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 구성원 중 알츠하이머 환자가 있는 경우 혹은 지인이 그러한 병을 앓는 경우를 제외하면 평소 알츠하이머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멀게만 느껴지는 질병이자 생각을 하는 것조차 꺼려지는 질병. 무엇보다 무서운 점은 알츠하이머가 환자의 주변인들에게는 현실이 되지만 그와 동시에 당사자는 점점 현실과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를 감상하는 동안 내가 느낀 바는 '무엇이 현실이고 현실이 아닌지를 구분하기가 어렵다'가 아니라 '나 역시 주인공 안소니와 함께 현실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이구나'였다. 안소니 본인도, 그를 지켜보는 관객도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순간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있어서 스스로와의 투쟁과 다름없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모든 상황을 이해해야만 하는 투쟁.
이는 주인공의 세계가 곧 영화의 세계이며 관객이 그의 작중 시점을 함께 공유하기 때문이다. 주인공만이 들을 수 있는 헤드폰의 음악이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재생되는 연출 설정이 이러한 감독의 의도 및 효과를 암시한다.
한편, 안소니가 시계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째서 그는 자신의 시계를 자꾸만 감추려 하고 타인을 도둑으로 몰아가는 것일까? 안소니에게 있어서 시계란 한 인간의 자유와 존엄이 지닌 가치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다시 말해 영화의 시작부터 후반부까지 그가 보여주는 시계에 대한 집착은 알츠하이머 환자가 자신의 존엄을 잃지 않기 위한 사투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가리지 않고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어진다. 그러나 오직 한 부류, 알츠하이머 환자만은 예외이다. 환자가 겪는 시간의 흐름은 결코 일방향적이지 않다. 시간은 이리저리 뒤섞이며 여러 시점들이 교차하고, 분명히 과거에 겪었다고 생각되는 시간을 몇 번이고 다시금 되풀이하게 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이때 모두에게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고 말하는 것은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불평등한 사건이 되는 것이다.
"What about me? Who exactly am I?"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끊임없이 "Who are you?"라는 질문을 반복하며 타인의 정체를 의심하고 확인하고자 했던 안소니는 영화의 결말 부분에 이르게 되면 자신이 과연 누구인지를 묻는다. 알츠하이머 환자가 진정으로 놓치고 싶지 않은 기억은 가족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에 대한 기억보다도 그 자신에 대한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로 나아가는 앤과 과거로 돌아가는 안소니는 사실상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위로와 감사의 말을 건넨다. 안소니가 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을 때, 그 순간은 극중에서 유일하게 왜곡되지 않은 진심이 된다. 어쩌면 안소니와 앤이라는 두 인물이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말 한마디'가 아니었을까.
한편 영화를 보며 알츠하이머를 주제로 한 다른 작품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눈이 부시게>, <천일의 약속>,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등 다양한 작품들이 오랜 시간 알츠하이머라는 소재를 통해 환자와 주변 인물들의 상황을 그려냈지만, 영화 <더 파더>는 플롯이 의도적으로 유발하는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끝까지 주인공에게 몰입하여 함께 침잠하고 흐느낄 수 있는 경험을 안소니 홉킨스의 명연기를 통해 심리적으로, 감정적으로 훌륭하게 제공받았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인상적인 작품을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