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변증법이 아닌 구불거리고 뻗어가는 목소리로 - 도서 '재일 디아스포라의 목소리'

글 입력 2024.04.0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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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가 가장 먼저 마주해야 할 목소리


 

90년대생의 시선에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단조롭다. 한국인이 단일한 정체성으로 느껴진다는 뜻이다.

 

다문화 가정, 재일, 이민자의 이야기는 '한국인'의 이야기보다는, '한국적 배경을 가진 외국인' 의 이야기로 느껴지는 일이 많다. 반대로 이는 생생한 이야기를 전할 디아스포라의 목소리를 접하거나 사고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일상생활에서 내가 접한 한국인의 다중 정체성이란, 철저히 플랫폼화된 시선인 경우가 많다. 외국에서 상을 받고 플랫폼에서 상영되는 이주민들의 이야기는, 미국의 시점에서 통합되어가는 하나의 목소리로 비친다.

 

내가 이 책을 든 이유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근 10년간, 한국에서는 다양성 문제에 대한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나는 내심 그러한 관심이 이끌어내는 문제가 정말로 진실을 담아내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 문제들은 정말로 이 땅의 역사와 다양성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는가? 우리는 경직되어 보일 정도로 날카롭게 젠더, 생명, 기회, 차별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이 땅에서 다뤄야 할 문제들을 마주하고 있는가?

 

청년으로서 마주한 다양성 문제는 상당히 세계적이었다. 세계적이라는 것은, 이 땅의 역사를 치밀하게 파고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이 100년도 안되는 시간 동안 이 땅에는 수많은 국제, 국내 정치의 충돌로 수많은 사람의 피가 흩뿌려졌다. 그 시대에 뿌리뽑히듯 모국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 아직도 살아있다. 아직 남북한 문제, 일본과의 불편한 역사 문제, 해소되지 않은 이데올로기의 상처들이 남아있다.

 

빠른 기술발달과 끝없이 상영되는 정보와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현대인은 땅을 바라보기보다 하늘을 바라본다. 과거를 보는 대신 미래를 바라본다. 하지만 딛고 있는 땅을 분명히 인지하지 않고선 땅과 하늘의 거리를 계산할 수 없다. 자신의 무게를 재기 위해선 땅이 끌어당기는 중력을 인지해야 한다.

 

나는 가끔, 한반도 위에 선 우리가 모두 집단적인 해리 증상을 겪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회복해야 할 민족성과 치료해야 할 이데올로기의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잊어버린 것처럼 행동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우리의 죄가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세대가 거듭한 오늘날 그 상흔은 흐릿해졌지만, 이 땅에서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생각하고 의견을 내놓는 것을 엄격하게 탄압하였다.

 

하지만 나는 한국의 시민주의가 회복되기 위해서 우리가 외면해왔던 문제를 마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잃어버린 기억과 상처를 다시 돌아보고, 잊어버린 목소리를 회복하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이제 이데올로기의 충돌로부터 죽음과 고통의 위협을 받지 않는다. 그러한 기억이 없는 청년세대가 새로운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회복되고 나서야 이 땅의 인권이 좀 더 생생한 목소리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2. 변증법이 아닌 구불거리고 뻗어 가는 목소리로


 

오늘 소개할 책, <대담집 : 재일 디아스포라의 목소리>은 잃어버린 목소리를 회복하는 소중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란, 특정 민족이 자의적이나 타의적으로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집단을 형성하는 것, 또는 그러한 집단을 의미한다. 재일 디아스포라란, 일제의 위협 속에서 다중 정체성을 가져야 했던 재일 한국인들을 의미한다. 대담집이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플랫폼화 되지 않은, 픽션화되지 않은,살아있는 '디아스포라의 목소리'다.

 

나는 이 책의 표지에 집중해주길 바란다. 길게 뻗은 직선들 사이에 요동치는 선. 한국인이라고도, 일본이라고도 명확히 규정짓기 어려운 다중 정체성을 보여준다. 대담집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들의 정체성은 한국인이라 하기도, 일본이라 하기도, 조선이라 하기도 묘한 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일본, 조선이라는 다양한 민족성이 그들 내에서 체화되어있고, 어떤 것이 좋고 나쁘고, 편하고 불편하고를 떠나 다양한 파편으로 공존한다.

 

이들의 존재가 부조화를 이끌어내는가? 표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아니다. 이들은 새로운 목소리로서 사회의 변화를 촉구한다. 다양한 파편으로 존재하는 정체성은 그들 안에서 'n 세대 디아스포라'라는 넓은 스펙트럼 안에서 그들 나름대로 통합되어있다. 다른 사람들이 설 수 없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그들은 새로운 위치에서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일본의 바깥에서 일본의 안 이야기를 할 수 있고, 한국의 바깥에서 한국 안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재일한국인들은 적극적이거나 소극적인 방식, 자의와 타의에 의해서 어떤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강요받았다. 소련과 미국 사이에서, 보수정권의 독재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숨겨야 했던 사람들처럼 디아스포라의 목소리는 쉽게 억압된다. 반대로 이들의 목소리를 인정하는 것은 독재와 식민으로 고통받은 역사를 치유하는 것이다.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있다. 1세대 디아스포라로 김석범이 소개된다. 그는 제주도 4.3 사건으로 충격을 받고 일본어로 그와 관련된 보일 정도로 쓴 재일조선인이다. 대담집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의 실증적인 경험으로 인해 민족성이 강하여 상대적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강하게 느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다른 면담자를 통해 언급되기도 하는데, 1세대 디아스포라들에 의사소통 도구인 언어조차도 어떤 민족을 대변하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이 흥미롭다. 김석범이 소개한 다른 작가는 일본어 자체를 특이하게 구사함으로써 일본에 대한 저항의식을 표현했다는 부분에서, 이들에게 일본어란 완전히 스며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어를 통해' 한국에서는 아직도 자세히 교육되지 않은 '제주 4·3사태'를 쓴 서사시를 쓴 것은 주목할만하다. 한국인의 민족성을 가지고 있지만, 일본에서 문학상을 탈 정도로 일본 소설의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문인 협회의 입회 제안을 묘하게 거부하는 부분도 그의 위치의 독특성을 보여준다. 그의 소설은 한국 소설이기도 하지만 일본 소설이기도 하다-문학은 국경을 넘는다는 말처럼 말이다-. 마치 그가 두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묘한 부동의 자세에서 복잡한 정체성을 가진 한 인간인 자신을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어떤 울림을 준다.

 

2세대와 3세대부터는 1세대와 약간 다른 정체성을 지닌다. 2세대 이후부터는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3세대에 가서는 한국어는 제2외국어로써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한국인의 정체성은 일본이라는 맥락 안에서 약간 불편하게 받아들여진다. 기반 없이 일본에 넘어왔던 수많은 재일 한국인들의 고난과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인터뷰가 진행되던 2014년까지도 재일 한국인에 대한 헤이트스피치는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개인적으로 서경식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사실 다른 인터뷰에서도 묘하게 느낀 부분이기도 하다-명확한 틀로 정의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일본에 남아 있는 재일 한국인에 대한 미묘한 차별과 다중 정체성이 수반하는 다양한 감정적 반응이 이끌어내는 혼란에 대한 반응일 것이다. 대담집은 기본적으로 각 세대의 특성을 가설처럼 정의하고 인터뷰에 임했는데, 서경식은 그러한 부분에서 명확하게 정의됨을 거부하였다.

 

개인적으로는 대담집이 끌고 간 세대적 특성에 대해 대체로 공감하지만-인터뷰에서 드러나는 인터뷰어의 반응을 볼 때, 그것은 폭력적인 정의가 아니라, 생생한 기록을 위한 기획의 시작점이었을 것이다- , 디아스포라의 목소리는 그들의 불편함을 예민하고 주의 깊게 들음으로써 진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본다. 이 부분에서는 3세대 이민자 차별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인터뷰 내용을 일부 인용하고자 한다. 나는 아래의 이야기가, 디아스포라의 목소리가 왜 살아나야 하는지, 이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다뤄줘야 하는지 잘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날 수업에서 학생에게 'Korean American'과 'Korean Japanese'라는 두 개의 개념 비교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재일 조선인의 법적 지위에 대해 설명하면서 나 자신은 'Korean Japanese'가 아니라 'Korean'인 'Japanese Speaker'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모국어가 일본어이니 '문화적'으로 '일본인'과 다르지 않지 않으냐고 묻는 학생에게, 확실히 나는 '일본어인'이긴 하지만 '모국어인 일본어로 말하니 편하다고 느끼는 것에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이 내가 존재하는 방식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 '불편한 마음'이라는 차별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나는 '문화적'으로 완벽한 '일본인'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 감각을 항상 소중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 아이덴티티의 근간에 관련된 부분으로, 열정이 담긴 이야기였기 떄문일 것이다. 수업이 끝나자 금세 세 명 정도의 학생이 다가와 나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니콜라라는 프랑스 출신 백인 유학생은 '프랑스에도 동화되지 않은 이민이 많이 있는데, 그 것이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폭동도 있었고.'

 

이민에 대한 그의 전형적인 백인중심주의적 시선에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지만, 어떤 의미에서 나라는 개인의 내면을 토로한 것에 불과한 이야기를 듣고 진지하게 반응해 준 것에 솔직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또 나의 개인적인 차별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문맥에서, 프랑스 이민 이야기와 결부시켜 생각해 준 것도 기뻤다. 나와 정반대의 시각이긴 했지만, 적어도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민자와 같은 다뤄야 할 메이저리티의 사회에 '동화'되어야 하고, 나처럼 출신에 얽매여 '힘들게' 살 필요가 다뤄야 할 물었다. 그가 프랑스의 식민주의 역사와 이민 '문제'의 관계에 대해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프랑스사회에 뿌리 깊게 만연해 있는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저 소수에게 '동화'를 강요하는 폭력성에 대해, 특히 그것이 제국주의시대의 논리의 연장에 있을 때, '동화'를 거부하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 역사의 부정과 마주하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재일 조선인 역사의 관점에서 조금이라도 전하고 싶었다.

 

- 최덕효 인터뷰 일부발췌

 

 

 

3. 나가며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대상들은 한정되어 있다. 이들은 성공한 이들이고, 남성들이고, 지적인 인물들이다. 다뤄야 할 모두 학술적 성공을 거둔 사람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전한다. 그 누구보다 재일 한국인들의 목소리를 많이 접한 사람도 있고, 그들 자체가 재일 한국인이긴 하지만, 모든 재일의 목소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깔끔하고 잘 제련된 언어 -이것이 대담집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신기한 일이다- 는 새로운 생각을 기록하고 전하는 시작점이 되기에 충분하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이 땅의 역사와 상처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였으며, 역사의 정체성을 잊어왔는지 깨달았다. 재일 디아스포라를 중심으로 이야기했지만, 그들이나 나나 우리는 모두 진정으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대담집에 등장한 인물들이 많은 에너지를 쏟아 긴 대서사시를 쓰고, 재일 한국인을 찾고, 멀어 보이는 '조국' 한국을 찾아온 이유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일 것이다. 개인의 정신세계는 개인의 세계에 묶여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땅에 놓인 역사와 문화에 끝없이 영향받는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정말로 찾기 위해서는 그 역사와 문화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재일 디아스포라의 목소리는, 분명 '우리'가, 아니 이 글을 쓰고 읽는 수많은 한국인의 '나 자신'이 잃어버린 목소리다. 그들의 목소리는 한 번도 작거나 연약했던 적이 없다.

 

폭력적이고 명확한 정의를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받아들일 필요 없다. 최소한 아직은 독서모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총칼을 들이대는 야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변증법이 아닌, 구불거리고 뻗어 가는 그 매력적인 선을 따라 역사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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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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