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취향이 없어도 아름다운
취향이란 무엇일까요?
한쪽에서는 취향이란 자본주의가 주입한 필요와 가짜 욕망이 충동질하는 소비 성향이라고 말합니다. 취향이란 고작해야 교묘한 알고리즘과 치밀한 마케팅 전략에 잠식당해 터질 듯 가득 채운 '장바구니'에 불과하다고요. 취향의 품격은 취향을 실천할 수 있는 재력이 결정한다고요.
영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취할지, 취하지 않을지 고를 수 있는 여유는 사치스러운 일입니다. 일단 돈이 없으면 고를 수 있는 것이 적어집니다. 그리고 돈이 없으면 절대 실패하지 않을, 안전한 선택만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취향을 기르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낭비'가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을 걸러내는 시행착오의 시간이 필요하죠. 즉, 돈은 '실패할 여유'를 구매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돈이 없으면 우리는 과정을 즐길 여유가 없습니다. "내가 이 옷을 좋아할까?"를 고민하는 대신 "이 옷이 유행을 안 타고 오래갈까?"를 먼저 묻습니다. 경험이라는 무형의 가치보다 '효용'이라는 확실한 결과물에 집착하게 되죠.
그렇게 안전한 선택은 중력처럼 작용합니다. 중력은 우리를 지구의 땅에 발 딛고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안전한 선택이라는 중력은 우리가 새로운 도전이나 모험적 선택을 하려 할 때 "정말 괜찮겠어?"라고 속삭이며 우리를 다시 현실의 지표면으로 끌어내립니다. 마음이 들떠서 훨훨 날아가고 싶을 때, 안전한 선택이라는 중력은 우리의 발목을 묵직하게 붙잡습니다. 중력은 예측 가능한 물리 법칙이기도 합니다. 계산이 가능하고 인과관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안전한 세계입니다. 하지만 안전한 선택 그 너머에 있는 취향의 세계는 예측이 어렵습니다. 중력의 세계에 익숙해질수록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은 위험이 되어버려요.
그렇게, ‘안전한 선택’은 우리를 현실에 발 딛고 ‘살아가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돈 때문에 포기했던 기회들과 기회를 엿보면서 웅크리고 있어야 했던 시간은 비굴함이 아니라 존엄한 인내였습니다. 새로울 것도 없는 지루한 일상을 버티고 지켜낸 하루 끝에는 아무것도 없을지 모르지만, 일주일 끝에는 뿌듯함이, 한 달 끝에는 자부심이, 인생 끝에는 긍지가 남습니다. 그래서 ‘살아간다’는 말은 아름답습니다. 취향이 없어도요.
2. 취향은 자기를 돌보는 방법
그런데 저는 어떤 중년 여자의 취향을 잘은 몰라도 약간은 압니다. 그녀는 빨간색을 좋아해요. 빨강에도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을 건데, 그녀는 정말 채도가 높고 쨍쨍한, 화려한 빨강을 좋아합니다. 저 멀리서 봐도 모든 사람의 시선을 낚아채는, 그런 빨강을요. 그녀가 좋아하는 옷에는 모두 빨간색이 있습니다.
그녀는 꽃을 좋아합니다. 꽃의 형상을 흉내만 낸 어설픈 조화도 그녀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뻐합니다. 조화는 흙이랑 화분이 필요가 없는데도 그녀는 굳이 흙을 채운 작은 화분에 꽃을 심습니다. 물은 주지 않아도요.
손재주가 많아서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작은 비즈를 꿰어서 반지나 팔찌를 만들 때도 있고, 앙금 떡 케이크를 만들기도 해요. 케이크를 만들려면 쌀가루도 빻아야 하고, 앙금도 쑤어야 하고 손이 여간 많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거친 가죽을 다듬어서 바늘을 한 코 한 코 꿰어서 가방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녀가 털실을 꿰어서 만들어 준 초록색 네잎클로버 책갈피는 참 예뻤습니다.
여러분도 이제 눈치채셨겠지만 그녀는 돈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 엄마는 평생을 사치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좀 귀엽죠. 그리고 사랑스럽습니다. 인생네컷을 찍으러 가서 꼭 빨간색 가발이나 빨간색 선글라스를 고집하는 것은 아주 그녀답고, 그녀다운 선택을 할 때 그녀는 쉽게 행복해집니다.
평생을 사치 모르고 산 사람이 어떻게 쉽게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요. 제 생각에는 오히려, 돈이 많지 않은 사람이 자기를 돌보는 방법이 취향이에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빨간색을 고르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조화에 흙을 채우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가죽을 한 코씩 꿰는 것. 그 선택들이 엄마를 행복하게 만든 거예요. 그것들은 전부 엄마가 엄마 자신에게 준 선물이었어요. 취향이란 그런 거예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자기가 골라서 자기에게 주는 것. 내가 나를 아껴 주는 방식. 그게 ‘자기 돌봄’이고요.
3. 취향은 다른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
생일 선물에 진심인 편이에요. 지인들에게 미안하지만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주고받는 선물에는 '서로의 취향'이라는 보드라운 포장지가 없어서, 뜯어보는 재미가 없습니다. 커피 전문점의 기프티콘은 서로의 우정에 가격표를 붙여버리는 것 같아요. 작년엔 내가 얼마짜리를 받았더라 떠올리게 됩니다. 너무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가격의,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브랜드의 핸드워시나 핸드크림은 또 얼마나 자주 받는 선물인가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무난하게 선물하기 좋은 선물이란 사실은 아무에게도 감동을 주지 못하는 선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일에는 아주 골똘히 생각에 잠깁니다. 그와 그녀의 취향은 뭐였더라?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려봐요. 그와 그녀가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 눈빛이 빛났는지, 그와 그녀가 어떤 장소에 갔었다고 했었는지, 그와 그녀가 평소에 구매하고 착용하고 다니던 아이템들은 무엇이었는지, 조금 더 과학적으로 그와 그녀의 MBTI와 별자리, 혈액형까지 다 탈탈 털어봐요. 이렇게 그와 그녀의 취향의 편린들을 복기하며, 카카오톡 선물하기의 알고리즘이 절대 찾아내지 못할 선물을 준비하는 것은 저의 즐거움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제가 그들에게 선물하는 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내가 당신에게 이토록 관심이 많다는 증거와 당신의 취향을 나 역시 기꺼이 긍정하고 싶다는 표현이지요. 결국 우리가 나누는 것은, 우리가 서로의 취향에 대해 이해할 만큼 가까운 사이라는 친밀함일 거예요.
살아있는 사람들의 취향은, 그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을 때 아주 유용한 기억이에요.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취향은 그들을 기억하고 싶을 때 아주 유용해요. 뚱뚱한 바나나 우유를 보면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떠올라요. 할머니는 바나나 우유를 좋아하셨어요. 사실 우리 할머니는 온화한 성품과 우아한 말투의 할머니는 아니었는데요. 혼자서 육남매를 키우는 것은 순식간에 냉혹한 인생으로 내던져진다는 것이고, 냉혹한 인생은 가장 먼저 온화한 성품을 무뚝뚝한 무던함으로 바꿉니다. 다정한 말투도 사치였을 거예요. 여섯 아이와 한 명의 어른이 먹고살 수 있도록 돈을 벌고,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며, 누구 하나 아프거나 엇나가지 않도록 지키는 것은 어떤 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기와 동의어입니다. 그래서 할머니의 관심과 사랑은 때때로 타박의 형태로 도착했어요.
내가 치렁치렁한 생머리를 흔들면서, 소매를 걷어 올리지 않고 덜렁거리면서 할머니를 안으면 타박부터 했습니다. 귀신 같은 머리를 쫌매라고, 소매를 단정하게 하라고요. 물론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할머니를 꼬옥 껴안았다가 바나나 우유를 내밀었습니다. 할머니의 성벽이, 그 달콤한 '조공' 한 번에 무장해제되던 순간을 저는 기억합니다. 타박하던 입술에 슬그머니 번지던 그 옅은 미소 말이에요.
할머니에게 바나나 우유는 어떤 의미였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혼자서 여섯 아이를 키운 사람에게 달콤한 것은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을 거예요. 달콤한 건 언제나 아이들 몫이었을 테니까요. 그렇게 쓰디쓰게 50년을 살았고, 마침내 육남매가 잘 자랐어요. 그 애들이 또 제 가족을 꾸렸고, 그 가족들이 또 아이를 낳았고, 명절이면 좁은 집이 바글바글해졌어요. 그 떠들썩한 소란 속에서 할머니는 그제야 달콤함을 느끼셨을까요? 손자 손녀가 내미는 바나나 우유 한 병은 평생을 쓰기만 했던 할머니 인생에, 첫사랑 같은 달콤함이었을까요? 하늘에서도 바나나 우유를 팔까요?
4. 취향이 있어서 살고 싶어지는
저의 취향도 궁금하시겠죠? 저는 시장을 좋아해요. 깔끔하고 세련된 백화점보다 시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비밀'을 살 수 있어서예요. 한 팩에 2천 원짜리 쑥떡과 인절미, 절편 세 팩을 골라 들고 사장님에게 5천 원에 주십사 대담한 거래를 제안합니다. 그러면 사장님은 허리를 굽히고, 소리를 죽여 아무에게도 들키면 안 된다는 듯이 비밀스럽게 거래에 응해주시죠. 사장님과 저만의 관계에서만 유효한 가격, 유일한 가격이 존재한다는 것. 그게 시장의 비밀이에요.
어느 토요일 낮에 망원시장에 갑니다. 잘 구워진 새우를 한 접시에 만 오천 원에 사요. 시장 초입에서 새우를 사고 조금 더 옆집으로 가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만두집이 있을 텐데, 고기냐 김치냐를 잠시 고민하다가 역시 내 취향은 김치만두였지 하면서 만두도 삽니다. 이런 순간에 나는 나를 조금 더 알게 돼요. 고기만두 앞에서 망설이다가 김치만두를 집어 드는 그 찰나에, 아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요. 아참, 망원시장에는 유명한 막걸릿집도 있으니까요. 두 손 무겁게 산 것들도 잠깐 까먹고 고추튀김에 꿀막걸리 한 잔을 하면서 대낮부터 코가 비뚤어지도록 취할지도요. 제가 종종 토요일 낮에 시장에서 취해 있다는 비밀은 여러분과 저만 알기로 해요.
취향이 없어도 ‘살아간다’는 것은 아름답다고 썼습니다. 지금도 그 말은 맞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빨간 가발을 쓴 엄마랑 나랑 찍힌 인생네컷 사진을 보다가, 할머니 대신 바나나 우유를 한 모금 마시다가, 망원시장 새우를 한 입 베어 물다가 알게 됐어요. 취향이 없어도 살아가는 것은 아름답지만, 취향이 있으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고 싶어’져요.
'살아간다'는 말에는 버티는 마음이 있어요. 어제와 오늘을 버텨내는 마음이요.
'살고 싶다'는 말에는 기다리는 마음이 있어요. 내일이 기다려지는 마음이요.
어제와 오늘을 버텨내는 것은 아름답지만 숭고하고, 비장해요.
내일이 기다려지는 마음은 산뜻하고, 또 명랑합니다.
그래요. 취향이 있어야 내일도 내년도 기다려져요.
그러니 돈이 충분치 않아도요.
내일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들을 더 많이 만들어요. 나누고, 또 남겨요.
살고 싶게요.
첫 생각은 아무래도 소비로 연결됩니다. 돈을 쓴 곳을 추적하며 취향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을, 그 브랜드들을 나열해 놓고 다시 생각해 봅니다. 내가 이걸 왜 샀을까. 마케팅 부서의 상행위에 혹한 것일까. 그러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의 경우가 진짜 취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알 수 없는 동질감이 그 브랜드들에게서 느껴집니다. 애써 그 이유를 분석하지 않아도 납득할 수 있는 단순함이 나의 취향이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 취향을 하나둘 쌓아갈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미지의 영역에서 내 것을 발견한 기분이라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취향이 많다는 말에는. 그만큼 테이스트가 있는 사람 같다는 효능감이 산재합니다. 그것을 드러내든 드러내지 않든, 취향이 있는 그래서 테이스트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런 상념을 이 글을 읽다 생각합니다.
무엇을 해도 비루한 요즘, 나를 다시 즐겁게 해줄 방법에 관한 힌트를 얻어갑니다.
취향이라는 건 정말이지 한 사람의 정체성을 빠르고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글에 나오는 할머님과 어머님, 그리고 은지님까지 제각기 좋아하는 무언가는 다르지만 그 속에 숨겨진 마음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다정한 게 물씬 느껴지는 것처럼요.
저는 친구들에게 선물을 할 때면 최대한 오차를 피하고 싶어서 당사자에게 직접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하거나 밥으로 대신 사거나 하는데, 취향은 시행착오의 결과물이자 상대에 대한 애정이라는 걸 보고 나니 앞으로는 저도 은지님처럼 좀 더 은밀하게 상대를 관찰해볼까 봐요. 실패한 선물이어도 결국 그 또한 추억이 되고, 그 선물이 실패가 된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취향의 발견이니까요.
끝으로, 저도 시장을 좋아해서 자주 가는데 저와 비슷한 대목을 발견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이건 저와 은지님만의 '비밀'이 되겠죠? :D 따뜻하면서도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글을 읽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주류와 비주류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 선명한 선에 의해 명확히 구분된 것만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방식으로 분류되지 않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은지님의 글처럼 그것에 이름을 붙인다면 '삶'이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를 보더라도 로맨스, 판타지, 범죄, 액션으로 분류되지 않고 그냥 그 영화라서 좋다며 제목 하나 기억할 수 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고요.
은지님의 글을 읽고나니 오늘을 더욱 살고 싶게 만드는 즐거운 일을 찾아 떠나야할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하지만 취향은 엄마가 삶에서 계속 붙들고 있던 작은 기쁨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비록, 빠듯한 지갑사정과 타협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해도요.
어떤 취향은 반드시 자본과 계급과 연결될 수 밖에 없겠지만 또 어떤 취향은 나와 타인, 친구와 가족, 사랑과 관심, 꿈과 삶 같은 것들을 단단하게 엮어내는 끈이 된다고 믿게되었어요.
백밤님에게도 아주 믿을만한, 단단한 끈이 여러개 있으실거에요. 잘 찾아보시는 매일매일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취향이 있으면 살고 싶어진다는 은지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스스로의 취향을 잘 알면 삶에서 더 많은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귀가 쫑긋하고 복실복실한 강아지를 마주칠 때, 좋아하는 파스텔 톤의 옷을 입었을 때,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엄청 맛있는 커피를 마셨을 때 기뻐져요.
물론 취향은 보이지 않는 사회의 계급에 따라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이 갈리기도 하죠. 그렇지만 저는 취향에 대해 그렇게 무겁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부자가 아니라서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취향은 그저 좋아하는 것이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더 좋은걸 좋아하는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니 만약 경험했다면 좋아했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미리 아쉬워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좋아하는 것을 잘 즐기며 살아가면 좋겠어요!
은지님도 오늘 하루 취향의 것들을 더 많이 마주치시고 앞으로도 애정하는 것들을 많이 찾아가시길 바랍니다ㅎ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크...! 상상하면서 엄청 몰입이 되는것을 보니까, 재원님과 저의 취향도 꽤나 교집합이 있는 것 같습니다. 히히
앞으로는 재원님의 글을 더 설레면서 찾아볼 것 같아요. 재원님의 또 다른 취향을 발견하고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