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내가 나와 만나기까지- 3

좋아하는 걸 모르고 살기엔 인생이 아깝지 않아?
글 입력 2023.05.29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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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다는 건 어떤 걸까?


 

초등학교 1학년, 교실 뒤편을 장식하기 위해 자기소개 표를 쓰는데 좋아하는 것이라는 칸에 사과라고 썼었다. 그런데 왔다 갔다 종이를 볼 때마다 나는 정말 사과를 좋아하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때로는 좋지만 때로는 싫을 때도 있다. 좋아한 정도가 변하는 대상을 남들 앞에서 좋아한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정말 좋아하는 게 맞는 걸까?

 

'좋아하는 것'이라는 개념에 대해 오래도록 고민했다. 지금은 좋아하지만, 나중에 싫어진다면 그것은 좋아하는 게 맞는 걸까. 누군가 '너 이거보다 다른 거 더 좋아하잖아? 그럼, 이거 좋아한다고 말 못 하는 거 아니야?'라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좋아하는 게 생겨도 잘 표현하지 않았다. 속으로 혼자서. 누군가에게 내가 좋아하는 걸 잘 보여주지 않았다.

 

학교생활을 하며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닌 다른 선택지를 더 많이 선택할 일이 많아졌다. 남들과 다른 걸 좋아해도 다수결을 따라갔다. 그게 결정을 내기 편했고 그들과 통한다는 소속감 같은 게 생겼다. 나쁘지 않다. 괜찮다. 하지만 좋은가? 하면 모르겠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게 되었다. 흐릿했다. 다수결에 따라 이렇게 흐릿하게 결정하는 게 맞는 걸까? 이러다 진로도 결혼도 대충 성적 따라, 부모님 원하는 대로, 남들 따라 '무난하게' 하는 게 정말 내가 원하던 것이었을까. 그 생각을 들자,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난하게? 좋지, 평범한 게 제일 좋다고들 하니까. 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적어도 큰 결정을 내릴 때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내릴 수 있게 내가 좋아하는 걸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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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거 좋아하는 거 같아요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좋아한다고 인정하기. 나는 남의 눈치를 너무 많이 봤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취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고 그들의 눈에 띄어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좋아하는 걸 숨기다 내 자신에게까지 숨기게 되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게 죄지은 것도 아닌 데 숨겨야 할 이유가 있나?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하기가 부끄러웠는데 이제는 생일 카페도 가고 수록곡도 듣고 예능도 찾아본다. 그들이 주는 에너지가 좋았고 매일을 살아갈 힘이 되어주었다. 이차 성징이 일어나면서 성장이 제각기 달라지다 보니 더 이상 옷을 물려받지 않게 되었다.

 

이제 스스로 원하는 옷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유행을 따라 사기보다는 정말 마음에 드는 옷들로 옷장을 채웠다. 어릴 적에는 여성스러움을 강조시키는 옷이 크고 나니 그렇게 싫지도 않았다. 바지만 입고 다녔던 사실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치마도 자주 입었고 입기 싫어 한숨부터 쉬던 레이스 달린 옷도 요즘은 괜찮았다. 이런 옷도 사실 조금은 좋아했던 걸까?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는 좋아하는 걸 인정하고 모으기 시작했다. 주위가 좋아하는 거로 점점 채워지더니 어느새 가득 차 있었다.예전에는 장점보다는 단점을 봤다. 하지만 이제는 장점을 먼저 본다. 지금은 마음에 안 들어도 나중에는 좋아질 수 있으니까. 물건이든 사람이든 항상 좋은 점을 찾아내려고 하고 있다.

 

좋아하는 걸로 내 주위를 채워 나가자, 내 취향이 보였다. 좋아하는 색은 연두색과 하늘색. 자주 쓰는 필기구부터 옷, 가구까지. 기왕이면 발품을 팔아서 좋아하는 색으로 골랐고 그게 안 된다면 어울리는 색으로 구했다. 옷은 단정한 듯하면서 편한 옷. 그러면서도 끝에 레이스가 달린 옷. 무지나 체크무늬가 좋고 니트와 셔츠, 무릎까지 오는 원피스가 좋다. 가사가 예쁜 노래가 좋고 밴드 음향이 들어간 통통 튀는 노래거나 청량한 노래가 좋다. 영화는 애니메이션, 책은 판타지가 가미된 가벼운 소설이 좋다. 재밌지만 선은 지켜주는 사람이 좋았다.

 

좋아하는 걸로 나를 만들었다. 누군가가 이걸 보았을 때 나를 떠올릴 수 있도록.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내 개성이 될 수 있도록.

 

 

 

표현하고 도전해!


 

영원한 건 없다는 듯 내가 좋아하던 것들도 영원히 나와 함께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카페도, 아껴서 보던 아마추어 작가의 웹툰도, 사려고 마음먹었던 소설 시리즈도 절판되어 사라져 버린다.

 

언젠가 사라져 버릴 것이라면 최선을 다해 좋아하는 걸 표현해야겠다는 걸 느꼈다.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되는 것처럼 살 수 있는 거라면 구매했고 장소라면 기회가 될 때마다 방문했고 작품이라면 감상평을 남기거나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곤 했다. 좋아하는 것들에게 애정을 표현했다. 언젠가 사라져도 아쉽지 않도록.

 

추천하다 보면 나한테도 여러 가지 권유가 들어오곤 하는데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보거나 중도에 그만두었던 것들에 다시 도전해 본다. 정체되어 있다가는 고여버릴지도 모르니까. 내가 몰랐던 내 호불호를 알아가며 내 세상을 넓히고 싶다. 좋아하는 게 가득한 세상이 얼마나 멋진지 알았으니까!

 

 

[빈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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