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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글입니다.
나는 가끔 사랑의 품사가 명사인지 동사인지 헷갈린다. 사랑은 행위일까? 아니면 고정된 대상에 대한 정의일까? 연애하는 동안 내가 사랑을 하는 건지 사랑인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채워지고 싶어서 연애를 시작한 건데, 자꾸만 마음을 비우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던 참에 2012년 개봉한 영화 '러브픽션'을 보게 됐다.
1. '이희진'이 아닌 '구주월의 애인'
애인을 뮤즈 삼아 글을 쓰는 소설가 '구주월.' 오랜 애인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고 번아웃이 온다. 그러던 참에 출판사 사장의 권유로 독일 출장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여자 '희진'을 만난다. 팜므파탈처럼 매력이 흘러넘치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버린 주월. 희진은 자신이 영화 수입하는 일을 한다고 밝히며 명함을 건넨다. 주월은 짧지만 강렬한 만남을 잊을 수 없어 그녀의 회사로 편지를 보내고, 오랜 기다림 끝에 재회한다.
알고 보니 이혼한 경험이 있던 희진. 주월은 잠깐 당황하지만, 희진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이혼이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식으로 말하며 넘어간다. 그리곤 주월의 갖은 노력 끝에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주월의 상상 속 희진은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베일에 싸인 여자이다. 주월은 그녀의 베일을 하나둘씩 벗겨내 모든 걸 알아내고 싶어 한다. 주월에게 있어 사랑은 소유와 통제였던 걸까? 그는 '이희진'이라는 사람이 아닌, '구주월의 애인'을 바라보았다. 그랬기에 희진과의 첫날 밤, 희진이 제모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한 주월은 계속해서 그 사실을 곱씹는다.
주월: 제 여자 친구예요.
M: 미인이군.
주월: 이런 여자가 겨드랑이 털을 기른다는 게 상상이 가세요?
M: 그래? 오우 좀 다르게 보이는데….주월: 그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려 완벽한 여인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제 심정이 어떨 것 같으세요?
M: 글쎄…. 이런 거 아니야? 클레오파트라의 초상화를 찾아 나선 고고미술사학자가 고생 끝에 원본 그림을 손에 넣었는데 이집트 여왕의 얼굴에 누군가 장난으로 콧수염을 그려 넣은 사실을 발견한 기분?
주월: 딱 그 심정이에요….
주월은 소설 등장인물 M과 상상 속에서 대화한다. 겉으로는 희진에게 예쁘다, 좋다, 라고 얘기하지만, 속으로는 그녀가 제모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고 불편하다. 사귀기만 하면 세상을 다 줄 수 있을 것 같았던 그녀에게 하나둘씩 결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월이 메모지에 희진에 대한 정보를 적어서 벽에 붙여두는 장면이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주월이 애인을 통으로 암기하여 섭렵해야 하는 시험 범위로 취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희진을 뮤즈로 만들어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한 주월. 필명은 희진과 만든 은어 '방울'을 차용한 양방울이다. 희진은 주월이 '사랑해'가 아닌 다른 단어로 사랑을 말해주길 바랐고, 주월은 눈앞에 놓인 방울토마토에서 영감을 얻어 '방울방울 해'라고 얘기했다. 희진이 그토록 좋아하던 '방울방울 해'라는 둘만의 은어를 연재소설의 필명으로 쓴 것이다. 또한 소설은 제모를 하지 않는 여자주인공을 내세운 추리물로, 약간의 병맛 코드를 띄고 있는데, 희진이 모티브라고 할 수 있겠다.
소설은 꽤 인기를 끌고, 주월은 어느 독자가 남긴 댓글을 읽게 된다. 소설 속 여자주인공처럼 털을 깎지 않은 인물이 자신이 다니던 대학에도 있었다는 댓글이다. 주월의 머릿속엔 희진이 스쳐 지나간다. 소설 쓸 때 아이디어를 얻고 싶다는 핑계로 댓글 작성자를 실제로 만나러 간 주월. 혹시 댓글에 언급된 인물이 '희진'일까 싶어 이것저것 캐묻는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주월은 큰 충격을 받는다. 희진이 대학생 때 제모를 하지 않은 채 수영장을 이용했고, 그 때문에 꽤 유명했다고. 학교 남학생들과 잠자리하고 다녔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주월은 자신이 이상화한 희진의 모습이 산산조각 나자 깊은 혼란에 빠진다. 그런 게 아닐 거라고, 헛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희진을 전처럼 대하지 못한다.
2. 오해와 해명
희진을 향한 주월의 의심과 오해는 갈수록 깊어지지만, 주월은 속 시원히 마음을 터놓지 못한다. 대신 희진에게 심드렁해지고 전만큼 열정을 쏟지 않는다. 희진은 점차 변해가는 주월이 답답하기만 하다.
작중 희진은 주체적인 여성상이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불편하면 불편하다,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하는 그녀가 통쾌하면서도 부러웠다.
주월: (...) 너 오늘 왜 이렇게 까칠해? 생리해?
희진: 당신, 지금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한 거 알고 있어?
주월: 무슨 말? 생리하냐는 말?
희진: 여자들이 정당한 이유로 화를 낼 때 무책임한 남자들이 하는 가장 폭력적인 말이 바로 그 말이야. 여자들은 자궁에 뇌가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들! 당신만은 그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정말 실망이다.
다음은 희진과 주월이 데이트 중 고깃집에 가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주월은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에 고기를 먹지 못한다. 하지만 희진은 고기를 먹지 않으면 건강이 안 좋아질 만큼, 식단에 고기를 꼭 넣어줘야 하는 사람이다. 주월은 채식주의자인 자신 앞에서 고기를 먹는 희진이 못마땅하고, 결국 이런 태도는 두 사람의 대화에 불씨를 지핀다. 까칠해진 희진을 두고 주월은 '생리하냐'는 말을 던지고, 희진은 정색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고기를 먹는 것도, '생리하냐'는 비꼼에 기분 나쁘다고 얘기하는 것도 전부 솔직하고 당당해 보였다. 주월은 희진의 솔직 당당한 모습에 매력을 느껴 사랑에 빠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 '솔직 당당함'에 불편함과 거리감을 느낀다.
희진: 그냥…. 사람은 결국 혼자 죽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죽음까지 함께 할 수는 없는 거잖아.
주월: 로미오와 줄리엣도 함께 죽었잖아.
희진: 그들도 서로의 의도를 오해한 거잖아. 사랑은 했지만, 상대를 이해한 거는 아니야. 사람들은 평생 자신에 대한 오해를 해명하다가 쓸쓸히 죽는 거 같아.
주월: 넌 사랑을 받기보다 이해받고 싶은 거야?
희진: 사랑이란 이름으로 눈뜬장님이 되고 싶지 않을 뿐이야.
영화를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이다. 희진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단순한 로맨스로 간주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서로의 의도를 오해했다'고 바라보는 시선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평생 자신에 대한 오해를 해명하다가 쓸쓸히 죽는 것 같다고 말하는 희진. 어딘가 텅 비어 보이는 그녀는 '사랑이라는 이름에 속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털어놓는다. 어쩌면 희진이 솔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해받고 해명하는 과정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나는 연애를 할 때 상대를 어떻게 대했는지 떠올렸다. 가까이 붙어있고, 오래 만날수록 상대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너무 가까이서 보니 작은 티끌 하나도 눈에 띄기 시작하고, 계속 그것만 바라보다가 결국 끝이 났던 경험이 있다. 만나온 시간이 곧 관계의 단단함을 증명하진 못하는 것 같다. 희진의 말처럼, 우리는 평생 자신에 대한 오해를 해명하다 쓸쓸히 죽는 걸까?
서로에게 서운한 점이 쌓이고 쌓여 폭발하게 된 주월과 희진.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게 된다. 희진은 주월이 자신을 모티브로 소설을 써온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얘기한다. 둘만의 은어 '방울'을 필명으로 써도, 자신이 제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희로 삼은 소설을 써도 모른 척 넘어가 줬던 거다. 희진은 주월의 그런 모습까지도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니까 말이다.
3. 사랑이 아닌 '러브픽션'
희진의 사랑은 주월과 함께 쌓아 올리는 역동적인 동사였다. 반면 주월의 사랑은 멋대로 정의 내린 명사에 가까웠다. 주월은 희진과의 연애가 자신이 쓰는 소설처럼 정해진 결을 따라 전개되길 원했고, 희진에게 판타지라는 베일을 씌웠다. 하지만 희진은 쉽게 대상화되는 인물이 아니었기에, 주월은 통제를 벗어나 입체적으로 움직이는 희진을 보며 당혹감을 느낀다.
주월은 헤어지고 나서야 희진을 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된다.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이 많다는 점에서, 사랑은 참 근사하면서도 초라하다. 영화를 보면서 나 또한 주월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인간이었음을 깨달았다. 연애를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바라보고 로맨스 소설 속 주인공이 되기 위해 애썼던 시간. 어쩌면 나는 사랑을 '했다'기보다는 내가 만들어낸 '러브픽션'에 갇혀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이해가 아닌, 상상으로 빚어낸 오해를 거듭했던 것이다. 사랑은 내 뜻대로 쓸 수 있는 로맨스 소설이 아니다. 서로의 티끌을 억지로 닦으려 하지 않고 포용하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서로 다른 두 세계관이 만나 빚어낸 교집합으로 걸어들어가는 초라하고도 아름다운 순간, 우리는 사랑을 하게 된다.
* 모두 각자가 주인공인 세상에서 살아간다. 그러니 연애는 서로 다른 세계관의 만남이다. A와 B라는 존재가 부딪히며 타원 하나가 생기고, 우리는 그것을 '교집합'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그 벤다이어그램이 좋아서 연애를 시작한다. 타원이 가득 찰 때까지 서로의 공통점을 찾는다. 그러다 점점 상대의 영역까지 들어가고 싶어 한다. 더는 넘을 수 없는 선 앞에서 실망하며 돌아선다. 수많은 단어로 들어찼던 타원은 사라져 버린다. 존재했다가, 사라진다. 그렇게 A와 B는 또 다른 벤다이어그램을 그리기 위해 떠난다. 여기저기 부딪히던 A와 B는 어느 순간 깨닫는다. A는 B가, B는 A가 제 삶의 일부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