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기구하고 기구한 어린 소녀, 두아의 이야기 - 소리극 '두아 : 유월의 눈'

글 입력 2024.03.2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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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정동극장_세실] 두아-유월의눈_poster.jpg

 

 

소리극 <두아 : 유월의 눈>은 원대 희곡 작가 관한경의 <두아원 竇娥寃>(원제 : 감천동지두아원 感天動地竇娥寃)>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원 희곡은 <한서(漢書)>와 <열녀전>에 포함된 <동해효부(東海孝婦)>의 이야기를 토대로 하고 있으며, 중국의 10대 비극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 작품은 한국 속담 중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두아가 죽기 직전 남긴 말에 기반한다.


“1장 2척의 하얀 비단으로 깃발을 달아 주세요. 제가 진실로 결백하다면, 목이 달아날 때 내 피는 모두 그 비단으로 튈 것입니다. 지금은 한 여름이지만 하늘에서 무릎까지 빠질 정도로 눈이 내릴 것이며, 그 눈이 내 몸을 덮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만일 제가 결백하다면 지금부터 3년 동안 초주에는 비가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두아원>의 주인공은 ‘두아(원래 이름 두단운)’이다. 그녀는 세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일곱 살에 아버지가 과거를 보러 먼 길을 떠나면서 아버지와도 생이별하게 된다. 며느리로 들어가게 된 채 노파의 집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는 것도 잠시, 채 노파의 아들이 젊은 나이에 급사하게 되면서 두아는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다. 어느 날, 채 노파가 새노의에게 돈을 받으러 갔다가 죽을 뻔하고, 이때 장려아 부자에 의해 우연히 목숨을 구하게 된다. 장려아 부자는 채 노파의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채 노파는 장 노인과 두아는 아들과 결혼할 것을 강요한다. 그러나 두아는 강력하게 저항하고, 이에 장 아들은 두아에게 누명을 씌운다. 결국 탐관오리의 횡포로 두아는 사형 당하게 되고, 이후 우연히 이 지역 감사로 오게 된 두천장에 의하여 두아의 억울한 누명이 벗겨진다.


창작 집단 타루는 원래 이야기의 흐름을 고스란히 따라가되, 몇 가지 설정을 변경한다. ‘단운’의 이름이 바뀌게 된 이유가 채 노파가 ‘두천장의 예쁜 딸’이라는 의미에서 ‘두아’라고 칭했기 때문이라는 점, 그리고 채 노파가 아무런 조건 없이 두천장의 (딸을 보살펴 달라는)부탁을 들어주었고 이후 채 노파의 아들과 두아가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변화한 설정으로, 채 노파는 고리대금업자이지만, 선량한 사람으로 그려지게 되면서 부패한 관리와 장려아 부자의 악함과 더욱 대비된다. 그리고 단운이 채 노파를 대신해 죽게 되는 과정에 있어 단순히 효부였기 때문이 아닌, 자신을 사랑으로 키워줬기 때문이라는 구체적인 이유가 덧붙여짐과 더불어 두아는 사랑하는 부모님에 이어 남편까지 여의게 되는 더욱 기구한 운명에 놓인 인물로 그려지게 된다. 다만, 극에서 여전히 채 노파가 쫓기듯이 이사하는 것으로 장면이 전개되는 부분과, 두아의 남편이자 채 노파의 아들이 젊은 나이에 급사하는 장면에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원작에 있어 이 부분이 나와 있지 않지만, 내용의 일부를 각색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빈 부분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덧붙였다면 서사적으로 더욱 탄탄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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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극©큰들문화예술센터(오마이뉴스 재인용) | 본 공연 무대)

 

 

공연은 마당극 형식을 차용하여 진행한다. 마당극은 1970년대 이후 한국의 전통 연희인 탈춤, 풍물, 판소리 등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야외 연극으로 다양한 표현 방식과 형식을 수용한다. 작품은 원형 무대를 중심으로 네 개의 등을 달고,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원을 무대 배경에 위치시킨다. 그 외에 무대 소품은 전무하고, 무대 양쪽으로 한쪽에는 서양악기인 키보드와 기타를, 다른 한편에는 장구, 소리북, 꽹과리 등과 같은 국악기를 배치했다. 마당극 형식으로 진행되는 만큼 처음 등장한 소리꾼이 “공연 시작합니다”를 반복해서 외치며 즐거운 분위기를 형성하고, 극 마지막에는 “공연 마칩니다”를 외치며 극의 종결을 알린다. 소리꾼들은 자신의 차례에만 무대 위에 올라오고 대부분 무대에서 퇴장하지 않고, 원형 무대 밖에 자리 앉아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내레이터(도창) 역할을 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더불어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몸이 불편한 채 노파를 더욱 극대화하여 보여주기 위하여 마임을 사용하며―실제 마당극에서도 마임이 사용된다―풍자와 해학을 위해 소리꾼들이 익살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마당극 형식을 차용하지만, 두아원의 이야기를 살짝 변형시켜 플롯 중심으로 극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관객의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는 이루어지지 않고, 추임새와 소리꾼들의 재량에 따라 간간이 진행될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극 형식을 이어감으로써 관객은 마치 달이 뜬 밤에, 어딘가에 함께 모여 비밀스럽게 두아의 기구하고 기구했던 이야기를 보는 듯해, 극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들어 간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음악의 사용이다. 물론, 음악이 상황에 맞게 전개되는 경우도 있으나, 상황과 완전히 반대되는 성격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태평소는 두아가 비극적인 상황에 부닥쳤을 때 단독 멜로디를 가져가며 화려하게 연주된다. 태평소가 대체로 종묘 제례악이나 대취타에 주로 편성되고, 농악에서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상기해 봤을 때, 이 지점은 무척 흥미로운 지점이다. 두아가 가장 비극적일 때 신명 나게 울려 퍼지는 태평소 소리라니. 이러한 반어적 표현을 이용하여 두아가 마주한 처참한 현실은 더욱 강조된다.


이 외에도 본 작품에서는 반어법을 굉장히 자주 사용한다. 장려아 부자가 악독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익살스럽게 그려내고, 그들의 행동에 맞춰 연주되는 음악 또한 굉장히 신나며 빠른 장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사람이길 포기한 그들의 부도덕한 행동이 자행될수록 진행되는 음악은 굉장히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형성해 나간다. 또한, 5바탕가의 눈대목의 멜로디를 변형한다. 채 노파가 양계탕이 먹고 싶다고 하는 장면에서는 <흥보가>의 ‘음식타령’ 부분을, 부패한 관리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도창으로 <춘향가>의 ‘어사출두’를 변형하여 상황과는 대조적인 노래의 멜로디를 사용함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비극을 더욱 강화한다. 그러나 두천장이 감사로 고을에 부임하여 부르는 솔로곡의 경우 <적벽가>의 ‘조자룡 활 쏘는 대목’을 차용하여 비극적인 분위기를 전환하고, 두아의 누명이 풀리라는 것이 암시된다.


더불어 두아와 두천장이 함께 부르는 노래의 반복은 극 전체를 관통하며, 두아와 두천장의 가슴 아린 아픔을 극대화한다. “한밤, 두 밤, 세 밤, 네 밤, 다섯 밤, 여섯, 일곱, 여덟, 아홉, 단운이가 열 밤 세면 아버지 돌아오마”. 이 노래는 부녀가 이별할 때, 그리고 상봉할 때 각기 다른 멜로디로 전개되며, 두천장이 두아를 찾을 때, 두아가 두천장을 기다릴 때 끊임없이 반복됨으로써 죽기 전까지, 그리고 죽어서까지 아버지를 기다리는 두아의 애절함과 딸을 찾고자 사방팔방을 찾아다니는 두천장의 간곡함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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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극은 공동체 예술로서, 수용자 중심의 연극이다. 그렇다면, 소리극 <두아 : 유월의 눈>은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으며, 관객은 어떤 것을 느꼈는가? 그리고 중국의 고전 작품이 지금 한국 사회라는 동시대성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이며, 이 이야기가 지금 관객 앞에서 펼쳐져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창작 집단 타루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이지만 여전히 현 사회에서는 무고한 옥살이의 사연이 전해진다. 진범을 벌하고 억울한 혼을 달래주는 두아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도 억울한 죄를 덮어쓴 이들의 위로가 되어주고자 한다고 말이다. 본 작품은 이렇게 사필귀정(事必歸正)을 말하면서, 부조리한 사회처럼 보이나 언젠가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되찾을 것임을 말해주며 작품의 중심 줄거리는 두아의 가슴 시린 이야기였으나 처음 극을 유쾌하게 시작했던 것처럼 마지막 또한 유쾌하게 끝맺는다.

 

 

참조

남기성, “‘마당’, 그리고 ‘마당’예술로서의 마당극”, 미추홀시민아카이브, 2022.01.27.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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