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내가 나와 만나기 까지 - 2

성격을 발굴 중입니다.
글 입력 2023.03.2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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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휴식이 필요해요.


  

전공과 사람의 일로 치이던 나는 코로나가 퍼지면서 휴학계를 냈다. 다이렉트로 졸업한 언니를 보며 가족들은 나도 휴학을 안 했으면 하는 눈치였지만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었다.

 

휴학을 하고 일단 수술부터 했다. 다친 지 오래되었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던 발목이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었는지 수술을 권하기에 얼른 해버렸다. 발목이 회복될 때까지 거동이 불편했기에 거의 침대에서만 보냈다. 약을 위해 아침에 맞춰 일어나고 삼시 세끼를 모두 챙겨 먹고 약 기운에 중간중간 낮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가족들에게 부탁해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빌려 보았다. 전공책도 아니고 참고서도 아닌, 내가 좋아하는 책을 잔뜩 봤다.

 

어느 정도 움직일 정도로 회복이 되자 나는 활동하기 시작했다. 취미였던 그림을 다시 그렸고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었으며 전공이 아닌 해보고 싶었던 공부를 위해 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사회성이 떨어지는 건 막아보려 주말에 하던 알바도 평일로 옮겼다. 몸을 챙기기 위해 만든 규칙적인 생활은 피폐했던 정신까지 회복시켜 주었다. 무엇을 해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팍팍했던 생활이 아닌 이 여유로운 생활은 그동안 보지 못한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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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아이가 되고 싶어요.


  

나는 삼 남매의 둘째다. 위로는 언니, 아래로는 남동생. 그러다 보니 뭣도 모르는 나이에 나와 언니는 '누나'가 되었고 더 나아가 '착한 누나'가 되어야 했다. 기왕 될 거면 좋은 모습인 누가 되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때는 착한 게 좋은 건 줄 알았다) 동생이 필요한 물건들을 심부름하고 울지 않게 놀아주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동생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얌전하고 말 잘 듣는 아이가 되어야 했다. 그래야 어른들이 어린 동생을 잘 돌볼 수 있으니까.

 

집안에서는 착한 누나였다면 밖으로 가면 '착한 동생'이 되어야 했다. 언니와 나는 집에서 좀 먼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각자의 사정으로 우리를 데려다 줄 수 없었던 어른들은 나를 언니에게 맡겼다. 나를 데리고 다니는 언니에게 짐이 되지 않게 나는 또 얌전하게 튀지 않게 언니를 따라다녔다. 혹여나 언니가 짜증 낼까 조심하면서. 학교에 가서도 언니를 아는 선생님들이 많으니 행동이 절로 조심스러워졌다. 모범생이었던 언니를 따르는 동생. 언니를 따라 공부를 열심히 했고 선생님들께도 예의 바르게, 친구들에게도 좋은 모습만 보여주도록 노력했다. 칭찬받고 싶었으니까. 늘 그렇게 행동하면 착한 아이가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으니까.


그 결과 나는 남 눈치를 엄청나게 보는 소심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원래 눈치가 없는 편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비꼬기 위해 하는 말 같은 것은 여태 잘 알아채지 못하지만, 사람의 감정 변화는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게 되었다. 기준에 모자란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게 무척 창피해했다.

 

완벽한 모습을 보이지 못할 것 같으면 앞에 잘 나서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앞 편에서 말했던 것처럼 존재감이 흐릿해졌다. '너 거기 있었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흐릿해도 뒤에서 열심히 하면 누군가 알아줄 거로 생각했다. 그걸 홀랑 뺏기기 전까지 말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규칙을 강박적으로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학칙이나 윗선에서 명령이 내려졌을 때 그것을 강박적으로 지키려 했다. 일을 하다 내가 생각한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으면 짜증이 났다. 원하는 순서대로 꼭 되어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생각지 못한 변수로 어그러지는 것은 싫었다. 그렇게 눈치 없고 장난을 좋아하던 아이는 남 눈치를 보고 제때 목소리 내지 못하고 강박적이고 예민하게 변했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큰 일 날 것 같았다. 이것이 내가 원하던 나였던 걸까?

 

 

 

빨강과 파랑


  

휴학을 하고 푹 쉬어서 일까?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사람이 관대해졌다. 사고가 유연해졌고 누군가 사고를 쳐도 '그럴 수 있지.'하고 넘어 가게 되었다. 예민하게 굴었던 과거가 새삼스러웠다. 그러던 중 보았던 색깔 사주에서 나는 내가 가진 색과 밖에 보여주려는 색이 정 반대라는 걸 알게 되었다. 빨강과 파랑. 충동적으로 즉흥적인 사람이 규칙에 얽매이고 완벽해보이려고 하는 데에서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했다. 정말 귀신 같이 잘 맞아서 소름이 돋았다.

 

그걸 받고 나오면서 자신에게 스트레스 받을 바에는 조금씩 바꿔보자고 생각했다. 예민한 성격도 다소 누그러뜨리지 않았는가? 그 후 나는 조금씩 사람의 눈치를 덜 보기 시작했다. 꼭 눈치를 봐야 할 때만 눈치를 보고 행동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난 나는 그들이 모두 나를 보지도, 좋아해 주지도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좋은 모습을 보이고 착하게 대해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꼭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꼭 그들의 눈치를 보며 맞춰줄 필요가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행동해 보았다. 아닌 건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했고 하고 싶은게 있다면 그냥 말했다. 집에서나 하던 행동을 밖에서도 해 보았고 완벽하지 않아도 내가 해보고 싶은 대로 행동해보기도 했다. 속이 시원했다. 더 이상 착한 아이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남에게 맞추려고 노력하던 시절 보다 항상 완벽하지는 않아도 항상 당당한 내 자신이 마음에 들었다.

 

더 이상 내 자신을 옭아매고 싶지 않았다. 내가 조금씩 변하자 '변했다.'며 떠나는 사람도 생겼다.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전보다 크게 상처받지는 않았다. 나를 갉아먹는 부분을 조금씩 떼어 냈다. 원석도 겉에 불필요한 부분을 떼어 내야 보석이 되는 것처럼 갈고 깨어 냈다. 그러니 내가 모르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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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나를 옭아매는 모습을 조금씩 걷어 내고 나니 그 속에서 무언가가 보였다. 장점들이었다. 그 전에는 누구보다 칭찬이 고팠지만 막상 칭찬을 받으면 쑥스러워서 부정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나의 단점도 많았는데 장점이라고 없어야할 이유가 있을까?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내 장점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스스로가 성취감을 느낄만한 일들을 하며 자존감을 끌어올렸고 상담을 하면서 나의 좋은 점이 있는지 알아내기도 했다. 그랬더니 쑥스럽다는 이유로 나를 깎아 내릴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좀 잘났는데 무슨 문제 있어? 나는 나에게서 떼어낸 것들이 었었던 부분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나는 눈치를 많이 봐온 만큼 무언가를 챙기고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람의 감정을 빠르게 알아 차리는 만큼 세심한 공감과 조언을 할 수 있었고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 하는 예민함은 나를 체계적이고 멀리 내다 볼 수 있는 시야를 주었다. 그리고 자신감이 붙은 나는 나를 따르는 사람들을 이끌고 책임지는 성격도 강하더라. 존재감이 흐릿했던 과거의 내가 봤다면 놀랐을 모습이었다. 


더 빨리 내가 가진 것들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시절이 너무 아쉬웠다. 그럼에도 지금이라도 알아차린 것에 감사하기도 하다. 나는 내가 어떤 성격인지, 나쁜 점만 있는 것 같아 우울하기도 했지만 다시 보고 있으니 나에게도 좋은 점이 가득한 것 같아 기뻤다. 내 모습의 간극에 대해서는 무척 고민이 많았다. 내가 이중적인것 같았고 모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보석의 컷팅 다르게 해서 다른 보석처럼 보인다고 한들 그것이 다른 광물이 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나라는 사람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다르게 보인다는 걸 알았고 좋고 나쁜 모든 모습이 내 모습이라는 걸 이제는 인정했기에 사춘기의 가장 큰 고민은 거의 해결된 상태다. 나는 나이를 먹어가며 깎아내기도 할 것이고 덧붙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모습도 품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나니까 말이다.

 

 

 

 

[빈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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