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20년 만에 돌아왔다. 언론지 기자 생활을 한 앤디가 패션 매거진 ‘런웨이’ 기획 에디터로 복귀한다니. 악마 같은 편집장 미란다는 돌아온 앤디를 얼마나 반겨줄지, 런웨이 식구들은 어떻게 변했을지 향수에 젖어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영화 속 런웨이가 겪는 어려움을 나 역시 겪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차 기자 앤디는 저널리즘 상을 받으며 능력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 영광의 순간, 앤디를 포함한 탐사보도 전문지 기자들은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는다.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 앤디에게 런웨이의 기획 에디터가 되어달라는 제안이 들어온다. 런웨이가 노동착취 브랜드를 검증하지 않고 홍보 기사를 실었다는 이유로 비난받자, 모기업 회장이 신뢰 회복을 위해 앤디를 구원투수로 고용한 것이다.
독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앤디가 쓴 첫 번째 칼럼은 진정성이 느껴진다며 언론계의 반향을 얻지만, 독자의 관심을 얻지는 못한다. 이후 써내는 칼럼들도 조회수가 처참하다. 앤디의 글은 런웨이의 결에 맞지 않고, 의미는 있으나 흥미롭지는 않은 글이다.
앤디는 좋은 기사를 쓰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그제야 깨닫는다. 잡지를 펴내기 위해서는 광고주가 있어야 하고, 광고주는 기사의 질보다 조회수와 좋아요를 바랄 뿐이다. 어떤 기사를 써야 저널리스트로서의 신념을 지키면서도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까.
앤디는 IT 기업 회장과의 이혼으로 거액의 위자료를 받으며 유명해진 ‘사샤’의 단독 인터뷰를 따내며 인정받는다. 하지만 런웨이의 모기업 회장이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그 아들이 그룹을 물려받으며 또 한 번 구조조정 위기에 놓인다.
새로 취임한 회장은 런웨이가 지켜온 가치와 명성에 관심이 없다. 그의 눈에 런웨이는 매출 규모가 작은 골칫덩어리고, 팔아치워야 할 과거의 산물일 뿐이다.
“이젠 아무도 종이 잡지를 안 사.
디지털, 다운로드, 스트리밍 시대지.”
패션 매거진을 마지막으로 샀던 게 언제였던가. 좋은 기사가 실리는 패션지를 다달이 사 모았고, 마음에 드는 부록이 나올 때는 몇 권 더 사기도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됐다. 지면 기사보다 유튜브 채널의 패션 영상을 더 자주 접하고 있다.
문예지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1970년부터 발간된 월간지 ‘샘터’는 한국의 최장수 잡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2026년 1월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을 선언했다. ‘문학사상’도 2024년부터 휴간해, ‘이상문학상’의 운영권마저 매각하기도 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한 번의 쓰나미를 겪은 우리는 AI라는 또 한 번의 쓰나미를 맞이했다. 이제 ‘지면’에 글을 쓰는 기자와 에디터들은 SNS 카드 뉴스와 유튜브 영상뿐 아니라 AI로 쓴 글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런웨이를 인수하려는 IT 기업 회장을 찾아간 미란다는 패션에 대한 견해를 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에는 어떠한 애정도 방향성도 없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서 저 같은 사람도 따라가기 벅찬걸요. 전통은 뭐.. 아마도 빠른 시일 내에 모델도 현장 무대도 필요 없게 될 거예요. 모델도 디자이너도 다 AI로 하겠죠.”
“그렇게 되더라도 어떤 건 남겠죠. 아름다움과 예술성을 향한 헌신이라든가. 인간이 이뤄낸 위대한 성취라든가.”
“미래는 우릴 향해 돌진하고 있어요. 폼페이를 향해 돌진한 용암처럼. 그 흐름을 받아들이는 게 우리가 할 일이죠. 언젠가 인류가 집어삼켜지더라도요. 그게 자연의 섭리일지도 모르죠.”
미란다는 그의 말에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한다.
런웨이는 그 가치를 알아주는 어느 돈 많은 독자(IT 기업 회장과 이혼한 샤샤)가 그룹을 인수하면서 구조조정의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렇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런웨이를 사서 읽지 않고, 인스타 피드에 뜬 사진과 칼럼을 휙휙 넘겨보기만 할 것이다.
영화는 이 거대한 흐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명쾌한 답을 주지 않는다. 미란다는 런웨이가 얻은 행운을 ‘가라앉는 타이타닉’ 옆에 하나 남은 판자에 매달린 것이라고 비유했다. 미란다와 앤디는 침몰해 가는 패션 매거진 업계에서 신념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최후의 순간까지 발버둥 칠 것이다. 지금의 일을 사랑한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영화를 보고 이런 긴 글을 쓰는 일에 가치가 있을까.
나 역시도 영화가 재밌는지 감상이 궁금할 땐 영상부터 찾아본다. 단군, 진돌, 허간민(허키 간지 김민경) 같은 영화를 비평하는 게 업이 아닌 사람들의 반응이 공감 가고 더 재밌다. 영화의 작품성을 진지하게 평하고 오랜 세월 아카이빙한 정보를 쏟아내는 이동진 평론가의 비평도 글이 아닌 영상으로 접한다.
지면은 예전의 힘을 잃었다. 사람들은 긴 글을 읽기보다 사진과 영상을 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책을 사는 사람도 줄었고, 기사를 읽는 사람도 줄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글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이 2.4권이라고 하지만, 도서전의 입장권이 매진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이 지금도 긴 글을 읽고 있을까. 어떤 글이 독자에게 의미 있을까.
긴 글을 쓰는 사람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쓰고 싶다. 좋은 것에 더 많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며 좋은 걸 좋다고 쓰고 싶다. 영화 속 런웨이를 지켜준 돈 많은 독자는 아니어도, 응원의 글을 쓰는 독자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얼마나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2006년의 추억을 잡지가 소멸하고 있는 2026년으로 불러와, 사라져 가는 것의 가치를 생각해보게 했기에 좋은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