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가능한 사랑>에는 두 개의 세계가 병존한다. 하나는 해고 노동자 호석과 그의 아내 미옥, 그들의 아들 철이 사는 세계이다. 다른 하나는 이들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찍고자 하는 감독 예지와 그의 남편 상우가 사는 세계다. 영화는 두 세계의 접할 수 없음과 접해지는 순간의 마찰을 통해 가능하고 가능하지 않은 사랑에 대해 말한다.
가능한 만큼의 사랑
정리해고와 정리해고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그럼에도 40%의 노동자는 해고되었고, 해고되지 않은 자는 ‘산 자’, 해고된 자는 ‘죽은 자’가 되어 같은 도시를 살아간다. 영화 <가능한 사랑>은 노동자들의 투쟁 그 자체보다는 그 이후를 살아가는 노동자 가족을 보여준다. 이들의 투쟁은 영화 중간중간 삽입된 회상으로 표현된다.
평택이라는 도시, 산 자와 죽은 자, 40% 규모의 정리해고와 옥쇄파업 시 폭력적인 경찰의 진압은 영화가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을 인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 인용에 대하여 숨기거나 각색하지 않는다. 쌍용차 투쟁이라는 큰 줄거리 위에서 영화는 2010~20년대의 주요 투쟁을 내용과 장면에 있어 부분 인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쌍용차 투쟁 이후 15년이 넘게 지났기에, 이에 맞추어 07년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투쟁의 배경은 사모펀드 기업의 인수 과정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어쩌면 상우의 말대로 해고 노동자들의 얼굴은 ‘그저 뻔하기’에, 각 투쟁을 구체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불필요할지도 모른다.

‘그저 뻔한 해고 노동자들의 얼굴’을 이어 붙여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164분이라는 상영시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인물의 얼굴이다. 가장 견딜 수 없는 것 역시 ‘그저 뻔한 해고 노동자들’의 얼굴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배우의 살과 이목구비가 전혀 다른 것을 보여줄 때의 수치심과 당혹감이다. 예지에게 투쟁 당시 문화제 영상을 보여주는 미옥이 여전히 같은 옷을 입고 있는 모습. 홈쇼핑에서 특가로 몇 종 세트를 산 것인지 비슷한 디자인의 옷들. 짓이겨지는 통증을 견디기 위해 입에도 못 대던 술을 마셔야 잠드는 밤.
마음대로 하는 사랑

미옥은 푼수같이 웃는다. 동료의 장례식장에 가는 길 호석은 그런 미옥에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그제야 미옥은 눈물을 흘리고 여전히 웃는다. 그것이 미옥과 호석이 함께 하는 방법이다. 투쟁 이후 호석은 자신의 몸에 모든 것을 가두고 침묵을 선택했다면, 미옥은 여전히 웃고 농담하며 해고당한 남편과 아들 철이를 부양한다.
미옥이 예지의 차를 탄 처음 탄 날, 각자의 연애사를 공유한다. 친구의 친척네 집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미옥의 이야기가 끝난 뒤 예지는 미국 유학 중의 연애담을 공유한다. 예지는 자신의 남편 상우가 푼수 같은 여자애를 좋아했다며 고교 시절 이야기를 한다. 그 말을 듣는 미옥은 푼수같이 웃는다. 미옥이 자기 사는 이야기를 할 때면, 예지는 자기 삶 중 가장 힘들었던 미국 유학 시절 이야기를 꺼낸다. 공명하기 위한 예지의 시도는 이 둘이 속한 다른 세계를 보여줄 뿐이다.
한편, SP 중공업 투쟁의 의미를 명료하게 말하는 것은 예지뿐이다. 호석은 심리치료 자리에서조차 말 한마디 못 한다. 예지는 왜 노동자가 사라진다는 인공지능 시대에 정리해고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지 공모사업 심사 위원들 앞에 명료하게 설명한다. 공모사업으로 독립영화를 찍는 예지는 자본으로부터 혹은 남편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아니, 독립될 수 있음을 원할 수 있다.
미옥은 예지가 자신에게 다가온 이유를 모르지 않는다. 또한 예지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예지의 제안을 수용하여 자신의 삶을 꾸린다. 미옥은 예쁘고 좋은 것이 있으면 사진을 찍는다. 보낼 곳은 없다. 살갑게 다가온 예지는 투쟁 이후 말이 없어진 남편이 줄 수 없는 것을 주었다. 내 이야기를 할 공간, 카메라라는 증인, 또래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 문자 보낼 사람, 호화로운 곳에서의 여름휴가.
영화 중 가장 크게 폭소를 내지른 것은 미옥이 예지가 온 김에 노조를 만든 장면이었다. 예지는 라인 위에서 일하는 미옥의 모습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에 미옥은 흥미로운 장면, 이를테면 노조 결성 장면을 보여주겠다 한다. 미옥은 한 가족이 운영하는 10인 수준의 공장에서 일한다. 정규직은 자신을 포함해 3명뿐이지만 사장은 4명을 조직해야 노동조합을 ‘인정’한다고 했고, 사장의 딸은 자신도 노조에 가입하겠다고 하며 노동조합이 결성된다. 예지는 이제 뭘 해야 하는지 질문하고, 미옥은 창립총회를 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한 듯한 가입서와 강령을 낭독하는데, 이 뒤로 ‘알 바가 아닌’ 이주 노동자들이 무심하게 걸어 나간다. 예지는 자신이 무엇을 찍는지 모르고, 미옥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비대칭의 사랑

영화 <가능한 사랑>은 정리해고 노동자 가족과 부유한 다큐멘터리 감독 가족이 영화 제작을 계기로 얽히는 이야기라고 거칠게 요약될 수 있다. 영화는 집요할 정도로 이 둘의 세계를 대칭적으로 보여준다. 얼굴, 표정, 몸과 몸의 자세, 말투, 그 몸이 입고 있는 옷, 그들이 타고 다니는 차와 그들이 사는 집. 각 부부의 사랑이 시작된 순간과 이어지는 방식. 예지는 영화를 위해 호석과 미옥 부부의 삶을 원한다. 그들의 삶을 원하면서도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노동에는 관심이 없다. 미옥은 예지가 줄 수 있는 삶의 예외적 순간을 즐긴다.

예지는 호석과 미옥 부부와 단지 감독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잘 지내고 싶어 한다. 그것은 자신의 영화를 위해서일 수도 있다. 결정적인 장면을 위해서는 라포 형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지는 자신의 영화가 노동자를 위한 것이라고 믿으며, 그것이 거짓인 것 역시 아니다. 피사체 이상으로 그들을 대하고 싶다는 마음 역시 진심이다. 호석이 토하듯 내뱉는 말들을 촬영하며 무너지는 표정 역시 진짜다. 그리고 상우는 그런 마음을 가진 예지를 사랑한다. 각자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사실 그들이 가진 사랑하는 마음이란 것은 자기 쪽의 마음일 뿐이다. 상우가 건조하게 말했듯,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산다.

이 간단한 말을 위해 호석과 미옥의 삶은 싹싹 벗겨 보여야 했다. 영화 속 회상 장면조차 이 둘만을 대상으로 한다. 호석과 미옥이 자기 삶을 말하려 하면 카메라 앞에서 말하기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예지는 미옥과 대화하다가도 자기 이야기를 할 때면 카메라를 껐고, 상우의 이야기는 그 누구도 듣지 못했다. 영화 밖에서조차 우리는 호석이 겪은 것이 쌍용차 정리해고라는 실재하는 투쟁임을 너무 쉽게 추측하지만 예지 그리고 상우의 삶은 쉽게 추측하지 못한다. 영화가 전하는 말 속에 호석과 미옥, 그리고 투쟁한 노동자의 삶은 어디에 있을까. 영화 <가능한 사랑>은 결국 예지의 시도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우리는 미옥이 그랬듯 푼수같이 말해야 한다. 그런 종류의 사랑도 가능하고 의미 있다고. 말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어차피 아주 자그마하다.