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말실수로 시작된 유튜브 채널 뜬뜬의 <풍향고>는 백상예술대상에서 방송 부문 예능 작품상을 받았다. 애플리케이션과 예약 없이 떠나는 여행이라는 콘셉트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요즘 시대와 정반대되는 모습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결국 시즌 2까지 제작됐다. 시즌 2가 성황리에 종영된 후, 시즌 2의 멤버였던 지석진, 이성민, 유재석, 양세찬은 다시 모여 여행의 후일담을 나눴다.
그 과정에서 <풍향중>이 기획됐다. <풍향고>의 스핀 오프인 <풍향중>에는 NO 어플, NO 예약에 이어 NO 내비게이션, NO 고속도로라는 새로운 조건이 더해졌다. 개인적으로 <풍향고>를 재미있게 시청했던 만큼 <풍향중> 역시 기대하고 있었는데, 업로드된 영상은 전작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와 정반대되는 행보를 보이는 이 프로그램을 사람들은 왜 이렇게 즐겁게 시청하는 것일까.
가장 빠른 길이 가장 좋은 길은 아니다
SNS는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과 가까이 연결되고,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져왔다. 하지만 동시에 SNS의 확산으로 타인의 일상을 쉽게 볼 수 있게 되면서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기도 쉬워졌다. FOMO(Fear Of Missing Out)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어쩌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순간 하늘을 보지 않게 된 나 자신을 발견했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 달려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놓치는 것들이 생겼다. <풍향중>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만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잠시 주변을 돌아보라고 말해준다.
네 사람의 최종 목적지는 익산이었지만, 그들은 익산에 도착하는 과정에서 여러 지역을 거쳤다. 만약 고속도로를 타고 익산만을 향해 달렸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들이 그 과정에서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우연히 지나가다 들른 공세리성당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성당이었고, 젓갈이 맛있다는 이성민의 한마디로 들르게 된 강경에서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근대 거리를 발견했다. 목적지만을 향해 달렸다면 절대 만날 수 없던 풍경이다.
계획은 우리를 안심하게 만들지만, 그만큼 발견의 가능성을 줄이기도 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봐야 하는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미리 정해두면 실패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마주치는 풍경과 우연히 발견한 장소가 여행을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추억, 누군가에겐 낭만
초등학교 시절부터 터치폰과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자라온 나에게 아날로그 시대는 의문의 대상이었다. 옛날 드라마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가끔 오래된 드라마를 보다 보면 요즘에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들이 있다. 그때마다 부모님께 이것저것 질문하곤 했는데 그중에도 가장 궁금했던 것은 내비게이션 없이 다른 지역에 가는 방법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내비게이션이 있었기 때문에 지도만 보고 다른 지역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풍향중>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나의 의문 하나를 풀어주었다. 여러 지도를 펼쳐두고 비교하며 어느 국도를 타야 하는지 길을 찾는 모습은 지금의 나에게는 낯선 방식이었다.
요즘 세대에게 아날로그 문화는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과거다. 어쩌면 이것이 <풍향중>이 가진 또 다른 매력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경험해 보지 못한 낭만을 보여준다.
우리가 오래 기억하는 건 목적지보다는 길 위의 순간들이다
사실 나는 불확실성을 잘 견디지 못하는 편이다. 계획과 다른 상황이 펼쳐지는 것을 불안해하기 때문에 집 앞 카페에 갈 때도 카페 내부는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메뉴가 있는지 미리 찾아보는 편이다. 덕분에 대부분의 일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누군가와 여행을 떠날 때면 자연스럽게 가이드 역할을 맡게 된다. 하지만 모든 정보를 미리 알고 가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에디터 활동을 시작한 초반에는 공연을 보러 갈 때도 공연장은 어디에 있는지, 작품의 감독은 누구인지, 어떤 내용인지 하나하나 찾아보고 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작품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많이 알아버리는 것이 오히려 그 작품이 가진 매력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는 최소한의 정보만 확인하고 공연을 보러 가려고 한다. 물론 여전히 여행에서는 불확실성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 나에게 <풍향중>에서 보여준 네 사람의 모습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줬다. 오히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떠난 여행에서는 사소한 것 하나도 특별한 추억이 됐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 당황하는 순간보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터지는 웃음이 더 많아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풍향중>은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작은 용기를 건네는 프로그램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언제나 목적지를 향해 가장 빠른 길을 찾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가장 빠른 길이 가장 좋은 길은 아닐 것이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우연히 마주친 풍경을 보고, 계획에 없던 장소에 들르고, 예상하지 못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돌이켜보면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기억은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보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