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과 나의 시간이 겹치는 체험 – 노부스 콰르텟: 브리티쉬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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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토요일 저녁이다. 장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이들에게만 공연기회가 주어진다는 예술의전당. 노부스 콰르텟의 <브리티쉬 나잇>이 관객들을 기다린다.
공연장에는 옅은 주황빛이 감돈다. 무대에는 관객석을 바라본 채 4개의 보면대와 아이패드가 놓여있고, 바닥에는 페이지터너(블루투스로 연결해 공연 중 발로 밟아 아이패드 악보 페이지를 넘길 수 있게 해주는 기계)로 짐작되는 작은 네모 물체들이 각각 하나씩 놓여있다.
등받이가 있는 조금 딱딱해보이는 의자 두 개와 등받이 없이 푹신해보이는 의자 두 개가 놓여있다. 전자는 바이올린 연주자의 것이고, 후자는 비올라와 첼로 연주자의 몫이다. 어느새 조명은 무대에만 집중할 수 있게 살짝 어두워지고 검은 옷과 구두를 차려입은 네 남자가 들어온다.
타이밍을 맞추는 바이올린 연주자의 숨소리에 맞춰 아마도 최상급 말꼬리로 만들어졌을 활이 악기를 문지른다. 전문가가 오랜 시간을 들여 건조하고 다듬어낸 목재와 현이 활에 움직임에 맞춰 반응한다. 송진가루는 마찰하며 공기를 진동시킨다.
현과 악기가 마찰하며 공기를 찢는 소리를 낸다. 그 존재감. 지난번에 같은 장소에서는 수십명이 하모니를 이뤄 공간을 채워냈었는데, 오늘은 단 네 명이다. 물론 무대에 있는 콘덴서 마이크가 소리를 담아내어 공연장에 마련된 음향장비를 통해 관객에게 적절히 소리를 나누어 주었을 테지만, 4명의 연주자임에도 무대를 채워내는 강렬한 존재감이 있다. 고작 넷으로 이 큰 공연장을 채울 수 있을까 짐짓 고민했던 시간이 무의미해졌다.
악기 연주란 다른 재질을 가진 두 개의 줄이 송진가루의 마찰에 힘입어 목재를 진동시키는 것을 뿐일텐데, 어떻게 사람의 마음에 와서 가닿는 걸까. 그 단순한 행위에 이 정도의 의미와 깊이를 부여하는데에는 얼마만큼의 연습과 고민이 필요한 걸까. 나는 연주를 바라보며 그들의 시간의 밀도를 생각한다.
나 역시 어린시절 현악기를 배운적이 있다. 바이올린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활이 일자로 주행하며 올바른 소리를 내기까지 꽤 시간이 필요했고 어깨가 아주 아팠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음조절을 위해 눌러야 하는 자리에 선생님이 스티커를 붙여주기도 했었는데, 기타처럼 프랫으로 나눠져있지도 않은 줄의 위치를 가늠하며 정확한 음을 연주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린시절 몇 달간의 짧은 경험에 비추어보니 그들의 섬세함과 힘있음과 표현능력을 보다 느껴볼 수 있었다. 클래식음악 전공자도 아닌 나는 내가 듣고 있는 그들의 연주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재주는 없지만, 음악을 즐기고 느끼는데에 꼭 전문지식이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그저 짧은 경험과 배경지식으로도 대단하다거나 아름답다고 느끼는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다양한 자료를 빌려 그들의 행적을 소개해보자면, 노부스 콰르텟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네 대의 현악기 연주자로 이루어진 팀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과 김영욱, 비올리스트 김규현, 첼리스트 이원해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영국 런던 위그모어홀 상주음악가로 활동하기도 한, 이미 세계적으로 입지를 가지고 있는 음악가들이다.
이들은 지난 5년의 시간동안 5차례의 현악사중주 전곡연주 사이클, 런던 위그모어 상주음악가 선정, 인터내셔널 음반 발매 등 의미있는 행적들을 이어왔다. 2007년 결성하여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의 구분이 없는 인상적인 팀 운영을 바탕으로 다양하고 균형있는 연주로 주목을 받아왔다고 한다. 그들이 받아온 찬사와 지난 수상실적은 너무도 많아 일일이 나열하는 것이 오히려 의미없는 일일 것이다.
이 앙상블은 놀라울 만큼 견고하고 균형 잡힌 연주를 한다. 네 음악가들 모두 동등한 수준으로 연주하며, 음악을 만드는 방법은 매혹적이다. 우리는 노부스 콰르텟의 밝은 미래를 예견한다.
- 루카스 하겐, 하겐 콰르텟 제1바이올리니스트
본디 클래식 음악은 해석이라고 했다. 실용음악은 좀 더 자유롭게 음을 연주하고, 재즈 역시 즉흥성과 현장성을 보다 중시하지만 클래식은 주어진 악보와 선율 내에서 미묘한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내는 장르라고 알고 있다.
이 날의 공연은 에드워드 엘가, 윌리엄 윌튼, 벤저민 브리튼과 같은 브리티쉬 클래식 곡들로 이루어졌는데, 노부스 콰르텟이 이들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입지있는 연주가로 연주해온만큼 영국의 색채에 더해 자신들만의 이야기가 담긴 뛰어난 해석을 보여줄것이라 기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크게 배신당하지 않았다. 네 대의 악기로 이루어진 선율들이 풍성하게 곡들의 이미지를 전달해왔다.
이들의 음악을 보다 입체적이고 구체적으로 평하려면 이들이 연주했던 곡들을 전부 잘 알아야하고, 각각의 연주자들이 그동안 어떻게 연주해왔으며 노부스 콰르텟은 어떤 지점에서 차별점을 주며 연주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논해야겠으나 비전공자의 짧은 식견으로는 쉽게 말을 더하기가 어렵고 조심스러울 뿐 아니라 독자들에게 유의미하게 전달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나는 이 글에서 공연장에서의 나의 느낌과 청자로써의 체험을 위주로 한 가지 포인트를 더 언급하고 싶다. 2024년 3월 2일 토요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이뤄진 이 날의 공연에서는 여러 번의 앵콜 곡이 있었다. (아마 3번이 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무대 뒤편으로 들어간 뒤에도,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해 다시 무대로 나와 예정에 없던 연주를 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앵콜이 많은 공연이 좋은 공연이라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관객들의 호응과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다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과 그들이 음악과 관객을 대하는 태도, 그 날의 분위기와 나의 느낌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주관적인 체험이겠지만 음악과 악기를 사랑하여 일평생을 노력하고 연습해온 사람의 밀도와, 음악을 사랑하여 귀중한 주말시간에 시간과 돈을 들여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이 만나 함께 뒤섞이는 경험은 말하기 어려운 어떤 체험을 선사한다. 그 날 들었던 음들을 하나씩 뜯어 재생하여 전달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 날 같은 장소에서 함께 현의 떨림을 느끼고, 숨을 고르며 소리의 강약에 집중하고, 박수하고 인사하며 서로의 시간을 나눴다.
음악이라는 언어이자 도구를 가운데 두고 우리가 같은 공간에서 함께 나눴던 그 순간들은 우리의 시간에 특정한 가치를 부여한다. 음악을 듣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공연을 듣는 일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무용하다고 평가될 일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런 순간들을 바라며 공연들을 찾아다닌다는 생각을 한다.
무대 위 연주자와 관객석의 청중들이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순간들이 의미있는 공연의 기억을 만들어낸다.
[김인규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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