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찍힌 사진의 첫 번째 조건은 애정 어린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대상을 얼마나 오래 바라보고 깊이 들여다보았는지가 사진 한 장에 고스란히 담기기 때문이다. 같은 대상을 찍더라도 그저 눈에 보이는 모습을 담는 것과,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담는 것은 분명하게 다르다. 사진을 잘 모르는 이도 그 느낌만은 확실히 알아챌 수 있다.
책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는 단순히 유물의 모습을 담아낸 기록이라기보다, 저자의 유물 사랑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이야기이다. 카메라를 통해 유물을 바라보는 저자의 애정 어린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익숙하게 보였던 모습도 새롭게 다가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담당자의 말대로 근정문 2층의 누각은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다. 그래서 올라갈 수 있는 별도의 계단도 없다. 나는 촬영장비를 등에 짊어진 채 다락방에 올라가듯 사다리를 타고 기어 올라가야 했다. p.32
고민도 잠시,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내 두 팔과 다리는 바위를 감싸안고 있었다. 착착 접은 삼각대와 카메라를 어깨에 메서 등 뒤로 넘겨놓고 멀리서부터 도움닫기로 뛰어올라 바위에 몸을 최대한 밀착시켰다. p.81
위 두 인용구들은 저자가 유물의 특징들을 담고자 노력했던 생생한 모습들이다. 첫 번째는 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이 성사되어 광화문광장에서 경복궁 광장으로 향하는 이봉 행렬을 찍는 과정이다. 본래 갈 수 없는 곳인데 행렬과 근정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을 선점하기 위해 담당자를 끈질기게 설득하였다고 한다.
두 번째 인용구에서도, 한양도성 인왕구간의 특징적인 모습을 담기 위해 위험한 곳임에도 온몸을 던지는 저자의 열정을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만큼 고되 보이지만, 그 유물이 가진 특색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결국 좋은 사진은 좋은 장비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제대로 담아내고 싶어 하는 사람의 마음과 노력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인돌을 카메라로 담아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나는 수만년전의 사람들이 이 투박한 바위들을 힘겹게 옮기고 쌓으면서까지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p.189
당시의 사람들이 왜 이 자리에 석비를 세웠으며,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자 이렇게 표현했는지 나는 여러 질문을 계속해서 혼자 입속으로 곱씹었는데,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관계자들이 내게 말했다. 하지만 내가 석비를 만들었을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리려면 이렇게 중얼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수밖에 없다. p.222
저자의 유물 사진이 매력있는 이유는, 그가 유물에 담긴 이야기를 해석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유물 그 자체를 진중하게 들여다보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깊이 탐구한다. 그저 큰 돌처럼 보일 수 있는 고인돌을 차량의 전조등을 활용해 기품있고 위엄있게 만들어 고인돌에 담긴 이야기를 고민해보게 만든다. 길고 긴 시간을 안고 있는 고인돌의 묵직함을 함께 느껴본다.
또한 세월을 넘나들며 유물과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그의 촬영 과정은 과거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라고 느껴졌다. 특히 석비를 만든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대목이 인상깊었다. 어떤 역사와 의중이 담겼는지 깊이 탐구하는 모습에 사진 한 장 한 장을 오랜 시간 바라보게 만들었다.
돈이 되는 일도 아니고, 누군가 시키지도 않은 일에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몰입하는 나를 보며 누군가는 ‘미쳤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미친 짓’은 일을 대하는 내 진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특히 문화유산을 찍을 때 이렇게 진심을 다하지 않으면 시대를 해석하고자 하는 호기심도, 인간과 사물에 대한 애정도, 시간이 쌓은 아름다움도 모두 담기지 않는다. p.159
책을 다 읽고 나니 책 제목의 ‘대화’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저자에게 유물을 찍는다는 것은 단순히 사진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유물에 질문을 던지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일이었다.
결국 이 책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문화유산이나 사진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얼마나 오래 바라볼 수 있는지, 그것을 얼마나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미친 짓’처럼 보일 만큼 한 가지에 몰입할 수 있는 마음. 어쩌면 그런 마음이야말로 시간이 쌓인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하는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