포인트가 된다.

 

이러한 라이선스 창작 및 소비에서 퀴어가 지워진다는 것의 한 일례는 당장 현재 진행되고 있는 뮤지컬 <헤드윅>과 멜론티켓 플랫폼의 제휴로 제시되는 <헤드윅> 캐릭터 팬클럽 서비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팬클럽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부가 정보로 생년월일 정보와 함께 ‘성별’ 표기가 필수적인 것으로 되어 있는데, 성별 표기에는 ‘M’과 ‘F’라는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아이러니 그 자체다. 사회의 젠더 이분법과 계속해서 경합해 왔던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법적 성별과 원하는 성별이 다를 수 있는 바이너리 트랜스젠더를, 둘 중 어떤 선택지도 원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등을 너무 손쉽게 배제하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당장 <헤드윅>의 주인공 헤드윅과 이츠학부터 이 응답에 ‘디스포리아 없이’ 답할 수 없다. 혹시 이 공연을 보고 싶어하는 트랜스젠더퀴어들에게 주인공 헤드윅이 겪었던 억압과 유사한 경험을 몸소 체험할 기회를 주려는 것일까?

 

회원 식별과 중복 가입을 막기 위한 부가 정보로 성별을 요구하는 것은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같은 다른 뮤지컬의 팬클럽 서비스도 해당되기 때문에 뮤지컬 <헤드윅>은 그저 티켓 플랫폼의 내규를 따랐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퀴어의 이야기를 다루는 <헤드윅>이라는 극을 창작하고 관리하면서 실제 트랜스젠더퀴어의 삶에 대한 추가적인 관심이나 고려 없이 극을 대한다는 것은 충격적인 태도다. 공연예술 작품은 단순히 자본화된 상품이기 이전에 사회적 소통과 매개의 수단이다.

 

다음으로, 뮤지컬 <헤드윅>은 배우에게 많은 자율성이 주어진 작품 중 하나이다. 관람 시간의 경우 135분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배우 개인이 보여주고 싶은 감정선이나 ‘애드리브’의 정도에 따라 더 오래 할 수도 있을 정도이다. 배우의 자율성이 주는 미학적 이점과 별개로, <헤드윅>이라는 극은 한국에서 멀티 캐스팅, 배우 간의 ‘차이’를 보고 싶어하는 회전문 관객들에게 어필되었으며 극장이 커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스타 캐스팅의 흐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 뮤지컬 시장의 특징이 뮤지컬 <헤드윅>의 라이선스 공연에도 적용됨에 따라 직접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 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데, 스타 캐스팅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퀴어 당사자의 배제와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 배우, 비퀴어 배우의 배역 ‘독(과)점’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헤드윅>이 초연되었던 미국에서는 원작자 존 카메론 미첼이나 닐 패트릭 해리스 같은 커밍아웃한 게이가 헤드윅을 맡는 경우가 많았고, 2016년 투어에서 여성 배우인 레나 홀이 헤드윅 역할을 맡기도 했다. 브로드웨이와 영미권 캐스팅은 변혁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한국 뮤지컬 시장과는 대조적인 모습인데, 이러한 차이의 원인으로는 보통 영미권 퀴어 민권 운동의 성과로 인한 시민의식의 반영과 성소수자가 커밍아웃하고 가시화되기 힘든 한국 사회의 특징이 지목된다. 물론 이는 매우 중요한 변수이지만, 한국에서, 정확히 한국 공연예술 시장에서 퀴어의 가시화는 경제적 구조와 자본력의 문제와도 중첩되어 있다. 산업의 규모가 크고 ‘외부’의 소비자들인 관광객이 수입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영미권과 달리 한국 뮤지컬계는 본질적으로 내수 시장이기 때문에 <헤드윅> 캐스팅의 비퀴어 남성 배우 위주 기용은 스타 캐스팅에 의존하는 한국 뮤지컬의 산업 규모와 양상이라는 측면까지 개입한다. 정리하자면, 한국에서 퀴어를 다룬 뮤지컬 <헤드윅>이 대중적인 공연 작품으로 ‘편입’하게 된 것은 퀴어성을 적극적으로 탈색시키는 이른바 사회적 커버링의 문제와, 한국 사회의 공연예술 혹은 문화 시장의 특수한 구조의 문제가 서로 상호작용하고 한 가지가 나머지 다른 것을 고착화시키면서 나타난 결과다.

 

 

* 물론 비퀴어인 배우가 성소수자에 대한 지지와 이해를 표현하는 모습을 보여준 경우도 있기 때문에 ‘당사자성’ 자체를 퀴어 배역에 필수적인 것으로 여긴다면 오히려 정체성의 물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퀴어 배역에서 당사자성이라는 특성은 필수적인 조건은 아니다. 그렇지만 사회적인 맥맥락 고려했을 때 당사자성은 차선책이자 중요한 참고자료다. 

 


P.S. 이 글의 문제의식에 흥미가 생겼다면, 한 사람의 이야기에 트랜스젠더의 역사, 헝가리의 역사, 유럽 속 유대인의 역사가 동시에 녹아든 수잔 팔루디의 『다크룸』(아르떼, 손희정 옮김)을 추천한다. 『다크룸』은 나치 시기에서 살아남은 헝가리 유대인이자 의료적 트랜지션을 받고 트랜스젠더 여성으로서 살아간 수잔 팔루디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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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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