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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여름,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 실내를 가득 채우는 에어컨 공기, 함께 갈라 먹던 수박, 손에서 녹는 아이스크림, 더위와 땀, 밤보다 긴 낮... 그런 단어들이 여름을 가득 채웠더랬다. 기다려지는 것들과 썩 반갑지 않은 것들이 공존하는 계절이 바로 여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단어로 여름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아름, 다운, 우리, 여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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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 여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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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TVN에서 방영한 2부작 단막극 <아름다운 우리 여름>은 제목 그대로, 아름, 다운, 우리, 여름이 주인공인 드라마다. 어느 여름날, 네 쌍둥이(아름,다운,우리,나라)가 사는 집의 옆집에 열아홉 살 여자아이 ‘여름’이 이사를 오게 되며 드라마는 시작된다. 여름은 이상한 아이다. 이 큰 집에 혼자 이사를 왔다지 않나,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날을 세우지 않나, 심지어 한 햄버거 가게를 찾아가서는 ‘햄버거가 맛없다’고 말하며 가게를 뛰쳐나온다. 햄버거를 한 입도 먹지 않고서는 그런다.

 

화목하고 정겨운 가족인 아름, 다운, 우리의 가족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네 쌍둥이가 살고 있는 옆집의 풍경은 단란하고 행복해 보인다. 첫째 아름이는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으며 선생님의 신뢰를 받는 전교 회장이기까지 하다. 전학 온 여름이에게 담임 선생님이 “내 교실에서는 사고 치지 말자”며 싸늘하게 경고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분명 모범생 중의 모범생이어야 할 ‘아름’은 담배를 피다가 ‘여름’과 딱 마주치고, 촉망받는 육상 선수 다운이는 슬럼프에 빠져 더 이상 뛰지 못한다. ‘우리’는 귀에 헤드셋을 낀 채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누가 물어도, 어떤 상황에서도 입을 꾹 다물고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행동한다.

 

‘여름’은 단란해 보이기만 했던 이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게 된다. 바로 네 쌍둥이 중 막내이자, 유일한 여자아이였던 ‘나라’가 1년 전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가족들은 여전히 나라가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 모른다. 유서 한 장 없이 떠나간 나라를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할 뿐이다. 그것 때문에 끈끈했던 쌍둥이들은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곪아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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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와중에도, 쌍둥이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상한 소녀 여름에게 선한 마음을 내보인다. 가족에게도 한마디 말도 내뱉지 않던 ‘우리’는 자살 직전의 여름을 살리기 위해 “너를 걱정할 사람들 생각을 해 달라” “걱정해 줄 사람이 없다면 이제부터 자신이 걱정해 주겠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다. 쌍둥이들은 그 이후로 이상할 정도로 여름을 따라다닌다. 여름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여름을 보호하고 지켜 주려 한다. 차갑기만 했던 여름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날 때까지, 여름의 곁에서 친구이자 보호자가 되어 준다. 더 이상 ‘나라’처럼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여름을 지킨다.

 

결국 여름은 쌍둥이들과 그들의 다정한 어머니 ‘혜진’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자신을 낳은 것 때문에 인생이 힘들었다고 말하는 엄마와, 어린 자신을 버리고 떠나갔던 아빠, 친구를 죽게 했다는 오명을 쓰며 강제 전학을 와야 했던 소녀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혼자 사는 여름을 걱정하며 잘린 수박과 반찬을 가득 가져다주고, 저녁 식탁에 여름을 초대하는 그들의 선의가 있었다. 그렇기에 여름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벗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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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 다운, 우리가 여름을 살게 했다면, 여름은 아름, 다운, 우리를 지켜준다.

 

나라의 죽음 이후 잃어버렸던 그들의 삶을 여름만의 방식으로 응원해준다. 담배를 피는 일탈을 하는 아름을 무작정 탓하지 않고, “다행이다. 곪아 있지만 않고 이렇게 풀 줄도 아는 아이여서.” 라고 말해 준다. 각각 육상과 음악을 그만두겠다는 다운과 우리에게 나라의 마지막 인사를 대신 전달하며 꿈을 지켜준다. 이렇듯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게 되며, 최악의 여름이 될 뻔했던 그해 여름은 점차 “아름다운 우리 여름”으로 변해 간다.

 

<아름다운 우리 여름>을 시청하며 느낄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선의’다. 정말로 순수하게 타인을 도와 주고 싶어 하는 인물들의 마음이 서로를 살리고 또 살린다. 혐오의 표현이 만연하게 이뤄지는 이 시대에, 아직도 사람들 속에 선의가 남아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가지게 되는 이 시대에 아름, 다운, 우리, 여름이는 답한다. 사람들 속에는 아직 서로를 위할 수 있는 마음이 남아 있다고 말해 준다.

 

나라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축소한 것이나, 네 사람의 이야기가 아직 덜 풀린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은 아쉽다. 하지만 2부작 단막극이라는 분량을 생각하면, 부드럽고 깔끔하게 이야기를 잘 풀어냈다고 느낀다. 오랜만에 따뜻한 인물들과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여름의 엄마인 유나의 이야기를 덧붙이며 마무리하고 싶다. 여름은 철없는 엄마 유나가 ‘여름에 태어났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자신의 이름을 ‘여름’이라고 지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끝에서, 여름이의 이름이 여름인 이유가 밝혀진다. 여름은 덥기만 한 계절이 아니라 강한 계절이라는 마음.

 

“갓 태어난 너를 안고 창밖을 보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쨍쨍하게 떠 있는 거야. 진짜 예쁜 여름 날이었어. 그래서 네 이름 여름이라고 지은 거야. 그렇게 살았으면 해서... 내 딸이, 나랑 다르게. 예쁘고 강한 여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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