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실패의 가능성을 알려준 드라마 [드라마/예능]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와 실패에 대하여
글 입력 2022.06.2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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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까지만 해도 나는 대담했다.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일단 해 봐야 직성이 풀렸다.

 

결과가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하지 않아도 시도해 봤다는 사실 자체가 흡족스러운 일도 많았다. 한 번 마음을 먹으면 곧바로 실행으로 옮겼다. 망설이다가 하고 싶은 일을 놓치게 된다면 후회할 것 같아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망설임이 생겼다. 실패가 두려워서 생긴 망설임이었다. 더는 대담할 수 없었고, 두려움이 생기면서 확신도 사라졌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잘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이리저리 망설이는 동안 시간은 흘렀고, 흘러간 시간을 보면서 더 초조하고 두려워했다.


괜히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답시고 시간만 보내다가 결국 실패하면 어떡하지?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떻게 보일까? 무엇보다 나 스스로의 실패를 견디고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 번 든 불안한 생각은 나를 끊임없는 불안의 고리로 이끌었다.



그때 만난 드라마가 바로 '콩트가 시작된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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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동창 세 명으로 이루어진 콩트 팀 '맥베스'는 결성된 지 10년을 앞두고 있지만 매번 프로그램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공연장의 절반도 관객으로 채우지 못한다. 정말 어떻게 보든 성공한 콩트 팀은 아니지만, 그들을 응원하는 열렬한 팬이 한 명 있다. 바로 직장을 그만두고 동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리호코다.


리호코는 맥베스가 자신이 아르바이트하는 레스토랑에 연습하러 온 날 이후로 그들의 정체를 알아보다 콩트 영상까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고, 맥베스는 어느덧 리호코의 일상의 일부가 됐다. 리호코는 이제 심심할 때마다 맥베스의 영상과 정보를 찾아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처음으로 간 맥베스의 공연에서, 리호코는 그들이 두 달 뒤 해체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맥베스의 세 명은 모두 팀을 결성하고 10년이 지나도 인기가 없으면 해체하기로 했는데, 이제 두 달 뒤면 그 10년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는 맥베스의 해체를 중심으로, 20대 후반인 다섯 명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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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화에서 결국 맥베스는 해체한다. 갑자기 맥베스가 메이저 TV 쇼 오디션에 붙는다거나, 인터넷상에서 맥베스의 콩트 영상이 엄청난 화제를 일으킨다거나 하는 기적은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맥베스의 각 멤버들은 해체 이후 콩트 연기와는 겉으로 보기에 전혀 관련 없는 길로 향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10년은 마냥 실패하기만 한 10년이었을까?

 

맥베스는 잘 되진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콩트 팀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오늘 걸을 수 있는 힘은 그들의 지난 10년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마지막 화는 여실히 보여준다. 그들의 10년은 결코 쓸모없고 버려진, 실패뿐인 10년이 아니었던 것이다.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는 내게 실패의 가능성을 알려주었다. 실패는 실패로만 남지 않는다. 단순히 성공하고 나서야 그때까지의 실패가 빛나는 게 아니라, 매 순간 실패는 나의 새로운 원동력이 되어준다. 마치 맥베스 멤버들과 그들의 해체 이후의 모습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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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오피니언은 내가 작년 이맘때 '콩트가 시작된다'를 보고 다이어리에 끄적였던 메모를 재구성한 글이다. 작년 6월은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아니면 정말 안전하고 보장된 일을 준비해야 할지 한창 고민하고 걱정하던 시기였다.


드라마가 그 시기 나에게 꽤 지대하게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하다. 나는 마음처럼 되지는 않지만, 그 이후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 보다 과감히 실패하고, 계속해서 실패를 원동력 삼아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모든 실패가 결국은 언젠가 나의 콩트 속 한 코너가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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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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