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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좋아하는 마음 - 바람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 [도서]

세상의 소음이 멈추는 곳, 나만의 미술관으로 오세요

by 정현승 에디터
2026.03.0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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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바람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 속

내용 일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폐허 더미 속에서 간신히 찾은 반짝거리는 것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 빛들은 자주 깜박거렸고 서로 모였다가 흩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미술관 앞뜰에 쌓인 눈처럼 어두웠던 마음을 점자 밝혀갔다. 그래서 이제는 현실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의 반짝임을 모으기 위해서 미술관에 간다. 어린 왕자가 지구별에서 여우를 만나고 비행사를 만났듯, 미술작품 속에서 나만의 설렘을 만난다. 


246p


 

어느 순간부터 좋아했던 스스로의 마음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때는 그렇게 좋았던 것들이 지금은 그다지 좋지 않은 나를 발견할 때 서러웠고, 그 서러운 마음을 감추기 위해 이것저것 집어 들었다가 그대로 공명하지 못하고 그럭저럭하게 살아갈 때 슬펐다는 말이다. 누군가의, 수십 년간 좋아하는 것을 지켜온 주름진 얼굴을 지켜볼 때나, 지글지글 익어가고만 있는 것 같은 열정과 애정을 바라볼 때면 내가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허나영 저의 『바람 부는 날이면 그림 속으로 숨는다』를 읽을 때도 그런 기분을 느꼈다. 순전히 미술이 좋아서 그림을 그리며, 글을 쓰고 강연대에 오르며, 그 많은 시간을 통과해 왔다는 저자를 마주할 때 불현듯 질투심이 생겼던 것도 같다.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저자의 인생 곳곳에 스며든 ‘미술작품’이라는 게 궁금해졌다. 함께 느껴보고 싶었다. 전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여러 서적도 좋지만, 문외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에디터 같은 독자에게는 일상적인 템포로 미술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벗이 되어줄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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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학과를 졸업해 미술학을 공부한 저자는 이번 책을 통해 “미술과 삶을 매개로 인간의 감정, 기억, 상처와 회복을 탐구해 나간다.” 예술 작품을 단순히 미적 대상이 아닌 한 시대를 살아낸 개인의 마음과 태도가 응축된 기록으로 바라본다는 부연 설명이 더해져 있다. 저자는 솔직한 자기 고백을 곁들여 삶에 대한 통찰을,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작품에 더해 자신만의 시선을 완성했다.


저자는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여는 글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조차 먹지 못하며 엄마이자 연구자로, 아내이자 자신으로 살아가야 했던 날들을 회상한다. 좋아하는 미술에 대해 수많은 글을 써왔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이야기는 꺼내지 못했던 저자가 용기 냈다는 이 책엔 그의 삶과 정서가 면밀하게 녹아들어 있다.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된다. ‘안개 낀 아침, 불안으로 마음이 일렁인다면’, ‘바람 부는 날, 스며드는 우울의 곁’, ‘구름 낀 날, 빛 아래 생긴 그늘’, ‘비 오는 날, 몸도 마음도 다 젖어버린 채’ 등으로 구성된 각 장에서는 두 명의 작가를 엮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예술가와 미술작품에 그리 가깝지 못한 에디터와 같은 독자도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이름부터, 새롭게 들어보는 이름까지 다양하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느껴지는 건 공감과 애정의 정서다. 누군가가 이 그림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고 사랑스럽게 바라보았고, 거기서 발견된 사랑으로 엮어 낸 책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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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도. 이미지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책의 마지막 장인 9장 ‘그리고, 해가 뜬다’에서 클로드 모네의 이야기와 함께 한국의 전통 회화인 길상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복을 그리는 마음”을 담은 민화이자 사람들이 “액운을 막고 행운을” 빌기 위해 그리고 보존하는 그림인 길상화를 마주하며 저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1장으로부터 9장까지 도달하며 그는 수많은 인생의 얼굴을 돌아보게 했다. 그와 함께 호흡하는 독자 역시 그렇다. 호퍼의 그림에서 외로움을 대신 느끼기도 하고, 모리조의 그림에서 여성으로 사는 삶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렘브란트의 그림에서는 고저를 알 수 없는 우리 인생의 아주 어두운 구석을 쳐다보게 되기도 할 것이다.


마침내 마지막 장에 도달한 저자는 길상화를 그렸던 수백년 전의 우리 조상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서로에게 안녕을 바라는 마음을 주고받던 풍습에서부터, 되돌려받는다고 보장할 수 없는 애정을 퍼주었던 자신을 본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느냐고 묻던 그에게 찾아온 사랑, 그의 딸이 보내준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는 눈물이 나올 것도 같다. 그 어린아이의 눈망울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사랑이라면, 미술관을 거닐다 어떤 작품이 보내온 마음 하나가 반짝이는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면.


예전에 좋아하는 시인의 낭독회에 참가해 그에게 삶의 원동력에 대해서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럴싸한 삶의 이유와 목적 같은 것에 목말라 있었던 나날이었던 것 같다. 그는 내 물음에 “시를 읽는 것”이라고 했다. 그 순간 느꼈던 경이로움과 애정 사이로 불쑥 자리했던 부러움을 이 책을 통해서도 슬며시 느낄 수 있었다.


직접 책을 읽기 전에는 “바람이 부는 날”에 “그림 속으로 숨”을 수 있다는 것이 내심 부럽기도 했다. 에디터 역시 스리슬쩍, 마음이라는 땅이 아주 건조해지는 날에는 미술관을 거닐어보기로 한다. 좋아했던 기억과 바랬던 마음에서 아주 작은 조각을 찾을 수 있을지,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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