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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연극 <불란서 금고>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통 코미디의 귀환, 오해가 빚어낸 클래식한 희극
연극 이론을 한 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비극과 희극의 본질적인 차이를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정통 코미디에서 즐겨 사용하는 장치는 바로 '오해'다. 장진 연출의 신작 <불란서 금고>는 이러한 정통 코미디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는 아주 클래식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신구 배우를 필두로 한 명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는 이 고전적인 문법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공연은 대학로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SCON) NOL스퀘어 1관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여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하여
작중 인물들은 각자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하나의 금고 앞으로 모여든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들이 금고 안에 든 내용물을 저마다 다르게 알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막대한 현금을, 누군가는 값비싼 예술품을 기대한다. 심지어 누군가에게는 내용물보다 금고를 여는 기술적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동상이몽(同床異夢)인 인물들이 모였으니 팀워크가 매끄러울 리 없다. 극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들의 삐걱거리는 불협화음과 그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갈등은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인물들과 관객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질문은 "그래서 금고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는가?"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질문은 거대한 맥거핀에 불과하다. 사실 금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말에 이르러 인물들은 모두 불만족스러운 얼굴을 하지만, 유일하게 무언가를 얻어간 인물은 금고를 여는 과정 그 자체에만 몰입했던 '맹인 영감'뿐이다.
극 중 언급되는 '북벽 장춘'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인간의 끈질긴 노력을 상징한다. 결국 험난한 북벽을 오르는 데 성공한 이는 '정상에 올라 무엇을 취하겠다'는 욕심이 없던 맹인 영감이었다. 그는 금고를 여는 행위, 즉 북벽을 오르는 과정 자체를 온전히 즐겼기에 마침내 목적지에 닿을 수 있었다.

과정의 즐거움을 잊은 시대
이번 공연은 대본이 던지는 메시지와 연극적 완성도 면에서 여러모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우선 개인적으로는 결과주의에 매몰되어 살아가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에 익숙해지다 보니,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과정의 즐거움'을 어느샌가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연극이 전하는 메시지는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처방전처럼 느껴졌다.
작품 자체로 보아도 '말맛'이 살아있는 클래식한 코미디를 오랜만에 만난 기분이라 반가웠다.
메시지는 친절하게 전달되면서도 배우들의 연기는 시종일관 유쾌하다. 가족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이며, 탄탄한 텍스트의 구성 덕분에 언젠가 수능 국어 영역의 극문학 지문에서 만나게 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문학적인 완성도도 훌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