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붙잡지 않아도 녹슬지 않을 우리 [영화]

글 입력 2024.04.0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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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 you alone?


 

1980년대 뉴욕, 혼자 사는 도그는 매일 맥앤치즈를 먹고 2인용 게임을 혼자서 한다. 문득 보이는 TV 검은 화면에 비친 자기 모습이 싫다. 반려로봇과의 시작은 외로움이었다. 말동무가 필요했는데 같이 있다 보니 웃음이 나온다. 같이 뉴욕 거리를 산책하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수영을 즐기며 행복했던 순간은 잠시, 물에 들어간 로봇은 고장 났고 마침 다음 날은 해수욕장 폐장일이었다. 도그는 다음 해 여름까지 로봇을 찾아오지 못하게 되며 그들은 멀어진다. 로봇과 도그는 각자 서로를 그리워하는 감정을 가진 채 다른 인연들을 만나며 영화는 진행된다. 그들이 행복을 만드는 순간은 영화에서 30분 채 되지 않지만 남은 1시간은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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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드림(2024, 파블로 베르헤르)는 사라 바론의 동명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무성 영화라는 특이점을 활용하여 이미지에 집중하게 한다. 간결한 그림체로 눈알이 작아지거나 꼬리를 흔드는 단순한 움직임을 통해 감정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따뜻한 공감과 위로를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어떤 대상을 만나고 자연스레 멀어지고 다른 대상을 만나고 그 대상과도 멀어지고 어쩌다 다시 만나거나 스쳐 지나가는 우리네 삶을 <로봇과 개 이야기>에 담아 관객에게 소중한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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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ot dreams - Dream robot


 

로봇 드림은 인간과 더불어 사는 반려동물과 반려로봇이 만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영화 속 도그의 입장은 현실 속 인간의 입장이고 로봇은 현실 속 개의 입장으로 볼 수 있다. 주인으로서의 인간을 반려 개가 표현하며 관객에게 인간이 맺는 관계들을 곰곰이 반추하게 만든다. 도그가 처음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반려로봇을 샀을 때, [구매자-물건],[주인-로봇]의 관계부터 시작한다. 한 대상의 필요로 이루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는 상하관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그와 로봇이 멀어지면서 각자 이별을 대하는 방식은 상상씬과 더해져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하염없이 도그를 기다리는 로봇은 녹이 슬고 다리가 잘려서 오직 상상 속에서만 몸이 움직인다. 꿈에서 두 발로 뛰어 찾아간 곳은 도그의 집이다. 벨을 눌러도 도그가 나오지 않자 엇갈릴 수도 있으니까, 해수욕장에서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돌아간다. 추운 겨울이 되어 몸에 눈이 쌓이고 얼어서 꼼짝없는 신세가 되었을 때도 로봇은 도그에 대한 꿈을 꾸며 봄이 오길 기다린다. 도그에 대한 상상의 끝은 항상 자신이 다른 로봇으로 대체되어 버림받는 결말이다. 도그 자체가 Robot Dream이기 때문에 그에게 원하는 것은 없다. 바닷가에서 로봇은 돼지, 새, 고물상을 차례로 만나는데 상황이 악화되기도, 새들을 보듬어주기도, 꼼짝 없이 끌려가기도 한다. 다행히 착한 너구리를 만나 다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며 따뜻한 집으로 갈 수 있게 된다. 

 

도그는 해수욕장 개장 날 6월 1일이 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다른 관계들을 맺으려고 한다. 도그가 로봇을 산 목적은 외로움이었기 때문에 다시 찾아오는 외로움을 혼자 감당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취미생활을 하며 오리를 만나고 자신이 만든 눈사람과 시간을 보낸다. 로봇에게 다른 주인이 생겼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채 Dream robot이었던 로봇을 그리워하고 있다. 결국 도그는 새로운 반려로봇 틴을 구매하며 외로움을 달랜다.

   

[구매자-물건] 관계에서 점차 소울메이트가 되고 헤어진 이후에도 그들은 상대를 대하는 시선은 상하관계를 이루고 있다. 하염없이 도그를 기다리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로봇을 지켜보니 도그가 외로움을 무기로 로봇의 감정을 이기적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도그는 도그 나름대로 관계에 최선을 다했고 로봇을 잊지 않고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도그와 로봇은 관계적 위치는 다르겠지만 각자의 입장에서 표현할 수 있는 마음의 크기는 동등한 위치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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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you remember?


 

그토록 그리워하던 대상을 우연히 창문 아래에서 마주했을 때, 이 장면만 수백 번 상상했었을 텐데… 보통의 영화에서는 로봇의 이름 변화로 관계의 변화를 알렸을 것이지만 무성영화 로봇 드림은 노래로 변화를 알린다. 개의 최애 곡이었던 September이 로봇의 최애곡이 되어 멀리서 함께 춤을 춘다. 노래 가사 ‘Do you remember’이 들린다. 그들의 표정과 노래 가사가 만나 대사가 되어 로봇과 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기억나? 우리 그때 좋았지? 롤러스케이트 타고 춤추던 그때가 정말 그리웠는데… 이제 시간이 흘러 지금 내 옆에는 너만큼 소중한 대상이 있어.

 

로봇은 그리워하던 도그를 붙잡지 않고 지금 함께하는 너구리와 춤을 추고 개 또한 지금 함께하는 반려로봇과 춤을 춘다. 로봇은 개로 인해 사랑할 줄 아는 로봇이 되었기에 너구리를 만났다는 것을 알지만 씁쓸하고 마음이 아프다. 뛰어가 붙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둘은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로봇이 잠깐 상상했던 대로 순간의 감정에 이끌려 도그를 붙잡았다면 불편한 4자 대면이 벌어질 것이고 각자 현재의 상대를 버리고 서로에게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밥 한 끼 하지 않았을까?

 

사실 온 마음을 다했던 관계는 붙잡지 않아도 녹슬지 않는 것이었다. 자신을 둘러싼 관계들은 여러 대상을 통해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인지 정립하는 과정이고 그중 유독 소중한 대상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 대상이 계속 바뀔지라도 각각은 녹슬지 않는 요소로 나를 구성할 것이다. 이런 시선으로 관계를 바라보면 지나간 관계에 대해 미련보다 고마움이 커지게 된다. 그토록 애닳아 했던 대상을 만나더라도 눈앞에서 스쳐 지나갈 수 있고 미워했던 대상을 반갑게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 ‘우리’였던 순간은 로봇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니 이제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가끔 September을 들으며 각자의 길을 멀리서 응원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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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 & Robot 


 

영화는 단순한 개와 로봇 캐릭터에서 나아가 자신을 둘러싼 소중한 관계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도그와 로봇을 주인과 반려동물, 연인관계, 친구관계,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람과 아끼는 물건, 비장애인과 장애인, 가족관계 등으로 대입해 보면 우리 일상의 관계들과 맞닿아 있다. 도그와 로봇 관계처럼 중요한 것은 그 관계를 어떻게 대하는가, 얼마나 마음을 다하는가이다.

  

* [주인과 애착 물건] - 주인과 아끼는 애착 물건과의 관계로 본다면 항상 내 옆에 있고 어딜 가든 지니고 다녀서 때도 많이 타 정이 들었을 것이다. 그 대상을 잃어버렸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고 같은 물건을 사더라도 그 느낌이 안 난다며 어떻게든 찾으려 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나중에는 비슷한 물건으로 다시 들고 다니게 되겠지만 그때의 느낌은 안 날 것이다.

 

* [주인과 반려동물] - 반려동물을 가르치고 산책하면서 정을 쌓다가 실수로 잃어버리게 되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주인은 분명 다시 찾으러 가겠다고 했는데 찾을 방법이 없다. 반려동물은 영문도 모른 채 혼자 남게 되어 하염없이 그 자리에서 주인을 기다린다. 주인에게 다시 찾아 갔을 때 다른 아끼는 대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영화 속 로봇처럼 그리워할 것이다.

 

* [연인관계] - 그들의 관계는 첫사랑처럼 짧고 강렬했던 추억으로 보이기도 한다. 추억은 그리움이 되어 다른 상대들을 만날 때도 문득 첫사랑이 생각나는 듯하다. 시간이 흘러 어엿하게 자란 서로를 마주했을 때 서로에게 다른 상대가 있음을 알아차리는 장면도 우정보다는 사랑에 가깝다.

 

* [친구관계] - 어릴 적 죽고 못 살았던 친구가 떠오르기도 한다.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둘만 붙어서 히히덕 웃고 떠들었던 기억이 있다. 어느덧 성인이 되어 그때의 추억은 가물가물하지만, 한때 내 전부였다는 기억은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 [비장애인과 장애인] - 수영하느라 몸에 물이 찬 로봇은 점점 녹이 슬고 다리 한쪽도 잘린 상태가 된다. 아마 6월 1일 개장 후에 정상적으로 다시 그들이 재회했다면 다리가 잘린 채로 조우했을 것이다. 항상 개에게 맞춰주던 로봇이었는데 그때부터는 로봇에게 맞추는 개로 (비장애와 장애) 관계가 변화했을 것이다. 아마 개는 다리가 잘린 로봇을 버리지 않고 잘 데려갔을 테지만 로봇의 입장에서는 이미 한 번 버림받은 상황이라 부정적인 상상만 하는 행동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도그와 로봇에 대입되는 관계들은 각별히 아끼는 관계들이다. 소중했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 지금껏 떠오를 수 있는 것이다. 표면적인 관계적 위치(상하관계)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를 대했던 본인의 마음가짐이다. 계속 이어지는 관계, 끝나가는 관계 혹은 이미 끝나버린 관계 모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게 마음을 다한다면 상대를 생각했던 그 마음은 고이 간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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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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