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행하는 나혜석② [도서/문학]

<구미만유기>로 나혜석 톺아보기
글 입력 2024.09.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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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 여행하는 나혜석①

 

 

나혜석은 “남녀 간에 어찌하면 평화스럽게 살까?” “여자의 지위는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두고 구미 여행을 떠난 만큼 나혜석의 구미 여행은 여성과 가족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했다. 실제로 나혜석은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가에게 여성해방에 대한 질의를 하거나, 세 아이를 키우면서 여성참정권 단체의 회원으로 활동하는 프랑스 부인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등 구미 여성의 활동과 여성해방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구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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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이 여행한 여러 장소 중에서도 프랑스 파리는 그녀의 구미 여행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장소로 꼽히는데, 그녀의 여행기를 두 가지 측면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식민지 조선 여성이라는 나혜석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프랑스 파리의 삶을 해석하는 것이다. 그녀는 구미 여행 중 실제로 프랑스의 한 가정에 머물며 생활한 적이 있는데,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스 여성을 여행기에 소개했다. 그녀는 프랑스 여성이 가정 내에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완벽하게 자기 맡은 바 역할을 수행하고, 자신만을 위한 여가 생활도 당당하게 즐기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나아가 그녀는 선진적인 구미 여성에 대한 존경을 표하며 조선 여성들을 향해 배우고 따라 하자고 제안하는데, 이는 곧 제국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을 받은 이항 대립적 인식이 드러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나혜석이 서구 여성을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규정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서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나혜석의 서구에 대한 범주는 ‘서구식 가정’을 표방하는 만주, 하얼빈까지 포함하는 나혜석에 의해 ‘상상된’ 서구다. 따라서 현대의 지리적 관점과도, 동시대 식민지 지식인들과의 인식과도 차별성을 둔다.

 

두 번째로 서양화가라는 나혜석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프랑스 파리의 삶에 대한 문화 지리적인 분석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단지 식민지 여성이라는 인식을 넘어 파리의 지리적 맥락과 서양화가로서의 나혜석이 텍스트에 재현한 공간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나혜석에게 파리는 관광객의 시선으로 바라봤던 다른 도시와 달리, 서양화가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확인하게 하는 장소였다. 다른 조선 여행자들과 달리 나혜석은 예술을 배우기 위해 파리에서 8개월간 체류했던 만큼, 파리의 진면목은 예술에 있었다고 평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른 유럽 도시로 여행을 떠났을 때도 나혜석은 다른 지역의 건축이나 미술관의 특징을 늘 파리와 비교하고, 여행 끝에 다시 파리로 돌아오며 파리에 대한 소속감을 공고히 키웠다. 나혜석이 발표한 파리의 화가 생활에 대한 글은 창작자로서 파리의 내부자적 시선을 드러내고 있고, 이후 사회적 비난을 겪으며 파리가 절대적인 이상향이자 현실과 극명히 다른 이상을 심어준 역설적 장소로 자리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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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귀국 후에 그녀는 최린과의 불륜관계와 남편 김우영과의 이혼으로 인해 인생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데, 가정의 해체를 겪은 나혜석은 조선 사회와 남성의 몰이해에 대한 반작용으로 서구 여성의 삶과 가족제도를 향한 과도한 동경이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나혜석이 구미여행에서 얻게 된 답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나혜석의 여성해방론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녀가 얻은 답은 남녀 관계의 평등화, 가사노동의 효율화, 취미의 생활화라는 세가지 측면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이는 앞서 프랑스 여성을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규정한 것과 맥락을 함께하는데, 남녀, 어른 아이 구분 없이 가사에 동참시키는 모습을 인상 깊게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럽에서 남녀 모두가 자유연애와 자유결혼이 가능하고 결혼 후에도 자유로운 교제가 존재하는 것을 목격하며 조선 여성에게도 성의 자유를 쥐여 주고자 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 즐기는 영화, 연극과 같은 취미는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여성의 해방과 평등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엿볼 수 있다.

 

나아가 구미 여성에 대해서도 가정에서는 주부와 아내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사회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존재로 서술하며 선진인 구미 여성을 전형적인 슈퍼우먼으로 동경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나혜석을 비롯한 급진주의 신여성이 여성의 경제적, 사회적 활동을 옹호하는 데 일정 부분 배경이 되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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