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뭐랄까, 이 탐정물이 내 마음을 더 잘 설명하는 것 같아요 [예능/드라마]

엉망을 받아들이며
글 입력 2024.01.2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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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죽었다.

어떻게, 도대체 왜 죽었나.

누가 범인인가.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을 담은 탐정, 추리물은 보통 이런 걸 중심으로 전개된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중심으로 언제, 어디서 벌어졌나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왜, 그리고 누가 그랬는지까지 하나하나 추리해가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최근에 너무나 좋아하게 된 탐정물 드라마가 있다. 바로,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해>이다. 이 드라마는 시즌 1부터 3까지 발표되었고, 각 시즌마다 벌어진 살인 사건을 주인공 찰스, 올리버, 메이블이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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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즌의 살인 사건은 아파트 이웃들이 수상하다는 제목처럼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아코니아’ 안에서 벌어진다. 그래서 수시로 바뀌는 용의자들은 항상 주인공들과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심지어 아주 가깝기도 하다. 인적이 드문 시골이 아니라, 도시 중의 도시인 뉴욕의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는 점이 이 플롯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아파트에서 벌어진 사건을 풀어나가는 주인공들은 아코니아의 주민이다. 이들은 대부분의 탐정물에서 (또는 현실에서) 사건을 수사하는 전문 탐정이나 형사나 프로파일러가 아닌, 그렇다고 극 중에서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라던가 뭔가 의뭉스러움을 풍기는 어느 오래된 서점의 주인이라던가 이런 일에 재능을 보이는 천재 대학생도 아닌, 그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유명한 탐정 수사물 팟캐스트 프로그램에 빠져 사는 그냥 그런 사람들일 뿐이다.

 

이들은 아코니아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 그날, 그 사건이 일어나기 몇 분 전,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여느 잘 모르는 이웃일 뿐이었던 그들의 관계는 몇 분 뒤, 비상 사이렌이 울려 퍼진 탓에 잠시 아파트에서 나와 향한 근처 식당에서, 같은 팟캐스트의 팬이라는 걸 알게 된 후로 확 가까워진다. 그러다가 또 몇 분 뒤, 가까운 층에서 누군가가 죽는 사건이 벌어졌고, 그 사건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진실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그 진실을 함께 파헤치기로 하고, 동시에 함께 그들만의 팟캐스트를 시작하기로 한다. 이 아파트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 범죄 추리 탐정 팟캐스트 'Only Murders in the Building'. 그러면서 이들은 더 가까운 이웃이자 동료이자 친구가 된다.

 

팟캐스트는 이 시리즈의 전체적인 틀이기도 하다. 한 시즌마다 열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물들의 내레이션, 각 에피소드가 시작할 때 보이는 제목, 배경음악 등 마치 주인공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동시에 팟캐스트도, 심지어 살인 사건 수사에도 초보자인 주인공들과 함께 팟캐스트를 만들어나가는 것 같기도, 사건 수사를 함께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무엇보다도, 이 후더닛 플롯을 착실히 전개해 나가면서 사랑과 우정, 친구와 이웃과 가족, 일과 경력과 독립 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함과 따뜻함과 익살스러움이라는 톤을 유지하며 전개한다. 전개가 어렵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보면서 범인이 누구라고 확신할 수는 없는 잘 짜인 플롯과, 몇 번의 꼬임을 넣지만 그리 억지스럽지는 않은 매력. 그리고 익살스럽지만 진지할 때는 진지한 (하지만 여전히 익살스러운!)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면서, 따뜻한 위로와 재미있는 것들을 계속 던져준다.

 

그리고 내가 이 탐정물에 너무나도 애정을 갖게 된 건, 이 유별나고 개성 강한 인물들이 사실 내가, 그리고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민들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나는 이 드라마가 익숙한 내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하면서 위로를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마도 지금까지 다른 탐정물을 보면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다른 느낌이라는 건, 세 주인공이 각각 갖고 있는 걱정과 고민들이 지금의 나의 걱정과 고민들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이 세 주인공의 걱정과 고민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굳이 말하지 않는 비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시즌 1에서 사건의 전말이 하나하나 드러남과 동시에 이들의 이 비밀 또한 서서히 (올리버의 말에 따르면)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 소개된다. 이 비밀이란 건 사실, 이 사건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던가 하는 심각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절대 털어놓을 수도 없는 엄청난 비밀이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인물들이 1회에서 내레이션을 통해 말하듯이 굳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 것들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자신의 약점이거나, 아픈 과거이거나, 품고 있는 상처 같은 것들 말이다.

 

올리버는 예전엔 나름 괜찮았으나, 지금은 이렇다 할 경력이 없는 연극 연출가이다. 전작은 정말 제대로 망했고, 그래서 그 이후로는 연극 연출 기회가 오지 않고, 벌이가 없으니 점점 아파트 관리비도 제때 내지 못할 정도로 돈이 없다. 또, 그것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과도 약간 관계가 멀어지게 되어 마음이 불편하다.

 

찰스도 마찬가지로 한물갔다는 소리를 듣곤 하는 노년의 배우이다. 옛날에는 '브라조스'라는 형사 역으로 시리즈를 찍으며 사랑을 받았지만, 지금은 그 작품을 넘어서는 대표작 없이 과거의 영광을 시도 때도 없이 곱씹으며 산다. 그는 사랑이라는 감정도 두렵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며 살고 싶긴 하지만, 몇 년 전 겪은 이별의 상처 때문에 연애, 관계 유지, 데이트 같은 것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만 한다.

 

메이블은 이제는 학생이 아닌 스물아홉 살이지만, 아직 이렇다 할 직업도 없고 완전한 자신의 공간이 아닌 이모의 집에서 살고 있다. 물론 어서 취업도 해야 하고 살 곳을 구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지금까지 과거의 사건(시즌 1에서 다룬다)과 같은, 주변에서 자꾸 일어나는 살인 사건에만 묶여있는 것을 벗어나 '진짜 내 삶'을 살 수 있을지 여전히 고민이다.

 

이 비밀들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본인에게는 존재감이 큰 무언가이다. 당연히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지만 사실은 아예 낯선 사람인(아니, 사실 얼굴도 잘 모르는) 누군가에게는 물론이고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가까운 사람에게도 툭툭 털어놓기에는 조금 어색하고 곤란할 수 있는 것들.

 

인물들의 이 비밀들은 꽤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 가볍게 또는 무겁게 밝혀지지만, 함께 사건을 수사하며 팟캐스트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알아가기도 하면서 오히려 이들은 특별한 관계가 된다. 에피소드를 거듭해 가며 어느 정도 잘 해소되는 것들도 있고, 시즌 1부터 3까지도 계속 남아 인물들을 여전히 걱정하게 만드는 것들도 있지만, 특별한 관계로 만들어진 친구들 덕분에 주인공들은 걱정을 해소하거나 덜고, 주저하기보다는 행동하기를 택하게 되기도 한다.

 

팟캐스트라는 건 올리버에게는 마치 운명처럼 날아 들어와 남아도는 열정과 재능을 쏟아낼 수 있는 무대가 되었고, 찰스에게도 아직 여전히 건재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되었으며, 메이블에게는 과거의 사건을 잘 풀어서 벗어나는 것에 쓸 수 있을만한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이 셋 모두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준 팟캐스트는 이 특별한 관계도 만들 수 있게 해주었다. 마치 오랫동안 숨을 멈추고 있다가 다시 들이쉬고 내쉬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 같은, 그렇게 서로의 일상을 다시 깨워준 관계.

 

이 관계가 특별한 이유에는 같은 팟캐스트 프로그램의 팬이라는 것 덕분에 같은 테이블에 앉은 날 이후로, 살인 사건을 수사하며 그들만의 팟캐스트를 진행하게 되었다는 점도 있지만, 여기에 더해 이들이 나이와 성별을 넘어서서 친구가 되었다는 점이 크다. 

 

한물갔다는 소리를 들은 지 꽤 오래인 노년의 배우 찰스, 전작의 실패 이후로 이렇다 할 작품을 하지 못하고 있는 비슷한 나이의 올리버, 그리고 리모델링 중인 이모의 집에 잠깐 동안 살면서 자신의 집도 직업도 아직 만들지 못한 이십 대 후반의 메이블. 추리물 팟캐스트를 좋아하고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공통점만 보였던 이 이상한 조합의 사람들은 에피소드를 거듭해 갈수록 뭔가 공유하는 지점이 더 있고, 서로 에너지를 불어 넣어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세 주인공 모두 나와 공유하는 지점이 있고, 나에게도 에너지를 주었다.

 

시즌 1에서 이런 무대와 기회와 도구, 그리고 특별한 친구들을 만들게 된 이들은 시즌 2에서 (또) 벌어진 살인 사건까지 연달아 수사하면서 계속 열심히 팟캐스트를 진행한다. 그리고 시즌 3에서는 이 팟캐스트와 친구들 덕분에 삶에 활기를 느낄 수 있게 된 주인공들이 (또!) 벌어진 살인 사건까지 함께 하게 된다. 그리고 여전히 일, 사랑, 독립 등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며 성장해 나간다. 아마도 이들이 팟캐스트를 혼자 진행했다면, ‘엉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얻지는 못했을 것 같다. 

 

*

 

시즌 1과 2부터 시즌 3까지의 모든 에피소드를 여러 번 반복해서 보며 나는, 주인공들을 비롯해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보며 많이 웃기도 했지만 위로도 많이 받았다. 이십 대 후반인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 맞게 될 중년의, 노년의 나이 그 어느 때라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고민과 걱정이 있을 수 있고, 그게 수십 년 전과 똑같은 고민과 걱정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초보자로서 새로운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때가 올 수도 있고, ‘이래도 될까?’라는 생각을 할 것이며, 아마 엄청나게 서툴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 내가 하는 생각들과 평소에 겪는 감정들을 이 주인공들도 하고 있고 겪고 있는 걸 보면서, 나 같은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여러 번 느꼈다. 이들에게 남아있는 고민들도, 지금 나에게 있는 고민들도, 그리고 앞으로 내가 하게 될 고민들도 결국엔 왠지 잘 풀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풀리지 않고 있어도 괜찮을 것만 같은 위로 같은 것도. 우리 인간은 다 엉망일 때가 있으니까. 아니, 괜찮아 보일 때조차 사실 엉망인 것일 수도 있고, 엉망으로 보일 때는 사실 괜찮을 수도 있는 게 우리니까 말이다.

 

그리고 팟캐스트가 주인공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도 유일하게 활기를 주는 취미였으며, 만난 후에는 그걸 넘어선 존재가 되었다면, 과연 나의 ‘팟캐스트’는 무엇일지, 만약 있다면 내가 그걸로 뭔가를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시즌 3에서는 시즌 1과 2의 팟캐스트가 성공한 덕에 작품 연출의 기회를 얻은 올리버가 뮤지컬을 무대에 올린다. 그리고 올리버의 뮤지컬 '황홀한 죽음의 딸랑이’가, 정확히 말하면 뮤지컬의 넘버가 이 시즌의 전체 플롯을 보조한다. 물론 시즌 1과 2에도 사운드트랙이 있었지만, 시즌 3에서는 그 음악들이 조금 더 확장, 또는 변주 되어 뮤지컬 넘버가 된다. 이 뮤지컬의 내용은 이 시리즈의 내용, 즉 주인공들이 파헤치며 발견하게 되는 진실들과 (특히 후반부 에피소드에서) 똑같이 맞물리곤 하는데, 뮤지컬 장면들을 보던 인물들이 다른 장면에서 각각 이런 말을 한다.

 

찰스 : 이야, 대사가 현실과 찰떡이네.

디키 : 뭐랄까, 이 뮤지컬이 내 마음을 더 잘 설명하는 것 같아요.

 

나도 이 드라마를 보며 저런 생각을 했다. 나와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인물이 하는 대사인데도 나의 현실과 찰떡이고, 나의 현실과는 (다행히도) 상관이 없다고 느껴지는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플롯이 중심인 탐정물인데도 어쩌면 나의 마음을 잘 설명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그리고, 내가 이제는 대개 십 대와 이십 대로 대표되는 인생의 준비 또는 시작 단계 같은 시기를 지났다고 생각하면서 ‘왜 나는 아직도 이럴까’라며 주눅이 들곤 하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종종 그럴 테지만, 멋진 장비와 녹음 부스 없이 드레스룸 안에서 금방 반납해야 하는 마이크로 팟캐스트를 녹음하고 있어도 괜찮을 거라고, 오히려 재밌고 흥미롭고 멋진 것일 거라고 말이다.

 

시즌 4를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다. 시즌 3 마지막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을 보아하니, 세 주인공이 엉망진창인 것 같지만 나름 완벽히 진행되던 화려한 뮤지컬에서 다시 조금 더 소소한 일상으로 돌아와, 마음 아프게도 주인공들과 조금 더 가까웠던 인물의 살인 사건을 추리하게 될 듯하다. 

 

가까운 누군가가 또 죽임을 당했다.

그가 말하려던 건 무엇이었을까?

누가 범인일까?

 

 

[강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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