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칭 디텍티브
Watching the Detectives
2007. 05. 01.
냉혹한 테러리스트, 좀비 아포칼립스의 주인공, 아일랜드 독립운동가.
모두 '킬리언 머피'가 맡았던 배역이다. 특히 〈배트맨 비긴즈〉에서 정신병원을 장악하고 환자들에게 불법적인 실험을 진행하는 악당으로 나오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루시 리우'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필모그래피만 보면 킬리언 머피보다 더 일관된 경향을 보인다. 그녀가 맡았던 배역은 다음과 같다.
남편과 정부를 죽인 살인범, 야쿠자 보스···.
그러던 어느 날, 싸이코 의사와 야쿠자 보스가 만났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없기 때문일까? 한쪽은 눈에서 독기가 전부 빠졌고 다른 한쪽은 줏대 있는 바보가 되었다.
바보와 팜므파탈이 만나면서 생겨난 사건들은, 엉뚱하고 사랑스러웠다.
미친 의사? 아니, 미친 영화광!
'닐'은 비디오 가게 Gumshoe Video의 사장이다. 여자나 연애에는 관심이 없고 영화에 미쳐있다. 하루는 웨이터를 시켜서 애인의 옷에 물잔을 쏟았다. 데이트가 귀찮았지만 대놓고 티낼수는 없으니 적당히 집에 보내려던 것이다. 그러다 잔꾀를 들켰고 여자친구는 분노했다. 너는 철 좀 들어야 해!
비난을 가만히 듣고 있던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아니면 그냥 헤어질 수도 있어."
어쩌면 그게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듯이. 다른 것도 아니고 '이별'을 '제안'한다. 이처럼 닐은 소심하고, 무심하며, 조금 괴짜같은 캐릭터다. 현실보다 영화 속 세계를 훨씬 재밌게 느낀다. 마피아, 범죄, 배신... 극적인 사건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닐은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라 관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자가 나타나게 된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팜므파탈 캐릭터가 보란듯이 현실에 등장했다.
시선이 가지만 읽히지는 않는 여자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다가 그녀가 영화 제목이라도 중얼거리면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건넸다. 솔직히 말해서, 그 영화 추천하지 않겠어요. 그러면 '바이올렛'은 잠시 당황하다가 귓가를 손짓했다. 아, 지금 통화 중이에요.
결국 닐은 추근대기를 그만두고 비디오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목소리는 계속 들렸다.
그래서 어떤 걸 빌릴까요?
어느 걸 추천해 주실래요?
뒤를 흘깃 돌아보았더니 여전히 이어폰을 낀 그녀가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닐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정리에 집중했다. 나름 센스 있게 행동한 가게 주인에게 돌아온 것은 폭력이었다. 바이올렛은 들고 있던 비디오로 닐의 어깨를 쳤다. 어리바리한 표정으로 마주 선 남자에게 다시 제대로 물었다. 둘 중에서 어떤 영화를 추천해 주시겠어요?
일련의 상황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의 예고일 뿐이다. 닐은 장난스럽고 매력적인 바이올렛에게 끊임없이 휘둘린다.
와칭(Watching)에서 플레잉(Playing)으로
첫 데이트에서 경찰에게 쫓긴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조금 이상했다. 만나기로 약속했던 식당에 도착했더니 그녀는 이미 잔뜩 취해있었다. 고작 3분 늦은 닐에게 핀잔을 주더니, 곧이어 '나를 집으로 데려가도 좋다'며 유혹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의 옷깃을 끌어당기며 거침없이 거리를 좁혔다.
닐은 취한 사람을 상대로 선을 그었다. 내 차가 바로 밖에 있거든. (너희 집에) 태워다 줄 수도 있고, 택시를 불러줄 수도 있어.
그러자 바이올렛은 순식간에 정신을 차리고 립스틱을 발랐다. 깊이 생각할 시간도 없이 그녀가 주도하는 대화를 따라가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대형 비디오 가게에 도착해있었다.
다음 날 그들은 나란히 앉아서 경찰의 눈치를 살폈다. 어젯밤에 경쟁사인 Media Giant를 난장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시된 DVD를 전부 꺼내서 엉뚱하게 바꿔 끼우고, 사이렌 소리에 도망치다가 진열대를 넘어뜨렸다. 탐정 영화를 '보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영화 속 장난을 '실행'하고 있었다.
이후로도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 계속됐다. 그녀의 전 남자친구가 대머리였다는 말에 마을의 모든 대머리들을 견제하거나··· 락스타와 바람이 난 줄 알고 일렉 기타를 꺼내 든다.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보려고.
관객으로 살아가던 사람이 사랑을 시작하며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었다.
go outside and touch grass
this movie is literally telling everyone to go outside and touch grass
이 영화는 모두에게 밖에 나가서 현실을 좀 살라고 말하는 것 같아
후기를 찾아보다가 발견한 댓글이다. 무표정하게 있다가 웃음이 터졌다.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었던 것 같다. 혼자 취미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인생이 더 즐거워질 수 있다고 말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더운 여름도 지났으니 슬슬 나가봐야겠다. 정해진 루틴을 벗어나서 새로운 곳으로 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일상을 영화처럼 만들어 줄 나만의 '바이올렛'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