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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나를 지키는 [문학]

守吾齋記

by 한정아 에디터
2026.08.3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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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고등학교 3학년, 수특 공부 하던 시절 내 마음 속에 깊이 박혔던 글이 있다. 다산 정약용의 수오재기. 큰형님의 서재 이름인 “수오재”의 의미에 대해 써내린 자성적인 수필이다.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 때면 종종 꺼내보는 글이다.

     


    1.

    수오재(守吾齋)라는 것은 큰 형님이 그 거실에 붙인 이름이다. 나는 처음에 의심하며 말하기를, “사물이 나와 굳게 맺어져 있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는 나[吾]보다 절실한 것이 없으니, 비록 지키지 않더라도 어디로 갈 것인가. 이상한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내가 장기(長鬐)로 귀양 온 이후 홀로 지내면서 정밀하게 생각해 보았더니, 하루는 갑자기 이러한 의문점에 대해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스스로 말하기를, “대체로 천하의 만물이란 모두 지킬 수는 없고, 오직 나[吾]만은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이다. 내 밭을 지고 도망갈 자가 있는가? 그러니 밭은 지킬 것이 없다. 내 집을 지고 달아날 자가 있는가? 그러니 집은 지킬 것이 없다. 나의 정원의 꽃과 과실나무 등 여러 나무들을 뽑아갈 자가 있는가? 그 뿌리가 땅에 깊이 박혀 있다. 나의 책을 훔쳐 없애버릴 자가 있는가? 성현(聖賢)의 경전(經典)이 세상에 널리 퍼지기를 물이나 불과 같은데, 누가 능히 없앨 수 있겠는가? 나의 옷과 식량을 도둑질하여 나를 군색하게 하겠는가? 지금 대저 천하의 실이 모두 내가 입을 옷이며, 천하의 곡식은 모두 내가 먹을 양식이다. 도둑이 비록 한두 개를 훔쳐가더라도, 천하의 모든 옷과 곡식을 모두 없앨 수 있겠는가. 그런즉 천하의 만물은 모두 지킬 것이 없다.

     

    오직 이른바 나[吾]라는 것은 그 성품이 달아나기를 잘하여 드나듦에 일정함이 없다. 아주 친밀하게 붙어 있어서 서로 배반하지 못할 것 같으나, 잠시라도 살피지 않으면 어느 곳이든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이익과 작록(爵祿: 벼슬)으로 유인하면 가버리고, 위엄(威嚴)과 재화(災禍)가 겁을 주면 가버리며,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음악소리만 들려도 가버리고, 새까만 눈썹에 흰 이빨의 미인의 요염한 모습만 보아도 가버린다. 그런데, 한 번 가면 돌아올 줄을 모르니 붙잡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천하에서 가장 잃어버리기 쉬운 것으로는 나[吾]같은 것이 없다. 어찌 실과 끈으로 잡아매고 빗장과 걸쇠로 잠가서 굳게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나[吾]를 잘못 간직했다가 나[吾]를 잃은 자이다. 어렸을 때에는 과거(科擧)에 급제하는 명예가 좋게 보여서 과거 공부에 빠진 것이 10년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처지가 바뀌어 조정에 나아가 검은 사모[烏帽]을 쓰고 비단도포를 입고 미친 듯이 대낮에 큰길을 뛰어다녔는데, 이와 같이 하기를 12년이었다. 또 처지가 바뀌어(유배의 몸이 되어) 한강(漢江)을 건너고 조령(鳥嶺)을 넘어, 친척들과 멀어지고 분묘(墳墓: 조상의 先塋)를 버리고 곧바로 아득한 바닷가의 대나무 숲(첫 유배지인 포항의 長鬐)에 달려와서야 멈추게 되었다. 이때에는 나[吾]도 땀이 흐르고 두려워 숨을 죽이면서, 내 발뒤꿈치가 함께 이곳에 오게 되었다. 내가 나[吾]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는가? 여우나 도깨비가 끌어서 온 것인가? 또는 해신(海神)이 불러서 온 것인가? 그대의 집과 고향은 모두 초천(苕川)에 있는데, 어찌 그 본향(本鄕)으로 돌아가지 않는가?”라고 했다. 그러나 끝끝내 나[吾]라는 것은 멍한 채로 움직이지 않으며 돌아갈 줄을 몰랐다. 그 얼굴빛을 보니 마치 얽매인 것이 있어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끝내 붙잡아서 함께 머물렀다. 이때 나의 둘째 형님 좌랑공(佐郞公)도 그의 나[吾]를 잃고 나를 따라 남해(南海)로 왔으니, 역시 나[吾]를 붙잡아서 그곳(유배지)에 머물렀다. 오직 나의 큰 형님만은 그 나[吾]를 잃지 않고 편안하고 단정하게 수오재(守吾齋)에 앉아 계시니, 어찌 본디부터 지키는 것이 있어 나[吾]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큰형님께서 그의 거실에 이름붙인 까닭일 것이다.

     

    큰형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나에게 태현(太玄)이라고 자(字)를 지어주셨으니, 나는 오로지 나의 태현[吾]을 지키고자, 이것으로써 나의 거실에 이름을 붙였다.”라고 하시지만, 이것은 핑계 대는 말씀이다.


    맹자(孟子)가 이르되, “지킴은 무엇이 큰가? 몸을 지키는 것이 크다.”라고 하였으니, 그 말씀이 진실하다.

     

    드디어 내 스스로 말한 것으로써 큰형님께 보이고 수오재의 기(記)로 삼는다.

     

    * 네이버 지식 백과 출처 

     


    3.

    어렵지 않은 글이다.

     

    천하의 만물은 천하에 있기에 지킬 필요가 없지만

    나는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음악소리만 들려도, 

    새까만 눈썹과 흰 이빨의 미인만 보아도, 

    쉽게 도망가버린다.

    한 번 가면 돌아올 줄을 몰라 붙잡을 수도 없다. 

     

    그러니 실과 끈으로 잡아매고 빗장과 걸쇠로 잠가서 꼭꼭 지켜야한다. 


     

    4. 

     

    ... 비단도포를 입고 미친 듯이 대낮에 큰길을 뛰어다녔는데, 이와 같이 하기를 12년이었다. 또 처지가 바뀌어(유배의 몸이 되어) 한강(漢江)을 건너고 조령(鳥嶺)을 넘어, 친척들과 멀어지고 분묘(墳墓: 조상의 先塋)를 버리고 곧바로 아득한 바닷가의 대나무 숲(첫 유배지인 포항의 長鬐)에 달려와서야 멈추게 되었다. 이때에는 나[吾]도 땀이 흐르고 두려워 숨을 죽이면서, 내 발뒤꿈치가 함께 이곳에 오게 되었다. 내가 나[吾]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는가? 여우나 도깨비가 끌어서 온 것인가? 또는 해신(海神)이 불러서 온 것인가? 그대의 집과 고향은 모두 초천(苕川)에 있는데, 어찌 그 본향(本鄕)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

     

     

    처음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기분이 들었다.

     

    독서실에 박혀 수능 공부를 하던 열아홉의 나는 한순간에 대나무 숲 한가운데 땀을 흘리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악몽처럼 다시 대나무 숲에 다다를 때면 이 글이 생각난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는가?

     

    여우나 도깨비가 끌어서 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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