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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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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잃을 상(喪)과 잃을 실(失), 무려 두 번의 '잃음'으로 이뤄졌다. 그 무게 때문인지 두 어절밖에 안 되는 단어를 조용히 입에서 굴려보면 절로 헛헛함이 느껴진다. 상실감. 그러한 텅 빈 마음을 더욱더 휘몰아치게 하는 표현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후의 느낌이나 감정 상태.'라고 나온다. 어떤 것이 이미 내 손을 떠나가고, 곁에 없어진 뒤에야 갖게 되는 후회 혹은 허망함. 또는 기나긴 여운들.


어쩌면 아픈 손가락 같은, 다시는 뒤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상실의 부근을 굳이 꺼내 보게 된 건, 지난달 이맘때 즈음 다녀온 여행 덕분이다. 모처럼 비행기를 타고 조금 더 일찍 봄과 초여름을 만끽할 수 있는 타이중을 방문했는데 가기 직전 상태는 사실 완전 최악이었다. 5일 정도 전에 내 생애 다시는 없을 것 같은 일방적인 이별을 당했고, 그 시름에 거의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며 폐인같이 지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에서야 웃으면서 정말 별일도 다 있다고, 살다 살다 내가 미디어의 화면 속 누군가에게 이토록 마음을 줘보기도 한다고,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평소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었던, 그래서 어떤 일이든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일어나게 만들던, 밝고 맑은 언니와의 동행이 아니었다면. 곳곳에 공원이 가득하고, 여유로움과 아름다움, 고즈넉함과 현대로움이 녹아 있는 풍경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엉망진창인 하루들을 보내고 있었겠지.

 

그렇게 회고하다가 문득 떠오르게 된 것이다. 수많은 이별을 맞이하고도 나를 견디게 한 장면들을. 그게 그 사람과의 마지막 추억이든, 이후에 홀로 마음을 달래다가 만난 순간이든. 아직도 기억 속에 희미하고도 사뭇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때를 다시 읊어보면 어떨까? 마치 한 시절을 정리한다는 느낌으로.


아슬아슬한 실험과도 같은 이 글은 그러한 호기심과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를 작은 용기로부터 시작됐다.

 



속초


 

그 아이는 내게 바다 같았다. 한없는 사랑과 한없는 미움을 모두 경험하게 했다는 점에서. 그 깊이와 파고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지나 몸소 성인이 되었음을 체감하기까지, 거의 10년을 함께한 우리는 제법 찬란했고 불안했으며, 마지막까지 질긴 시간을 보냈다.


긴 세월을 산산조각 낸 최후의 대화는 비릿하고 씁쓸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같이 떠난, 아마 서로에게 다시 한번 진심이라 오랜만에 설레었던 1박 2일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몹시 추웠던 어느 시험 기간에 갑자기 속초에 가자며 기어코 기숙사에서 불러내더니, 정말로 실행해 버린 야반도주였으니까.


시속 130km를 넘게 내달리며 아무도 없는 터널을 휙휙 지나고, 졸면 안 된다며 잔뜩 열어젖힌 창문 밖으로 한밤중의 거리가 슉슉 지나가는 동안, 두려움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꼈다. 해야 할 공부는 하지 않고 위험천만하게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이러다 둘 다 죽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그래 이런 게 바로 낭만이지 이제야 비로소 좀 살 것 같다는 묘한 쾌감에 사로잡히던 이상한 기분.


규칙과 규율이라면 홀린 듯이 얽매여 버리는 나에게 언제나 유일한 탈출구이자 비행의 통로가 되어주었던 그는, 그날도 브레이크가 없는 삶의 단면이 무엇인지 맛보게 해주었다. 그렇게 새벽녘에 도착한 숙소에서 한창 컴컴한 바깥을 뒤로 하고 연신 술을 마시며 실없는 농담을 나누었던가. 한없이 편한 옷차림으로 작은 창문에 가까이 기대어 서서 서로의 담뱃불을 켜주며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저 너머를 조용히 주시했던가.


다음 날 늦은 아침, 주섬주섬 겉옷을 챙겨 입고 걸어나가 바라본 겨울 바다는 왜 그리 파랗고 드넓던지. 계속해서 철썩이는 파도에, 끝도 없이 펼쳐져 있던 지평선에, 지나온 감정과 쌓여온 고민을 조금은 흘려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곁에 서서 하염없이 앞을 보던 그의 뒷모습 역시 꽤 오랫동안 눈에 담았다.


형언할 수 없는 안도감과 애정, 그럼에도 가장 좋던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씁쓸함, 허나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충만함을 느끼면서. 아마 지금까지 바다를 좋아하는 것도,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찾게 되는 것도, 그 영향이 있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깨달음과 나에 대한 이해를 원 없이 하게 해주었던 단 한 사람. 그 아이와의 애틋한 관계로 인한 흔적과 회복의 기운이 물씬 서려있는 곳이니까.




전주/부산


 

굳이 왜 이 두 도시냐고 물어본다면 평소에는 계속해서 꾸준히 가고 있는 두 영화제 때문이라고, 에둘러 답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공교롭게도 그때마다 어떤 것들을 떼어내고 부단히 정리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날씨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으니, 핑계를 대자면 한창 봄이 무르익고 가을이 깊어져서 그런 거라고나 할까. 아니면 대학원 생활과 교육원 생활 중에 그저 우연히 맞이하게 된 텁텁하고 흐릿한 시기였다고 할까.


이제는 제법 성숙해진 줄 알았던 감정과 생각이 한순간에 유치해진 건, 애정했던 어떤 이들 때문이다. 같이 있고 싶고 앞으로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은 그 무게가 상당한 것이었다. 상대를 향한 예측이 빗나갈 때마다, 기껏 내민 제안이 거절당할 때마다, 짙은 수치심과 좌절감에 빠져들곤 했으니까.


또 제법 단단해졌다고 여긴 내면이 사정없이 무너져 내린 건, 자신에게 건 기대와 낙관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어지자 무력감에 휩싸였다. 결정적인 순간에 실패할 때마다 정신 승리로 이겨내곤 했지만, 한켠에 쌓여가던 피로감과 서글픔이 결국 터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한껏 복잡해진 심정으로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곤 했다. 남몰래 썩어 문드러져 가는 속을 달래는 데 필요했던 것은 낯설고도 익숙한 곳에서 홀로 취하는 휴식이었다. 조용히 자고, 걷고, 보고, 쓰고. 그러다 보면, 내려놓거나 털어놓아야 할 부분과 애쓰지 말고 냉정해져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그렇게 안온함을 갈구하는 동안 주변이 어땠더라.


어느 따스한 오후에 서학동에서 걸어 나와 청연루까지 천천히 걸어가며 가만히 살폈던 윤슬과 억새.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괜히 시내의 독립 서점을 전전하다 친구의 전화에 울음을 터뜨리며 올려보던 흐린 하늘. 잔뜩 헤매다 어정쩡한 마음으로 해 질 녘 카페에 들어앉아 하염없이 쳐다보던 바다의 너울. 기어코 달맞이길에 올라 원하는 만큼 천천히 누리다 흡족하게 하산하며 만끽하던 절경.

 

이와 함께하고 있자면, 좁아진 시야가 다시 넓어지고 잃어버렸던 관대함과 여유로움을 되찾는 기분이었다. 지금의 분노와 죄책감, 답답함과 아쉬움을 해소할 실마리를 찾고, 오해와 경계로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 그러니 그곳에 가면 능히 나아지리라는 나의 맹목적인 믿음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다.

 



(未定)


 

결국 오고야 말았구나. 내가 가장 사랑하던 사람과의 이별이. 그 전후를 조용히 곱씹어 보는 순간이. 당신과는 태어나면서부터 너무 많은 곳을 함께 다녔기 때문에 하나로 콕 정할 수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모든 것이 기억나진 않는다. 기억하고 있던 것도 애써 지우며 산지 벌써 5년째에 이르렀으니. 그런데도 불구하고, 몇 개의 아주 선명한 모습들은 여전히 떠오른다.

 

언제나 베스트 드라이버였던 당신의 뒷모습. 그 모습을 보기 위해 부러 조수석 뒷자리에 앉은 적도 있었다. 창밖 풍경을 구경하다가도, 깊이 잠에 빠져들다가도, 초점을 맞추면 늘 당신이 보였다. 점잖게 앉아 운전대를 잡은 당신에게 괜히 한 마디씩 던져보는 건, 졸음을 걱정한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단둘이 얘기할 때의 신중함과 적막 그리고 다정함이 좋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내가 아기일 때부터 다 큰 성인이 될 때까지, 비디오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 그리고 휴대폰 사진기를 들곤 했다. 덕분에 그 속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담겼다. 대개 가족의 얼굴이거나, 즐거운 웃음소리 혹은 대화 소리가 많았지만, 주변을 포착하는 컷들도 두루 있었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고 자연을 가까이 두고 싶어 하던 당신은 내게도 그 곁에 서보기를 권유하곤 했다.


나중에 사진에 대한 미적 감각이 생기고 나서 그 결과물에 대해 이리저리 핀잔을 주긴 했지만, 당신이 찍는 모든 순간에 애정이 묻어 있다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가 없었다.

 

또 뭐가 있을까. 가끔 먼저 다가가서 파고들던 당신의 손이 생각난다. 단단하고 따뜻한 손. 그 손을 잡고 걷기 힘든 길을 걸었고, 무섭고 험한 비탈길을 내려갔고, 어두운 시야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산책할 수 있었다. 매서움이 살아있지만, 나에게만은 언제나 너그러워지려 노력하던 시선도 생각난다. 청각도, 미각도, 시각도 예민하던 당신과의 여행이 불편함보다 편안함으로 남아있는 건, 남모를 당신의 배려 덕분이었을까.


늘 깊은 속마음은 다 알 수 없었지만, 어느 날 밤에 맥주를 마시며 자신이 겪었던 가장 충격적인 죽음을 얘기할 때 어떤 것을 목도한 것 같기도 했다. 당신이 감추고 있는 슬픔과 당신이 감추고 있는 우울을. 단순히 그 기억 하나 때문이 아니라, 그런 부류의 수많은 기억들을 안고 지내왔을 세월이, 그렇게 온화한 성품으로 단련되기까지의 노력이 감히 짐작되지 않아서.


마지막 영금정에서, 정동진에서, 화진포에서, 남이섬에서, 오이도에서, 경주에서, 능내역에서 지은 미소들은 그래서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어릴 적, 유독 당신과 많이 갔던 남쪽 섬과 동남쪽 세계의 곳곳도. 그 쨍한 햇살 아래 느긋하게 펼쳐지던 여름날의 전경이 곧 당신이 원하던 평화로움과 똑 닮았을 거라는 생각에. 역시 이번에도, 제멋대로 상상하고 제멋대로 그려보면서 말이다.


*

 

이토록 조각난 장면들을 품고 있는데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 아픔마저 언젠가는 무언가로 탄생할 수 있다는 건. 승화일지 치유일지 모를 과정을 자발적으로 선택해 감히 행한다는 건.


약 3주 전에 만났던, 가장 아끼는 사람과 나눴던 대화가 어쩌면 오늘의 결과를 낳은 건지도 모르겠다. 써보겠다는 의지,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 풀어내고 싶다는 갈망, 당분간은 계속 살아보겠다는 용기. 이를 위해 거쳐 가야 했던 하나의 관문인 것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기나긴 여행 중에 마침내 만나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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