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팬덤’에 던지는 질문 [문화 전반]

어디까지가 올바른 팬 문화인가?
글 입력 2024.03.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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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작품을 아끼거나 어느 아티스트를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무언가, 혹은 특정 누군가에 대한 애호를 드러내고 열광적인 마음을 기반으로 관련 활동을 하는 집단을 팬덤이라고 한다. 열광하는 팬덤의 순수한 마음은 때로는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사랑의 형태가 순수하지만은 않은 것처럼 팬덤의 양상도 좋을 수만은 없다. 도를 넘은 반응, 예민한 질서, 과도한 이슈화. 팬덤, 팬 문화와 역할이 무엇이기에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안팎의 의견이 상충하며 잡음을 내는 팬덤 내의 문제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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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뮤지컬 팬덤 내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있다. 다른 관객들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를 일컫는 ‘관크’, 아무런 움직임 없이 관람하는 문화를 일컫는 ‘시체관극’. 관객들은 이 두 가지의 문화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연극이나 뮤지컬 등 공연은 현장성이 강한 콘텐츠다. 같은 넘버와 스토리일지라도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가 달라질 수 있고, 배우가 같다고 하더라도 무대 위 연기는 매 순간 같을 수 없다. 영상물을 복제하는 식의 영화나 드라마와 다르다. 오늘 본 공연은 다시 볼 수 없다. 그러므로 같은 작품을 여러 번 관람하고 배우의 손짓 하나, 숨소리 한 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니 팬덤 내에서는 휴대전화 불빛이나 대화 소리, 시야를 가리는 자세 등 관람에 방해가 되는 행위를 지양한다. 그것은 팬덤 내의 규칙이자 관람 매너로, 팬 문화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일부 관객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예민함의 정도가 지나칠 때는 옷이 마찰하는 소리조차 거슬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시체관극’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불편한 자세를 고치는 것까지 제지당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이것은 팬덤 밖의 외부인으로서 하는 말에 그칠 수도 있다. 배우, 작품을 사랑하는 팬덤의 ‘예민함’의 기준을 외부인이 정립할 수는 없다. 그래서 빈번하게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이것이 팬덤의 문화인지, 아니면 그저 강요일 뿐인지 답을 내리려고 한다.


그렇다면 묻겠다. 예민한 문화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은 공연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기반한 공연 팬덤의 문화를 고려한 후에 발화하고 있는가? 기본적인 움직임까지 제지하는 소수의 관객은 그것을 보편적인 팬 문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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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안팎의 사정이 다른 것은 비단 연극·뮤지컬 팬덤뿐만이 아니다. K-POP(이하 ‘케이팝’) 시장, 아이돌 팬덤 역시 그 문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팬이 아닌 사람들이 쉽게 얹는 말들과 팬이라는 이름으로 뱉는 비판이 상충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최근에도 불거진 ‘연애’ 관련 문제를 들 수 있다. 아이돌은 연애하면 안 되는가? 열애설에 휩싸인 아티스트는 사과문을 업로드하고 라이브 방송을 켜 사과를 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도 아닌데 아티스트는 비판을 넘어서 비난의 말을 듣기도 한다. ‘연애’에 ‘사과’가 뒤따르는 것이 맞는 것인가.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조차 지나치다는 평가를 받는 아이돌 팬덤의 반응은 정말 ‘문제’일까? 그 반응을 평가하기 이전에 아이돌이라 불리는 케이팝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 그리고 그 팬덤이 형성되고 지속될 수 있는 질서를 이해해야 한다.


케이팝 산업에서 셀링 포인트는 음악뿐이라고 할 수 없다. 공연, 음반 등 음악과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에 관련된 것들도 팬들에게 소구할 요소다. 그러므로 기획사는 스케줄의 비하인드를 담은 영상이나 특정한 컨셉으로 제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아티스트와 직접적인 소통을 할 수 있도록 팬 커뮤니티를 조성한다. 이러한 체계 속에서 팬덤 역시 보다 가까운 관계를 바란다. 아티스트의 음악뿐만 아니라 사소한 것들에 관심을 두고 그들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그러니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는 명료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공유하기도 한다. 애착의 관계가 이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여타 친구나 연인의 모양새를 닮기도 했다. 단조로운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다. 그들의 음악만을 사랑하는 것과도 다르다. 리스너, 혹은 음악 애호가보다 더 가까운 범주에 속한다. 팬들은 아티스트를 걱정하고 응원하고 사랑을 전하며, 아티스트는 그들을 향한 사랑으로 답한다. 그렇게 아티스트와 팬의 관계를 구축해간다. 이러한 관계를 전제로 하기에 ‘연애’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주제다. 연애는 관계를 구축할 시기에 끼어든 일종의 브레이크다. 이것이 이전 세대보다 자유로워졌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아이돌의 연애로 시끄러워지는 이유다.


연애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팬들이 많다. 그것은 케이팝 시장의 질서를 전제한 상황에서도 옳은 답변에 가깝다. 연애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케이팝 시장의 고착화된 질서를 알면서도 조심하지 않았다는 부분이 문제가 된다. 시끄러워질 것이 자명한 문제를 조심하지 않은 점은 책임감과 직결된다. 아이돌 그룹인 이상 한 멤버의 이슈는 팀에 영향을 미친다. 팬들은 그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실망감을 느낄 수 있고, 관계에서 희망을 잃는 것은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고작 연애’, ‘유난이다’, ‘지나치다’라는 평가는 어쩌면 제삼자이자 외부인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일 수 있다. 국내 케이팝 시장은 아티스트에 중점을 두고 셀링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여러 창구를 통해 아티스트와 팬들 사이에 깊은 감정적 교류가 발생하고 그를 기반으로 관계를 이어간다. 이러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연애에 대한 팬들의 반응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이탈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쉽게 평가할 수 없는 문제다.


‘아이돌은 언제쯤 자유롭게 연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케이팝 시장의 구조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기획사들의 셀링 포인트가 달라져야 하며 기존의 팬 문화를 뒤집어엎는 수준의 변화가 아니라면 제삼자가 주장하는 ‘자유’에 가까워질 수는 없다. 이는 아이돌의 연애에 뒤따르는 비난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 또한 아니다. 팬이라는 이름으로 비판을 가장한 비난을 쏟는 분위기는 자정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문제로 삼기에는 구조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잘못을 따지고 명확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는 문제로 바라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묻겠다. 과열된 현상으로 단정 짓는 이들은 과연 그들의 질서를 온전히 이해하고 발화하는 것인가? 아이돌의 연애를 문제 삼는 이들은 그것이 올바른 팬 문화라고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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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흑백논리라 할 수 있다. 분명 팬덤은 두 부류로만 나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지만 조금 더 나은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개선을 위해서는 극단적일지라도 질문을 던져보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어째서 문제인가?


 

[박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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