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우연한 선택

오늘 당신이 이 글을 읽게 된 이유.
글 입력 2024.03.3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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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의 쓰임


 

[크기변환]100.jpg

 

 

작년 여름이었습니다. 회현에 있는 피크닉이라는 전시장에서 [100: 백 명의 자기소개서]라는 전시를 봤어요. 100명의 사람들이 ‘나’에 대한 관찰과 서술을 글과 사진으로 표현한 전시였습니다. 길지 않은 글에서는 사전 정보를 얻고, 사진 앞에서는 그 사람의 문장들을 생각하며 오래 바라봤습니다.


전시의 소재가 ‘자기소개’라니,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그 새로움이 일종의 환기로 다가왔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당시에 면접관으로서 자기소개서를 많이 읽고 있었거든요. 같은 규격의 지원서 양식에 빼곡히 담긴 이력 사항들… 첨부된 사진으로는 지원자의 분위기만 어렴풋이 느끼고 간절한 열정이 묻어나는 문장들에 집중했습니다.

 

두 ‘자기소개’는 비슷한 듯 매우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지원서와 전시라는 장르 차이 때문이었을까요? 소재는 비슷했음에도 둘을 다루는 저의 자세는 사뭇 달랐습니다. 자기소개서의 글에서는 지원자가 어떤 사람인지 찾으려 노력했다면, 전시에서의 자기소개는 타인의 이야기에 비추어 저 자신을 찾으려 했습니다. 이렇듯 자기소개라는 분야 안에서 각 콘텐츠가 가지는 의미가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러다보니 [Project 당신]을 쓰기에 앞서 이번 자기소개를 통해서는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한정된 이 짧은 글에서 저의 어떤 조각을 내어드려야 이 만남이 무언가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이번 글은, ‘우연’과 ‘선택’의 키워드에 대해 여러분이 생각해보시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지원서를 검토하는 마음이 아닌, 전시를 보기 위해 기대감을 가지고 온 것도 아닌 조금은 일상적이고 가벼운 마음으로 여러분들이 우연히 글을 맞닥뜨렸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마주친 김에 - 우연을 빌려 - 여러분들에게 전해드리고 싶은 저라는 사람의 가장 큰 축을 이루게 된 두 단어를 건네 드릴게요.

 

 

 

우연하게, 애정하는 선택


 

재수를 끝내고 대학 지원을 고민하는 시기였습니다. 1년 전의 성적을 생각하면 성공적인 결과였지만 원하는 모든 과를 다 지원할 수 있을 만큼의 성과는 아니었습니다. 목표 학교를 택하는 대신, 과는 다소 저에게 생소한 분야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불어불문학과 – 11살 때 갑자기 발음이 멋있어 보여 왕초보 프랑스어 교재를 산 것 말고는 20몇 년의 인생과 프랑스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접점을 찾기 어려운 그런 과였습니다.


입학 뒤엔 새로운 사람들도 잔뜩 만나고 즐거운 시간도 보내며 느껴보지 못했던 자극들을 만끽했습니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까지 말이죠. 알아듣기 어려운 언어로 수업을 듣고 내용을 이해하자니 힘에 부쳤습니다. 이 과에 내가 있어도 될지 자신을 의심하며 일종의 무력감마저 느꼈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결과에 방황하는 그 상황. 과거를 부정하고 싶은 기분이 가장 최악이었습니다. 과에 애정을 간절히 붙이고 싶었습니다. 붙여야만 내가 정당화되고 그간의 노력이 가치있어질 것 같았습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중 과 내에서 프랑스 문화예술을 공부하는 소모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공고를 보고 자신에게 하는 화풀이처럼 약간은 충동적으로, 또 우연하게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들어간 소모임에서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짧은 책을 통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내용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 

자신이 선택의 기준이 되어 자기 존재의 책임자가 되는 것이다. 

 

- 인간은 항상 선택에 직면하며, 

이러한 자유로운 선택에는 항상 책임이 따르게 된다. 

 

- 이를 책임지는 과정을 통해 

주체적인 인간이 되고 휴머니즘적 의미를 찾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저의 상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선택에 떳떳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전 어쩌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저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미래의 저 자신이라는, 너무 명료해서 어쩌면 외로운 답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때까지 수많은 선택을 통해 ‘김수진’이라는 단 하나의 사람을 만들어낸 저 자신을 외롭게 응원해주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우연히 만난 소모임 공고를 스쳐 지나가지 않은 제 선택에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어려워하던 불문학이 저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든거니까요.


우연이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새로운 상상력을 키워내서인지, 그 이후로 저에게 다가오는 작은 우연들을 놓치지 않는 힘이 생겼습니다. 우연히 본 문화마케팅 학회 공고를 보고 지원하기. 애정 하는 문화와 마케팅, 두 분야를 모두 공부해보는 경험을 하기. 이 단체에 더 몸담고 싶다는 마음에 운영진으로까지 남기. 지원 당시에는 생각지 못했던 값진 경험들과 성장을 하기.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으로 얻을 수 있던 것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전시를 너무 좋아해 전시기획 수업을 듣고, 직접 전시에 작품을 출품하고, 전시를 열어보는 것이 버킷 중 하나였던 제가 학회를 통해 전시기획 프로젝트에 참여해보기도 했습니다. 그 순간은 ‘우연’하게 한 ‘선택’들이 두텁게 쌓여 가능했다고 생각해, 다시 저의 원점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담았었습니다. 어떤 선택이건 잘못된 것은 없으니,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즐거워지자는 주제로, <갈림길 앞에서 춤을 추다>라는 전시를 올렸습니다.

 

 

[크기변환]갈앞.jpg

 

 

 

앞으로도 불확실하겠습니다


 

잠시 사르트르로 다시 돌아와서,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인간 자신을 되찾아야 하며,

또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인간을 인간 자신으로부터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선택을 하는 것이 자신의 구원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을 즐겁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우연과 선택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내게 해줄지 과거의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과거의 저에게 미래였던 현재의 저도 앞으로 제가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지 아직 모릅니다. 그러나 새내기 시절의 제가 과거를 자책하기를, 미래를 걱정하기를 멈추고 현재를 살아내자 더 많은 것들이 보였다고 느낍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은 불확실한 미래가 두렵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간의 선택들을 돌아봅니다. 그럼 지난 선택들이 다시 답해옵니다; 지금까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지냈으니, 사실 돌아보면 항상 행복했던 거였다고.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불확실하게, 우연한 선택들을 계속하면서 살렵니다. 여러분도 우연이 줄 수 있는 행복을 선택해보는 것 어떠세요?

 

 

 

김수진 에디터 태그.jpg

 

 

[김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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