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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뮤지컬 <웨스턴 스토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모든 장르를 통틀어 가장 쓰기 어려운 장르는 무엇일까. 미스터리 추리물? 판타지? 아니, 사실 코미디만큼 쓰기 어려운 장르도 없다. 생판 모르는 남을 웃겨야 하는 만큼 치밀하고 교묘한 상황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웃기려고 던진 대사에 찬물을 끼얹은 듯 싸한 반응이 돌아오기도 하고, 때로는 대놓고 유치하게 굴어야만 폭소가 터져 나오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발생한다. 그 미묘한 간극과 템포를 조절하며 재미를 잡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기꺼이 그 극악의 난이도를 택한 뮤지컬이 있다. 바로 '기깔나는 서부 코믹극'을 표방한 뮤지컬 <웨스턴 스토리>다.

2년 전, 성공적인 숏츠 마케팅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던 뮤지컬 <웨스턴 스토리>(성종완 작/연출, 김은영 작곡, NOL 유니플렉스 1관, 2026.07.01.~09.27.)가 대학로에 돌아왔다. 현재 가장 핫한 공연이라 해도 무방한 이 작품은 1886년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각자의 욕망을 좇아 모여든 주인공들의 한바탕 소동을 그린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곳, 서부에 왔는가?
수많은 창작물이 그러하듯, 인물의 목적은 드라마의 가장 핵심적인 동력이다. 인물이 무엇을 원하고, 또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에 따라 이야기의 향방이 결정된다. 뮤지컬 역시 이 원칙을 충실히 따른다. 특히 인물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관객에게 직접 드러내는 넘버인 '아이 원트 송(I Want Song)'은 관객에게 캐릭터의 당위성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장치다.
서부! 황량한 사막 무한한 가능성
수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노리는 곳
카우보이 인디언 살인마에 도둑까지
저마다의 황금을 얻기 위해
프로스펙터가 되는 이곳
나는 뭘 위해!
뮤지컬 <웨스턴 스토리>는 오프닝 넘버에서부터 각 인물의 목적을 명확히 밝힌다. 여기서 빌리는 '복수', 조세핀은 '꿈', 조니는 '생존', 그리고 와이어트는 '더 나은 내일'을 노래한다. 이어지는 각자의 솔로곡 역시 아이 원트 송의 성격을 띠며 그들의 욕망을 구체화한다. 지긋지긋한 서부를 벗어나 뉴욕으로 가고 싶다는 제인('떠날 거야')과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달려왔다는 빌리('그날 오케이 목장에서')를 비롯해 와이어트('영웅이 필요할 땐'), 조세핀('진짜 주인공'), 조니('안 되나요')까지, 모든 인물이 넘버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
보통의 뮤지컬이 소수에게만 솔로곡을 배치하는 것과 달리 <웨스턴 스토리>는 등장인물 전원에게 이를 부여한다. 이 독특한 배치에는 작품의 가장 큰 뼈대이자 구조인 '메타극'이라는 비밀이 숨어 있다.
코미디를 선택했으면 끝까지 가야 하는 법

ⓒ뉴프로덕션
그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이아몬드 살롱에서 벌어진 대환장극의 전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황량한 서부를 벗어나 뉴욕으로 떠나고 싶은 살롱 주인 '제인'은 근처에 철도가 깔린다는 헛소문을 퍼뜨리고 자신의 살롱을 헐값에 내놓는다. 현상금이 걸린 전설의 서부 3인방(와이어트, 조세핀, 조니)을 유인해 팔아넘기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3인방이 벌인 전설적인 결투인 'OK 목장의 결투'에서 아버지를 잃은 빌리가 뛰어들며 계획은 꼬이기 시작한다.
게다가 살롱에 모여든 전설의 3인방은 명성과 달리 어설프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그들은 사실 유랑극단에서 도망친 삼류 '배우'들이었기 때문이다. 복수를 꿈꾸는 총잡이와 일확천금을 노리는 살롱 주인, 그리고 한탕을 꿈꾸는 삼류 배우들의 속고 속이는 난장판이 벌어지는 공간이 하필이면 무대와 조명 등의 장치가 있는 '극장식 살롱'이라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등장인물의 정체가 배우이고 공간이 극장이라는 설정은 자연스럽게 <웨스턴 스토리>가 메타극임을 드러낸다. 메타극은 무대와 관객 사이에 위치한 제4의 벽을 깨부수고,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이 허구의 극이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보여준다. 인물들은 "방백"이라는 단어를 내뱉거나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기도 하며, 서로 "내가 주인공이다", "내 노래를 부를 차례다", "시간 없으니 노래하지 마라"며 다투기도 한다.
이 극이 메타적인 장치를 차용하고 모두에게 솔로곡을 배치한 이유는 명확하다.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를 코미디의 소재로 써먹기 위함이다. 무대의 주도권을 뺏고 빼앗기는 스포트라이트 쟁탈전, 일부러 과장된 톤이 삽입된 '뮤지컬스러운' 넘버들, 그리고 뮤지컬임에도 불구하고 제발 노래 좀 하지 말라고 싸우는 인물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웃음을 유발한다.
여기가 서부인지, 음악 방송인지
이 극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요소는 '서부극' 하면 떠오르는 시그니처 사운드와, 이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화려한 무대 연출이다. 서부라는 배경을 택한 이상 그 장르적 기대감을 충족시켜야 할 텐데, <웨스턴 스토리>는 넘버를 통해 이를 완벽히 구현한다. 거친 모래바람을 가르는 말발굽 소리,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 그리고 서부극의 상징과도 같은 특유의 코러스 음향은 단숨에 관객을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로 끌고 간다. 정통 웨스턴 무드가 가득 담긴 청각적 요소는 이 극의 고유한 색채를 충실히 지킨다.
흥미로운 점은 그런 넘버를 무대 위에서 구현해 내는 방식이다. 극의 청각적 요소가 정통 서부극을 향해 있다면, 시각적 요소인 안무와 조명은 마치 아이돌의 음악 방송을 연상케 할 만큼 화려하고 노골적이다. 솔로곡인 '영웅이 필요할 땐'을 부르는 와이어트에게 시시각각 색이 변하는 화려한 조명과 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센터를 차지한 와이어트 곁에는 댄서로 분한 다른 인물이 칼군무로 춤을 춘다.
서부극 사운드 위로 음악 방송에서나 볼 법한 눈부신 조명과 군무가 펼쳐지는 뻔뻔한 호흡은 코미디 공연으로서의 색채를 확고히 다진다. 나아가 물리적인 공간의 한계는 무대 상단에서 재생되는 영상으로 극복한다. 인물의 등장 시퀀스를 영화처럼 강렬하게 비추거나 쉴 새 없이 변하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내는 영상 장치는 145분간 지루할 틈 없는 공감각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깔깔극에 걸맞은 제대로 된 코미디 뮤지컬
이 극은 극악무도한 서부의 악당으로 소문난 '조니 링고'가 정작 1막 내내 등장하지 않는다거나, 뻔한 클리셰를 전면에 노골적으로 내세우며 참신함을 챙기는 지점이 특히 흥미롭다. 하지만 무엇보다 <웨스턴 스토리>의 일등 공신은 코미디 연기를 완벽하게 구현해 내는 배우들의 열연이다. 객석에서 시원한 웃음을 터뜨리길 바라는 관객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주겠다는 듯, 온몸을 던져 극을 살려내는 배우들의 에너지가 단연 눈에 띈다.

ⓒ뉴프로덕션
물론 메타극의 형식을 취하다 보니 다소 설명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인물이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갈등 요소를 대사로 설명하고 넘어가는 등 '말로 해서 말로 끝내는' 전개 방식과 함께, 코미디 뮤지컬이 태생적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는 한계점도 엿보인다. 아무리 극이 좋고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더라도, 이미 정해진 이야기와 웃음 포인트 안에서는 회차가 반복될수록 그 타격감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로 인해 자꾸 변주를 주어야 한다는 점은 코미디 극을 택한 이상 감당해야 할 숙제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코미디에 온 힘을 쏟아부은 노력은 극장 밖에서 제대로 통했다. <웨스턴 스토리>의 '숏츠 마케팅'이 바로 그 증거다. 공연 중에 벌어진 재미난 상황을 영상으로 재가공해 숏츠로 선보인 마케팅은 엄청난 화제성을 끌어모았다. 유튜브에서 최고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은 660만 회에 육박할 정도다. 실제 공연장 역시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으로 가득 차, 이 극이 확실하게 대중성을 거머쥔 화제작임을 체감할 수 있었다. 끝까지 밀어붙인 코미디와 화려한 볼거리에 맘 편히 웃고 즐길 수 있는 오락형 뮤지컬 <웨스턴 스토리>의 반가운 귀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