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 진짜 앳되다.”
십여 년 전 작품을 볼 때면, 화면 속 배우들의 풋풋한 모습에 새삼 놀라곤 한다. 처음 봤을 때는 무척 어른처럼 느껴졌던 이들이 시간이 흘러 다시 보면 생각보다 훨씬 어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빠르게 머리를 굴려본다. ‘저때 저 배우가 스물다섯이었구나..’ 그렇게 흘러간 세월에 놀라고, 어느새 쉽게 먹어버린 나이에 또 다시 한 번 놀란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든다.
젊음은 자유롭고, 나이가 들수록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것.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기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걸까. 나이에 맞는 삶의 기준은 대체 누가 정하는 걸까. 취업해야 할 나이, 결혼해야 할 나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
대체 누가 정했는지 알 수 없는 기준들 앞에서, 나이라는 숫자 뒤에 애써 감춰둔 작은 고집을 때로는 용감하게 꺼내놓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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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는
작품의 주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둘러보다 영화 <위아영(while we're young)>을 발견했다. 분명 이전에 본 영화였는데, 그 시절엔 제목에 별다른 이끌림을 느끼지 못했다. 그땐 정말 ‘we’re young’ 자체였으니까.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이 제목이 마음에 와닿는다.
나 역시 이 제목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나이에 들어선 걸지도. 생각해보면 조금 웃기고도 쑥스럽다.
1. While We’re young

다큐멘터리 감독인 조쉬와 아내 코넬리아는 평범한 40대 부부다. 조쉬는 10년째 한 작품에 매달려 정체되어 있고, 코넬리아는 반복되는 유산으로 지쳐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쉬는 자신의 다큐멘터리 수업 청강생으로 찾아온 20대 부부 제이미와 다비를 만난다. 자유롭고 거침없는 두 사람에게 매료된 조쉬와 코넬리아는 일상을 공유하며 그들의 에너지에 흠뻑 빠져든다.
타성에 젖어 있던 삶에 오랜만에 활기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조쉬는 젊음뿐 아니라 뛰어난 재능까지 가진 제이미를 보며 점차 열등감과 질투를 느끼기 시작한다. 제이미가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더욱 가까워질수록, 자신이 일궈놓은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힌다. 급기야 제이미가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사실을 조작했다는 것을 알게 된 조쉬는 그의 위선을 세상에 폭로하려 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주변 사람들은 조쉬의 편에 서지 않는다.
곧이어 돌아오는 대답은 “He's not evil. He's just .... young.”
2. He is just young

우리는 다른 세대를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 차이를 ‘틀림’으로 규정짓곤 한다. 제이미와 다비는 40대의 안정감과 경험을 부러워하고, 조쉬와 코넬리아 부부는 젊은 세대의 자유로움에서 청춘을 되찾고자 한다. 각자 자신에게 없는 것을 열망하고 있는 셈이다.
조쉬가 참지 못했던 것은 ‘척’하던 제이미의 행동이었을까, 아니면 자신보다 젊고, 재능 있는 존재를 향한 열등감이었을까. 조쉬는 제이미의 젊음과 재능을 좇느라 정작 자신의 삶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다.

영화 <위아영>은 중년의 불안과 청춘의 허세를 조명하며, 서로 다른 세대가 무엇을 욕망하고 두려워하는지 날카롭게 이야기한다. 그 사이에 낀 세대인 나는 두 인물 모두에게 깊이 공감했다. 제이미의 자유롭고 거침없는 삶을 보여 역시! 하며 살아있음을 느끼기도 하고, 시간이 쌓일수록 쉽게 놓을 수 없는 것들이 생겨난다는 조쉬의 마음도 처연하게 느껴진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순간을 아끼면서 시간의 흐름을 인정하는 태도라는 것을 느낀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은 그대로 인정하는 것.
결국 서로 다른 것이 틀린 것도, 악한 것도 아니라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할지 모른다.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모든 것을 아우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