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음악보다 시간과 동행하다 -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

록의 황금기를 이끈 숨은 공신, 힙노시스
글 입력 2024.04.2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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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앨범이나 머릿속으로 하나 떠올려보자. 아른거리는 유일한 잔상은 앨범 커버. 앨범 커버는 음악이 담은 수십 분의 서사를 단 한 장으로 압축한다. 이것은 음악을 납작하게 재단하기보단 갓 태어난 세계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에 가깝다. 하나하나 다 들어보고 머릿속에서 매번 추상화를 그리고 있기엔 세상에 음악은 너무 많다. 우리는 시간이 없다. 사실 앨범커버는 청자를 위한 사려 깊은 배려일지도.


그리고 지금은 누구나 커버를 만들 수 있는 시대. 스포티파이에서 플레이리스트를 하나 만드니 대표 이미지도 고르라 한다. 즐겁지만 짧은 고뇌를 거친 한 장의 이미지는 조합된 음악들을 영원히 대변한다.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종종 누군가 만든 플레이리스트가 뜬다. 시적인 제목, 그리고 오묘한 썸네일과 함께. 클릭하기 전까진 어떤 음악이 있을지 알 수 없는 법. 그런데도 우리가 클릭하게 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단지 제목과 썸네일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 그렇다면 ‘좋은 느낌’은 어디서 올까?


우리보다 오래전에 먼저 고민하고 성취한 아티스트 집단이 있다. 바로 1968년 영국, 두 청년 스톰 소거슨과 오브리 파월이 세운 디자인 스튜디오 ‘힙노시스(Hipgnosis)’. 록 음악의 황금기이자 대중문화의 격변기였던 1970년대에 가장 파격적이고, 무모하며, 끝내주는 앨범 커버를 만들었던 그들의 작업 비하인드를 담은 영화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을 시사회를 통해 먼저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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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대한 유일한 단서, 앨범 커버


 

1970년대, 음악을 듣기 위해서 음악을 ‘구입’해야 했다. 듣고 싶다면 듣기 전에 구입해야 하는 아이러니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꽤나 고뇌에 빠졌을 것 같다.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단서는 앨범 커버. 음악의 ‘장르’가 어떤 음악인지 일차적으로 알려주는 지시적인 성격을 띠듯이, 커버는 어떤 앨범인지 알려주는 직관적인 단서가 된다.

 

"1970년대에는 앨범이 천만 장씩 팔렸어요. 지금이야 스포티파이에서 가면 30억 명이 테일러 스위프트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시장이지만 대중들은 그녀를 앨범 커버에서 보는 게 아니라 그녀의 음악을 들을 뿐이죠. 반면 70년대에는 대중들이 앨범 커버의 사진을 봤고 그게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이었어요." - 오브리 파월, 힙노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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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노시스는 앨범 커버를 제작했지만 음악이나 밴드를 위해 디자인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주어진 정사각형 캔버스 위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을 했다. 그건 하나의 예술적, 그리고 상업적 실험이기도 했다. 오브리 파월은 영감이 가사에서 나오기도, 밴드 이미지에서 나오기도, 음악 자체에서 나오기도, 혹은 때로는 전혀 무관한 아이디어로 만들기도 했다고 회상한다.

 

핑크 플로이드의 ‘아톰 하트 마더(Atom Heart Mother)’ 커버는 아무 의미 없는 이미지로 채우겠다면서 런던 근교의 목장에서 젖소의 사진을 찍어 넣었다. ‘왜 그랬어?’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왜 안 돼?’라며 맞받아쳤다. 록이 황금기를 누리던 1970년대에 예술과 자본이 만나는 지점에서 힙노시스의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커버는 음악과 시너지를 주고받는 동일 선상의 예술이 된다. LP는 가난한 이의 미술 소장품이라는, 영화 속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가 인용한 문장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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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에는 디테일이 남는다


 

오브리 파월은 한국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1970년대와 오늘날의 창작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시간의 유무다. 그때는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어떤 게 가장 좋은 건지 따져보고 결정을 내릴 만한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요즘엔 그럴 시간이 없다. 작품을 제대로 만들 시간,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을’ 사진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것이다.


시간과 동행하는 과정에서 창작자와 작품 간에 감정적 관여와 유대관계가 생겨난다. 그런 건 보는 이들에게도 하여금 ‘좋은 것 같다’는 인상을 남기고, 빠르게 소비하고 지나가는 지금 시대에서도 오래 살아남는 원동력이 된다. 실제로 힙노시스의 시대에는 앨범 커버 하나를 만드는데 보통 6주가 걸렸다고 한다.


영국 밴드 10cc의 1980년 앨범 '룩 히어(Look Hear)?'의 커버 촬영을 위해서는 하와이 해변으로 날아가 정신과 상담 소파를 놓은 뒤 현지에서 양을 구해 앉혔다. 이 작업을 위해 미리 양은 구했지만 놀랍게도 하와이에는 긴 안락의자가 없었다. 5일 동안 배달을 기다리면서 오브리 파월은 가오리를 잡고 수영하며 어슬렁거렸다. 물론 털을 깎고 샴푸로 헹구고 발톱 정리까지 해주면서 양 관리에는 철저히 신경을 썼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스톰 소거슨의 그래픽이 앨범 커버의 메인이 되었고 양의 모습은 아주 작게 들어갔다. 영국 근처 해변에 갔어도 상관없었겠지만 굳이 하와이까지 가고, 기다림과 노력 끝에 원하는 사진을 얻었지만 정작 앨범에 아주 작게 들어갔어도, 그런 디테일과 정성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힙노시스가 회자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외에도 그들은 한 장의 이미지를 위해 사하라 사막에 60개의 축구공을 들고 갔고,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스턴트맨의 몸에 몇 번씩 불을 붙였다. 또 핑크 플로이드의 "애니멀스" 앨범 커버 제작 당시 촬영을 위해 하늘에 띄운 돼지 풍선때문에 히드로 공황이 폐쇄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기도. 그 비하인드가 모두 영화 속에서 생생히 시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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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음악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도


 

힙노시스를 모른다 할지라도, 앨범 커버에 관심이 없더라도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또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폴 매카트니는 영화에서 힙노시스와의 작업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록밴드 '오아시스' 출신 노엘 갤러거는 힙노시스와 함께 작업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존경심으로 영화 출연을 결정했다. 록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거장들을 영화 속에서 한 자리에 만나볼 수 있다. 그들의 음악을 좋아한다면, 정말 그 시절에 살아보는 듯한 아네모이아를 충만히 선사할지도 모른다.

 

힙노시스와 록의 황금기를 담은 영화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은 오는 5월 1일에 개봉한다.

 

 

[문충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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