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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ADHD 시리즈-2024-Oil Pastel on Panel 97 x 97cm_edit.jpg

이종희, <무제>, 

2024, Mixture on Panel, 97x97cm

 

 

작가를 작업의 길로 이끄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라면 누구나 받게 되는 이 질문에 이종희 작가는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고 답한다. 오래전부터 그는 스스로가 의문이었다. 다른 사람은 어렵지 않게 하는 일이 나에게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을 곱씹을 때,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못 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괴로웠다. 고민하던 그는 자신이 평소 어떤 표정을 짓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 자화상을 그렸다. 작가로서의 첫 작업이었다.


그때부터 이종희 작가는 작업을 삶의 일부로 계속해 왔다. 여러 작품이 쌓이는 동안 ADHD 진단을 받고 자신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되기도 했고, 회화가 아닌 입체 작업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지난 4월 13일부터 19일까지 갤러리 비브에서 열린 개인전 <구름 그림자(Cloud Shadow>는 이처럼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 그 모든 변화의 과정과 순간의 감각을 담았다. 지난 16일, 그를 만나 작업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볼 수 있었다. 앞으로도 그는 변화무쌍한 구름처럼 다양한 작업과 협업을 통해 자신을 탐구해 나가려 한다.

 

 

이종희 전경 1_edit.jpg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작가 이종희입니다. ADHD 증상으로 계속 방황하면서도 살아남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를 계속해서 새롭게 알아가는 중이기도 합니다. 작업을 통해 감정과 감각, 그리고 삶의 방식을 기록, 탐구하고 있어요.

 

 

이번 개인전을 열게 된 소감을 들려주세요.


다소 갑작스럽게 진행된 전시였지만 그만큼 더 집중해 준비했습니다. 작업은 자연스러운 제 삶의 일부이기에 평소에도 꾸준히 작업물을 쌓아가고 있는데요. 그러다 이번처럼 좋은 기회가 생기면 지금까지 해 왔던 작품들을 돌아보는 것이죠. 심사숙고해 고른 작품들이 하나의 전시로 완성되었다는 점이 만족스럽습니다.

 

 

개인전 제목이 ‘구름 그림자’인데요. 구름도 그림자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 먼저 떠올랐어요. 하물며 구름의 그림자는 더더욱 그 존재가 희미하게 느껴집니다. 이 제목은 어떻게 탄생한 것인지, 그리고 어떤 의미인지 들어보고 싶어요.


김단야 큐레이터님과 이번 전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구름이라는 단어가 나왔어요. 저는 사실 구름이 희미하고 두루뭉술해서 어떤 면에서는 안 좋은 의미로 쓰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좀 더 생각해 보니 구름의 변화무쌍함에 관심이 갔어요. 구름은 커지기도 하고 비를 내리기도 하고 바람에 사라지기도 하잖아요.


이번 개인전 작품들을 모아놓고 보니 계속 변하는 저 자신을 의심하고 그 변화를 좇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변화라는 키워드를 표현하기에 구름이 적절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변화하는 저와 제 작업을 포괄한다는 의미로 ‘구름 그림자’가 제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작품들도 고정된 하나의 형태보다는 계속해서 변하는 느낌과 감각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맞아요. 충동적인 순간의 감정과 감각을 담으려 한 작품이 많습니다. 또, 작업에 몰입하는 순간의 순수한 감정과 느낌 역시 최대한 생생하게 담아내고 싶었어요. 붓 같은 도구를 정교하게 사용하는 대신 손으로 직접 오일 파스텔을 캔버스에 문지르는 방식으로 작업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또 아크릴 물감을 사용할 때는 물감에 미디엄이나 페이스트를 섞은 다음 캔버스에 바르고, 다 마르면 거친 부분을 사포로 갈아내요. 이 모든 과정에서 작업자인 저는 강렬한 촉각적 경험을 하는데, 이 역시 그림에 담고 싶었죠.

 

 

‘무제’로 이름 붙인 작품이 많은 게 눈에 띄었는데, 그림을 특정한 단어에 고정시키고 싶지 않다는 의도인 걸까요?

 

처음 작업할 때는 주제도 제목도 분명한 작품들이 있었는데, 전시를 준비하며 작품을 고르고 나니 너무 명확한 제목은 관람객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그래서 무엇을 표현했을지 관람객이 상상해 보는 재미를 주자는 취지에서 ‘무제’로 결정된 작품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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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작품 중 작가님이 이번 전시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시거나 특별히 자세하게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지 들려주세요.


전시장 가장 가운데 위치한 ‘순수한 공허’를 꼽고 싶습니다. 박서보 화백의 ‘묘법’ 연작에 큰 영감을 받고, 저도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린 첫 번째 작품이에요. 박서보 화백이 ‘묘법’에서 선을 긋는 행위를 반복했다면 저는 원을 계속 쌓아가 보고 싶었죠.


막상 이 작품을 끝내고 보니 너무 단순하고 가볍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 전시에서는 볼 수 없지만 그다음 작품부터는 색도 추가하고 재료도 바꾸며 변화를 줬어요. 그 모든 과정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순수한 공허’를 보면 이 작품을 만들 때의 순수함이 떠올라서 좋아합니다. 형태나 색이 단순해 보여도 큰 화면을 채우고 작업하고 마무리하는 과정까지 포함하면 저만 아는 복잡함이 있다는 점에서 정이 가기도 하고요. 보면 볼수록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순수한 공허’도 그렇고 노란색이 두드러지는 작품이 많은데요, 노란색을 특별히 많이 사용하시는 이유가 있는지도 궁금해요.


작가로서 가장 처음 작업한 것이 제 초상화인데요. 당시 노란색 마젠타 화이트 세 가지 색만 사용했어요. 우울한 기분이 드는데 그걸 똑같이 어두운 색으로 표현하기보다 오히려 완전히 밝은 색으로 표현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고른 것이죠. 이왕이면 밝은 색으로 제 그림이 눈에 띄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그때부터 특히 노란색을 즐겨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노란색에 붙들린 느낌도 들었습니다. 저를 잘 표현하고 싶어 선택한 색에 제가 잡아먹히는 느낌이랄까요. 노란색이 대표 이미지처럼 굳어지니 왠지 앞으로도 노란색만 사용해야 할 것 같고…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재료를 바꿔보기도 했죠. 고민은 지금도 진행 중이에요. 한편으로는 노란색에도 다양한 의미가 있으니, 노란색을 쓰되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품들을 보고 있으니 평소 작가님이 자주 느끼는 감각 또는 감정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충동과 불안의 교차인 것 같습니다. 더 잘하고 싶어서 한 행동들이 시간이 지나고 보니 굳이 안 해도 될 행동들, 안 해도 될 말이었다는 걸 깨달을 때가 많아요. 그러고 나면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불안해집니다. 그걸 무작정 없애려 하기보다는 이해하고, 그 감정들과 함께 제 삶을 어떻게 구성할지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전시 작품 중에서도 달리 손톱, 입술 등의 신체 부위가 명확하게 표현된 작품들은 비교적 그런 불안이나 충동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듯해요.


맞아요. 신체 부위들은 제 안의 충동성이 드러나는 장면들을 표현한 것입니다. 어떤 말을 충동적으로 내뱉는 순간이나, 저도 모르게 손톱을 뜯는 행위 같은 것이요. 가까이 다가가면 실제로 캔버스를 손톱으로 뜯어낸 부분도 보실 수 있어요. 제 느낌을 최대한 직접적으로 관람객에게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동시에 저는 그런 순간들을 의식하고 조심하려는 기점까지도 함께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ADHD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제 충동성에 더 심한 죄책감을 느꼈는데, 그 당시의 심정이 많이 담겨 있어요. 아픔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도대체 나는 왜 힘든 건지 그 정체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죠.

 

 

이후 ADHD 진단을 받았다고 하셨어요. 진단이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작업을 시작한 것 자체가 ADHD와 연관이 있어요. 그때는 ADHD 때문인 줄 몰랐지만, 학교에 다닐 때부터 방황했거든요. 다른 친구들과 달리 한 가지 일을 길게 하지 못하고 수업을 듣는 것도 쉽지 않다 보니 나는 왜 이럴까, 지금 나의 상태를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자화상이 첫 작업이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제가 평소 어떤 표정을 하고 있고 거기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ADHD가 여러 미디어에서 가시화되면서부터 저도 혹시 ADHD 아닐까 의심을 했던 것 같아요. 생활에서 너무 불편한 게 많으니까,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병원에 갔고 진단을 받았죠. 그때부터는 ADHD를 공부하고 ADHD를 가진 나 자신을 탐구하며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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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작가님께 작업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결국 연결되는 이야기인데, 작업은 저 자신을 알아가는 방법이에요.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제가 누구인지 흐릿해지고, 삶에 의미가 없어질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작가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그 생각이 지금까지 저를 이끌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이 작업을 계속해 나가는 동기는 무엇인지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ADHD 청년으로 살아가며 제 생각과 느낌을 어떤 형태로든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큽니다. 지금으로서는 그 마음이 작업을 계속하는 큰 동기가 되어줍니다.

 

 

작가로서 요즘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어떻게 하면 미술시장의 이 다양한 작가들 사이에서 나 자신을 표현하는 작품을 계속 만들어갈 수 있는지가 제 요즘 화두입니다. 한편으로는 작가로서 삶을 중지하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도 하게 되어요.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니까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 또는 일정을 들려주세요.


관심 있는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회화로만 저를 정의하기보다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어요. 협업도 많이 하고 싶고요. 저는 너무 엄숙하고 딱딱한 전시보다는 관람객이 작품을 만져보고 참여도 할 수 있는 전시를 좋아해요. 실제로 제 전시를 보러 와서도 이렇게도 전시를 볼 수 있구나 즐거워했으면 좋겠고요.


회화 위주인 작품들은 그런 식으로 관람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앞으로는 다른 방식의 작업도 해보려 해요. 이번 전시에 오신 분들은 보셨을 텐데, 전시장에 회화가 아닌 작품이 딱 하나 있어요. 벽에 기대어 있어서 작품인 줄 모를 수도 있을 텐데 만져보고 들어볼 수도 있거든요. 이런 입체 조형물을 시작으로 더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제가 표현하고 싶은 바를 표현하면서도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는 형태를 고민하며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가려 합니다.

 

 

*사진: 김단야 큐레이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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