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야구소녀'가 던지는 제구 [영화]

글 입력 2022.04.2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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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야구소녀>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프로 리그에 진출하기 위해 애쓰는 고등학생 여자 투수 '주수인'(이주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리틀 야구를 할 땐 자신보다 체구도 작고 야구 실력도 조금 떨어졌던 '이정호'(곽동연)가 프로 리그에 진출하게 됨에 따라, 교내 벽에 걸린 기사의 주인공이 주수인에서 이정호로 바뀌며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장면은 고교 야구부의 유일한 여자라는 점, 여자 선수지만 구속 130km는 그냥 던진다는 점에서 '천재 야구소녀'로 불리며 야구부의 간판이자 스타였던 주수인이 결국 프로 리그라는 거대한 벽에서 좌절하는, 주인공의 '시련의 시작'을 단번에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영화 내에서 꿈을 꾸는 주인공 (주로 10대 혹은 사회 초년생인)이 시련을 마주하게 되고,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을 탐탁지 않아 하는 주변의 모습들은 '성장 영화'의 전형적인 구성요소다. 주변 인물들, 사회, 환경 혹은 스스로의 문제 등 갖가지 방해 요소를 겪게 되는 주인공은 곧 영화를 보고 있는 어린 청춘들을 대변하고 있고, 그러한 주인공이 칠전팔기하여 여러 장벽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소소한 위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장 영화는 이러한 구성을 통해 개인의 한계는 극복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외적인 문제 요소들을 향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아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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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소녀>도 얼핏 보면 이 평범한 성장 서사를 따르는 듯하다. 하지만, 주수인은 극적이지 않다. 프로 리그에서 공을 던지고 싶은 꿈을 좌절시키는 요소는 존재한다.

 

그러나 주수인은 다른 성장 영화들의 주인공들과 달리 성별, 실력의 한계, 코치진들의 반대, 엄마의 반대에 무너지거나 맞서 싸우지 않는다. 주수인은 늘 그랬듯이 훈련에 나오고, 자신의 야구 실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밤새 피를 보면서까지 연습을 한다.

 

프로 리그 대신 생활 스포츠로 야구를 계속할 수 있는 길과 다른 스포츠 종목으로 전향할 기회가 주어져도 계속해서 야구를 하겠다고 한다. 야구를 하고 싶어 하는 것, 야구를 하는 것은 항상 그래왔던 것이니까, 묵묵히 자신이 택한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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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하는 것을 어떻게든 말리려는 엄마한테 자신의 야구를 보고 인정해달라고 애원하는 대신 자신을 그저 가만히 두라고 말한다. 혼자 알아서 야구를 해왔던 것이 원래의 일상이었고, 그만 둘 생각은 원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수인은 극적인 설득의 과정이 없었음에도, 자신에게 프로 리그를 갈 수 없다고 단언했던 '최 코치'(이준혁)를, 반대하던 엄마를, 그리고 트라이 아웃에서 반신반의하던 야구 감독과 단장을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어쩌면 주수인이 답답하다고 느꼈을 관객들마저도 어느샌가 함께 '주수인 파이팅'을 외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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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야구소녀>는 주인공의 꿈을 향한 간절함이 여러 가지 제약들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변화시키며 주인공의 편으로 만드는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영화가 다소 느릿하게 진행되고, 극적인 사건 없어도 온 마음 다해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이유다.

 

<야구소녀>라는 제목과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 역시나 눈에 띄는 점은 '여자' 야구선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 초반부 이종호가 프로 야구 선수가 되는 것을 바라보는 주수인의 모습을 통해 '여자여서'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부당한 사회와 스포츠계를 지적하고, 성차별적인 시선이 편재하는 사회에서 여성 운동선수가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로 오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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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야구소녀>는 소녀가 아닌 야구에 방점을 찍는다. 즉, 이 영화는 '여자' 투수 주수인이 아닌, 여자 '투수' 주수인의 이야기다.

 

성별의 벽을 뛰어넘는 여성 서사보다는 자신의 야구 실력의 한계점을 인지하고 자신의 현재 상황과 주변인들을 변화시키는 서사에 집중한다. 성별 차이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한계와 차별에 무책임한 사회가 아닌, 프로 야구 선수가 되기엔 역부족한 자신의 실력에 초점을 맞춘다. 주수인은 자신이 '여자라서' 느린 공에 무력감을 느끼지 않고, 여자라서 (신체적인 한계로 인해) '느린 공'에 무력감을 느낀다.

 

하지만, 여러 번 강조했듯, 이 영화는 자신의 한계에 맞서 싸우며 극복하는 이야기보다는 한계가 있음에도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으로 인해 주변이 변화하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주수인은 자신의 느린 공을 빠르게 던지기 위해 싸우지 않는다. 느린 공을 특징으로 내세워 '너클볼'을 던진다. '너는 공이 느려서 안 된다'는 말에 '느려도 된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성별이 단점인 적도, 장점인 적도 없었다'는 주수인의 대사를 통해, 여성 스포츠 캐릭터를 원톱으로 한 영화라는 성취를 이뤄냄과 동시에 이 영화가 기존 성장 영화, 여성 영화와 다른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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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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